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가면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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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가면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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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형사는 이 회장의 사체를 한 시간 전부터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강력계 형사로 출발해서 지금까지 잔뼈가 굵어지며 별의별 끔찍하게 죽은 사체들을 보아왔지만, 이번과 같이 괴상한 사체는 처음이었다.

‘사람을 개미에게 뜯겨 죽게 한다. 그것도 남자의 심볼 부근만을…….’

최 형사가 이 회장 사체가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사체가 발견된 장소는 여의도 KBS 방송국 근처 골목길 쓰레기통 옆이었다. 청소부가 쓰레기를 치우다가 발견해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사체는 발가벗겨진 채 검은 비닐에 둘둘 말린 상태였다.

“이거 정신병자 소행이 아닐까요?”

최 형사가 옆에 있는 국가정보원 요원에게 말했다.

“글쎄요. 아직 그렇게 단정하기엔 빠르지 않을까요.”

최 형사는 이 회장의 심볼 살 속에 아직도 살아있는 몇 마리 불개미를 핀셋으로 잡아 비닐 봉지에 담았다. 이번 사건은 여느 살인 사건과는 비중이 달랐다. 사체의 주인공이 이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거물급이기 때문이었다. 국가정보원에서 이 방면의 베테랑을 파견한 것만 봐도 그 비중을 알 수 있었다.

“사인을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사체를 부검해 봐야겠지요?”

국가정보원 요원은 불에 그슬려 죽은 개미와 봉지 속에 담겨 꾸물거리는 개미를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정확한 것은 검시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눈으로 볼 때 직접적인 사인은 개미들에 의한 과다 출혈로 보입니다.”
“그건 저도 최 형사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가 맞장구를 쳤다.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죽일 생각을 했을까요? 세상은 참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사람이 개미에 뜯겨 죽다니. 그것도 남자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제 생각으론 원한 관계가 아닌가 해요. 그러니까 이 회장을 쉽게 죽이지 않고, 얼굴을 불로 그슬리고, 개미들에 뜯겨 죽게 하는 고통을 주었겠지요. 범인들의 요구 조건이
아무것도 없는 것도 그렇고.”

그는 최 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이 회장의 목에 걸려 있는 검은 종이 장미 두 송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한 송이도 아니고 굳이 두 송이를 걸은 것은,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요?”
“하여튼 오랜만에 일할 맛 나게 한 놈들입니다.”

국가정보원 요원은 손가락 마디를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꺾으며 말했다.
최 형사는 카메라맨에게, 이 회장의 사체를 여러 각도에서 꼼꼼히 찍도록 지시했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범인이 사람을 죽이고 사체의 입 속에 나방의 번데기를 넣어 나방이 부화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의 말에,

“맞아요. 저도 아까부터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린 생각이 일치하는 점이 많군요.”
“그렇습니까?”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
국가정보원 요원이 물었다.

“이 회장 목에 걸려있는 종이 장미도 일종의 그런 암시가 아닐까요?”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국가정보원 요원은 습관처럼 '‘그렇습니까?’를 연발했다. 그의 말버릇인 거 같았다. 두 사람은 영안실에서 나와 복도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최 형사는, 두 사람이 오늘 첫대면을 했지만 어쩐지 손발이 잘 맞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솔직하고 시원스러운, 사내다운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부검에 참석해야겠지요?”
“그래야죠. 사건이 사건인만큼.”

다음 날 오후.

방송국과 신문사마다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그것은 태진과 진희가 부친 테이프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방송국마다 이 회장 살해에 대한 뉴스 속보를 내보냈고, 신문사마다 호외(號外)를 뿌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 회장이 그동안 어떤 여자들을 어떻게 건드렸고 어떻게 죽어갔는가는, 비디오 테이프에 찍혀있는 것을 인용했다.
전국이 물 끓듯 달아올랐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이 회장의 죽음에 집중되었다. 이례적으로 대통령까지 나서서 경찰의 명예를 걸고 범인들을 잡으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최 형사와 국가정보원 요원은 수사본부 사무실에 함께 있었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짐과 동시에 수사요원들이 대폭 보강되었고, 두 사람은 수사본부를 지휘하는 쌍두마차 체제를 이루었다.
국가정보원 요원은 이 회장이 죽어가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나저나 방송국마다 이 테이프를 부분 편집해서 아홉시 뉴스때 집중 보도한다는데 걱정입니다. 옛날처럼 강제로 보도를 막을 수도 없고.”
“그러게 말입니다. 이 테이프가 공개되면 국민들 반응이 엄청날 텐데.”
“죽어나는 것은 우리들뿐이죠. 위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오색 딱다구리처럼 최 형사님과 저를 마구 쪼아댈 텐데 어떻게 견뎌낼지.”
“대통령까지 관심을 보였으니 아침저녁으로 결과를 보고해야 할 테고.”
“자, 잠깐만요! 화면을 멈춰보세요.”

