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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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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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호는 작부 앞으로 다가갔다. 면장 아들은 웃었다. 광호의 차림새가 찍새 같아 보인다고 했다. 면장 아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정강이에서 파란 불이 일어 나는 것이 보였다. 증오의 불이다.

“뭘 쳐다 봐, 이 자식아! 매일 술집에 앉아서 여자들과 말장난이나 하는 놈이,”

광호는 반짝이는 구두코로 다시 한 번 더 걷어찼다. 나약한 면장 아들은 광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얻어맞으면서도 아무 소리를 하지 못했다.

불볕에서 일하는 불쌍한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콩 나무 보다 작은 엄마는 매일 호미로 풀을 찍어냈다. 호미에 찍힌 풀은 누렇게 변하여 엄마 곁에 누워 햇볕을 싫어했다. 면장 아들 얼굴에 탁 소리가 나게 침을 뱉었다. 기가 죽어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지금까지 졸고 있는 듯한 음악이 고막을 치는 음악으로 바뀌었다. 아란낫트가 싫어하는 싸구려 노래다. 작부는 아란랏트의 예의 없는 행동을 보았다. 실망하는 눈빛이 서렸다. 광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광호는 반짝이는 반지를 갑자기 앞으로 내밀었다. 작부의 눈이 커지고 아란낫트가 살아 움직였다. 밝은 표정은 잠시고 실망하는 눈빛이 비쳤다. 저녁에 만나면 목걸이를 주겠다고 했다.

작부의 입이 앞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가짜 반지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어떻게 알았을까?’ 순경이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작부도 모르는 것이 없었다. 아란낫트를 피했다.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든 작부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돈을 좋아하는 작부는 허우대가 좋은 광호를 면장 아들보다 더 좋아하지 않았다. 돈이 없다는 이유다. 풍채가 좋은 것은 실리가 없다고 말했다.

작부는 자기가 키가 크고 늘씬하지만 돈과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래서 돈을 벌려고 한다고 했다. 돈을 벌면 예쁘게 치장하고 공주처럼 살수 있다고 말했다. 광호도 군에 가서 키 때문에 손해를 봤다.

키가 크면 맨 앞줄에 서고 맨날 제일 먼저 얻어터진다. 키 큰 것은 자랑할게 못 된다. 작부는 군대도 안 갔다 왔는데 키 큰 것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키 작은 면장 아들을 좋아했다.

광호가 하려는 일도 키 큰 것이 방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이로울 게 없다. 우선 남에 눈에 잘 띤다. 못된 짓을 하는 놈들은 남의 눈에 잘 띠는 것을 싫어한다. 작부는 집에서 엄마가 기다린다고 했다. 집에 빨리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명백했다.

더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늦은 밤에 돈이 생긴다는 것을 말 할 수 없었다. 작부를 설득시키는 것이 광호의 작전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난제 같았다.

사건이 터지면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다. 재빠르게 현장을 떠나야 한다. 그러려면 일을 한 후에 재빠르게 작부를 만나야 하지만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았다. 어떻게 이야기를 설명해야 할지 몰랐지만 무조건 저녁에 만나야 한다고 했다. 작부는 대답이 없었다.

작부에게 돈을 주면 만날 수 있지만 돈이 없었다. 엄마에게 책값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이젠 안 통한다. 엄마는 기뻐서 울며 아들을 자랑하고 온 동네에서 돈을 꾸어 왔다. 책값은 선물 값과 소주 값, 여관비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돈을 꾸어다 아들에게 주었다.

돈이 떨어지면 여자아이는 칼로 무를 자르듯 피했지만 작부가 늘 보고 싶었다. 오늘밤에 왜 꼭 만나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작부가 갑자기 효녀가 되어 집에 꼭 들어가야 한다는 변명을 하고 있었지만 광호는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안다. 매일 밤 집에 안 들어 갈 수는 없다. 어제 저녁에도 면장 아들과 놀아났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작전이 잘 안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늦은 밤에 돈이 생긴다는 것을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전 계획을 말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부를 설득시키는 것이 작전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 같았다. 사건이 터지면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다. 재빠르게 작부와 현장을 떠나야 한다. 혼자 떠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작부를 유혹하려면 대낮에 그 일을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광호가 하려는 일의 성패가 전적으로 작부에게 달려 있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작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왜 밤에 돈이 생기며, 늦은 시간에 꼭 만나야 하고, 오늘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 했다. 광호는 그 이유를 말하고 싶어서 안달을 했지만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 속이고 싶지 않았지만 성자의 말씀을 흉내냈다.

“의심하지 말지어다.”

남을 믿는 일을 자기 일처럼 하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작부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듯 했지만 광호의 성자 흉내내기를 믿었다. 작부는 인심을 쓰겠다는 듯 어렵게 광호를 만나 주겠다고 했다.

도적질은 죄와 벌에 나오는 그런 놈이 하는 거다. 라스꼴라니꼬프는 고리대금업자인 노파가 사회에 아무 이익이 되지 못한다고 살해한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가, 지성인들은 그의 작품을 읽고 과대 평가해서 철학적, 형이상학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극찬을 한다.

모두가 미쳤다. 살인을 했는데 철학이이라니, 아무튼 그놈의 도적질은 멋있어 보인다. 도구를 고르는 일도 멋을 냈다. 안주머니 속에 밧줄을 감추고, 도끼 날을 갈아 코트 속에 감추고서 전당포 주인을 죽이러 갔다.

“얼마나 멋있는가? 세상에 필요없는 인간이 있다는 거다. 세상에 필요없는 인간이 있다니? 광호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필요없는 인간은 죽어야 한다는 소설 속의 이야기를 진실처럼 이해하려고 했다.

아버지는 광호가 착하고 공부도 제일 잘하며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차츰차츰 필요 없는 놈이라고 야단을 치는 일이 많아졌다. 광호는 아버지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몰래 술만 먹고 나면 돈밖에 모르는 작부의 뒤만 쫓아다녔다.

광호는 자기 자신이 못난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리 대금업을 하는 자는 가난한 자의 몸에 붙어 기생하는 이(蟲)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 공감했다.

그게 말이 되는지 모르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멋있어 보이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전당포 주인을 죽인 것이 잘 한 일이라는 것이다. 미쳤다. 사람 죽이고 잘했다니, 그런데 인간들은 그걸 읽고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선생님은 광호에게 <죄와 벌>을 읽고 감상문을 써 오라고 했다.

“그런 감상문은 못씁니다.”
“왜 못 써와, 빨리 안 써 오면 빵점을 주겠다.”
“좋아요, 난 하기 싫은 것은 죽어도 못해요,”
“하기 싫다고? 왜 하기 싫은데.”

선생님은 작품 속의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광호를 바보 취급했다. 하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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