축제의 가면 - 5
축제의 가면 - 5
  • 이영철 소설가
  • 승인 2005.11.08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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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형사는 심기가 편치 않았다.

이만덕 회장 살해 사건이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오랜 경험으로 볼 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그럴 확률이 높았다. 국가정보원 요원도 상부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하는지, 늘 찌푸린 얼굴로 줄담배를 피워댔다.

“나참, 더러워서 못 해 먹겠어요. 허구헌날 아침마다 한바탕씩 잔소리를 들어야 하니…… 이 회장을 살해한 쥐새끼 같은 놈들을 빨리 잡지 않으면 내가 제 명에 죽지 못할 겁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뽑아 물고 담뱃갑을 책상 위에 팽개치듯 던졌다. 최 형사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대한민국 경찰에서는 귀신도 잡아낸다는 베테랑으로 소문난 자신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했다. 주변에선 이제 최 형사도 한물 간 거 아니냐는 소리도 들린다고 후배가 귀띔해줬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요. 미궁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해서요.”
최 형사의 말에,

“그렇게 되면 전 이겁니다.”

그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목을 댕강 자르는 시늉을 했다.

“어쩐지 놈들에게 농락당하는 느낌도 들고…….”
“제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불독이에요, 불독. 전 뭐든지 한번 물면 절대로 놔주는 법이 없다고요. 두고 보세요. 시간 싸움입니다. 지놈들이 뛰어봤자 대한민국 안이겠지요.”

자신의 별명을 불독이라 밝힌 국가정보원 요원은 뻑뻑 피워대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재떨이에 비벼 껐다.

최 형사가 불독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초기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회장 운전기사나 이발소 주인을 닥달해 본들 더 이상 나올 건 없을 거 같고, 알기 쉽게 막고 푸는 식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전 말이죠, 이 새끼들을 잡기만 하면 그냥 놔두지 않을 거라고요. 본부로 넘기기 전에 표시나지 않게 반쯤 죽여놓을 거라고요. 아주 웃겨요. 지들이 무슨 일지매라도 되는 듯이 사체에 종이 장미까지 척 붙여 놓고…… 나 참 더러워서.”

불독은 '‘더러워서’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최 형사는 이쯤에서 김상수 PD 사건과 그의 목에 걸려있던 종이 장미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김 PD와 가족들과 한 약속도 있고 해서, 조금만 더 두고 보자고 생각해 입을 다물었다.

불독이 입을 열었다.

“종이 장미를 분석해 보니까, 일반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종이로 만든 것이어서, 거기서는 단서를 잡을 수 없을 거 같아요. 그런데 말이죠, 그 종이 장미가 왠지 낯설어 보이지 않아 이상해요. 어디선가 꼭 본 듯한 느낌이 든단 말입니다. 그게 어디였던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래요?”

최 형사는 귀가 번쩍 뜨였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봐요. 이렇게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정 떠오르지 않으면 하루쯤 사우나탕에 가서 뜨거운 물 속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있든지, 아니면 머리도 식힐 겸 영화나 연극을 한 편 보든지.”
“마음이 편해야 그렇게 하죠.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이 생각 뿐이니…….”

최 형사는 그의 말에 충분히 공감했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빨리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다. 상부로부터 질책을 당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모멸감 때문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일 주일이 넘도록 김 PD를 테러한 동일범의 꼬리조차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진희가 돌아왔다.

태진은 그녀와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정원에 백목련이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예년에 비해 꽃 소식이 빨랐다. 양지바른 곳에선 개나리도 갓 부화된 병아리 빛깔처럼 노오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진희가 물었다.

“일 주일 동안 뭐 했어요?”
“소영이와 함께 있었어.”

태진은 거짓말 하고 싶지 않았다.

“소영 씨가 시간이 났던 모양이죠?”
“응.”
“좋았, 어, 요?”
“응.”

태진은 진희의 질문에 어색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동안 제가 어디서 뭘 했는지 왜 안 물으세요?”
“그건…… 진희가 굳이 말하지 않는데 묻는 것도 그렇고 해서.”

태진의 말에 진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에 다녀왔어요.”
“절에?”
“저를 키워주신 스님께서 열반하셔서요.”
“…….”
“그리고 다음 사냥감 뒷조사를 했고요.”
“누굴?”
“탤런트 민철국요.”
“민철국이를?”

태진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남자 탤런트로서는 소영이와 쌍벽을 이루는 존재였지만, 방송가에서 소문이 좋지 않은 사내였다. 요즘 사극에 출연하면서 주가가 한창 더 치솟는 중이었다. 하지만 연기자로서는 인기가 있는지 모르지만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스포츠 신문이나 주간지 등의 스캔들 단골 손님이었다. 그런 소문에도 불구하고 늘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걸 보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초 뒷조사는 거의 끝났어요.”
“쉽지 않았을 텐데.”
“노하우가 쌓였잖아요.”

진희가 가지런한 이를 보이며 웃었다. 자신이 말하고도 좀 우스운 모양이었다.

“그쪽이라면 나한테 맡기지 않고.”
“오히려 제 쪽이 안전할지도 모르죠. 선생님은 자칫하면 노출될 염려가 있잖아요. 어차피 선생님이 할 일은 따로 남겨놨어요. 제가 방송국에까지 드나들 수는 없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그건 그렇고, 요즘 매스컴이 사건 보도에 조금 주춤하는 거 같지 않아?”
“다음 납치를 예고했는데 일 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조짐이 보이지 않으니까, 누군가 장난을 친 걸로 판단한 모양이죠.”
“그럴 수도 있겠군.”
“매스컴에서도 더 이상 이 회장에 대해 다룰 만한 기삿거리가 없을 거예요. 뭔가 다른, 새로운 기삿거리를 제공해줘야겠지요.”
“그건 그래.”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매스컴의 열기가 식기 전에.”
“알았어.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지?”

태진은 진희와 머리를 맞댔다.

그녀가 조사해온 자료들을 살펴보고, 자신이 할 일을 메모했다. 일단 누구도 모르게 민철국을 납치만 해오면 됐다. 지금쯤 경찰에서는 자신들을 잡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조금은 냉정하고 신중하게 처신할 필요가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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