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폭동 최후의 폭도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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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폭동 최후의 폭도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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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궤멸하는 폭도들

▲ ⓒ뉴스타운

3. 궤멸하는 폭도들

4.3 폭동이 발발하고 1년이 지난 1949년 4월경 폭도 세력은 현저히 쇠약해진 모습이었다. 이때까지 한라산에 남아있는 폭도는 대략 무장폭도가 100명에서 150명, 자의반 타의반으로 남아있는 비무장폭도가 500명에서 800명으로 추산되었다. 한때 6천명까지 이르던 폭도세력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1948년 말까지는 폭도들과 제주도 바깥과의 연결이 되고 있었지만 지금은 육지부와 완전히 두절된 상태였다. 중산간 마을에서 식량을 보급해주던 친남로당 주민들도 해안가로 소개되는 바람에 식량 보급도 끊겨 있었다. 4월 21일에는 남로당 당수인 김용관이 사살되었고, 남로당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체포되었다. 제주인민해방군의 완전 소멸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5월 12일에는 작년에 파탄되었던 제헌선거가 실시되어 무사히 투표를 완료할 수 있었다. 작년 무효가 되었던 두 개의 선거구 투표율은 97% 정도로 호조를 보였다.

6월 10일에는 제주인민해방군 2대 사령관 이덕구가 사살되었다. 이덕구 사살은 순전히 화북지서 문창송 경위의 공로였다. 문창송은 폭도 연대장으로 활동하던 폭도 고 모씨를 체포하여 전향시킨 다음에, 고 씨에게 이덕구 소재를 파악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고 씨가 산중에 은신해있는 이덕구 소재를 파악하자 이덕구 체포조가 긴급 출동했다. 이덕구는 작은가오리오름 부근에서 사살되어 쇠달구지에 실려 왔다. 이덕구 시신은 하루 동안 관덕정 앞에서 전시되었다. 이덕구 시신의 잠바 가슴주머니에는 숟가락이 꽂혀 있었다. 이덕구 뒤를 이어 제주인민해방군 사령관에 오른 것은 김의봉이었다.

김의봉은 이덕구가 사살된 후 제주인민해방군 3대 사령관에 올라 북제주군 조천면과 남제주군 사이에 위치한 ‘산란이’지경에 아지트를 두고 주로 활동했다. 김의봉은 폭도 사령관이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무고한 4.3 희생자로 등재시킨 인물로, 노무현 정부의 왜곡된 제주 4.3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9월 16일에는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어있던 죄수들 400여 명이 탈옥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목포형무소에는 1,400명의 죄수가 수감되고 있었다. 탈옥수 대부분은 4.3 폭동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수감된 장기 복역수들이었다. 이들은 간수 5명을 살해하고 무기를 뺏어 탈옥했다. 탈옥수 체포 작전은 10일만에야 끝났다. 탈옥수 413명 중 사살 298명, 체포 85명, 자수 10명, 미체포 23명이었다. 이들 탈옥수들도 제주 4.3에서는 대부분 무고한 희생자로 등재 되어 있는 실정이다.

1950년이 밝아오면서 폭동의 기세는 상당이 사그라들었다. 1월 21일자 자유신문에는 ‘아직도 소수 폭도가 한라산 골짜기에 잠복하여 출몰하고 있으나 아군의 유격전으로 거의 전멸상태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당시 폭도들의 잔존 세력은 무장 약 30명, 비무장 약 70명을 합하여 대략 100명 미만으로 추정되었다.

1950년 3월 22일에는 제주인민해방군 초대 사령관 김달삼이 사살되었다. 김달삼은 지하 선거 투표지 5만여 장을 가지고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 여기에서 김달삼은 제주 4.3 투쟁보고를 하여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고 국기훈장 2급을 수여 받았다. 김달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리고 김달삼은 황해도 강동정치학원을 수료하고 남한으로 침투하여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대에서 빨치산을 지휘했다. 토벌대에 쫓겨 퇴각하던 김달삼은 월북을 기도하다 강원도 정선군 북면 반론산에서 최후를 맞았다. 김달삼을 확인하기 위해 김달삼은 목이 잘려 수송되었고, 강원도에는 ‘김달삼모가지잘린골’이라는 지명이 있다고 한다.

1950년 상반기에는 해병대가 진압에 투입되었다. 해병대는 한라산 수색을 벌이다가 간간이 폭도들의 아지트가 발견되면 기습공격을 벌였다. 소규모 교전으로 폭도들을 몇 명씩 사살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폭도들이 선제 기습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 소강상태가 이어지며 목숨이 끊어질 것 같았던 폭도들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6.25가 발발한 것이다. 북한 정권이 수립되면서 거의 꺼져가던 4.3 폭동의 불씨를 다시 살려냈듯이, 이번에는 6.25가 죽어가던 폭도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잠들었던 폭도들이 기지개를 켜며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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