그는 화면을 보다 말고 소리쳤다.

최 형사는 무슨 일인가 싶어 리모컨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는 정지된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뭘 발견했습니까?”
“네, 이 회장은 지하실에서 죽은 것이 확실합니다.”
“지하실요?”

최 형사는 그가 뭘 보고 그런 판단을 내리는지 알 수 없었다.

“자, 잘 보세요. 지금 화면에 비친 사방 벽이 창문 하나 없이 꽉 막혀있지요? 그리고 여길 보세요.”

최 형사는 그가 가리키는 화면의 한 귀퉁이를 유심히 보았다.

“환기통아닙니까?”
“지상에 있는 건물이라면, 창문이 하나도 없이 굳이 이런 환기통이 필요할까요?”

최 형사는 그제야 그의 추리력에 공감을 했다.

“그렇다면, 이런 지하 공간을 갖춘 곳이라면…….”
“일단은 아파트나 빌라는 아니고 단독 주택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적어도 도시 한복판에 이렇게 대담한 공간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요. 범행 장소는 분명 한적한 곳에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겠군요.”

최 형사는 다시 한 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이 회장의 목에 걸려있던 검은 종이 장미가 낯선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종이 장미는 비밀리에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김상수 PD의 목에 걸려있던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걸 말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김상수 PD와 가족들에게 비밀로 해주기로 한 것이 세상에 알려져야 했다.

사실 최 형사는 이 회장이 지하실에서 살해당한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처럼 화면을 보고 추리해낸 것이 아니고, 김 PD의 입을 통해서 이미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단서는, 이 일을 저지른 자들이 남녀로서, 부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연의 관계도 아닌 것 같고, 서울 말씨를 쓰는 남자와 전라도 사투리 억양이 섞인 여자라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는, 범행을 저지른 장소가 단독 주택으로 상당히 넓은 정원이 딸렸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 모든 것은 김 PD가 그 곳에 잡혀있으면서 나름대로 추측한 결과였다.

“잔인한 놈들입니다.”

그는 이미 몇 번이나 본 테이프를 끄며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연놈이지요.”
“하긴 남자라면 저딴 식으로 살해하진 않았을 겁니다. 하여튼 잔인하고 괴상망측한 살인치고 여자가 끼지 않은 사건은 없었으니까요.”
“부검 결과, 이 회장 사타구니에서 아카시아 꿀이 발견됐다면서요? 수거된 개미들에서도 꿀이 검출되고요?”
“맞습니다. 불개미들을 그냥 풀어놓으면 이 회장의 몸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니까, 사타구니에 꿀을 발라 유인한 거죠. 개미들이 당분을 엄청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말이죠.”
“덕분에 개미들은 포식을 했을 거고요.”

최 형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그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은밀히 말했다.

“이건 최 형사님과 제가 한 팀이 돼서 믿고 하는 말인데, 이 회장은 사생활이 비디오 테이프에서 고백한 것보다 훨씬 더 문란했어요. 그 양반 식성도 워낙 잡식성이라서 웬만큼 반반한 계집애들은 그냥 두지 않았어요. 비서실 아가씨들이 몇 달이 멀다하고 바뀌곤 했는데…….”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이미 식어버린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 삼켰다.

“다른 것은 몰라도 비서 아가씨들 면접만은 반드시 직접 했답니다.”
“그래요?”

최 형사로서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는 최 형사의 반응에 우쭐했던지, 또 다른 비밀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 시내, 아니 대한민국의 웬만한 요정마담치고 그 영감 품에 안기지 못했다면, 그 바닥에선 별볼일 없는 여자로 취급될 정도였답니다.”
“대단한 영감이었군요.”

최 형사는 멋쩍게 웃었다.
그가 새끼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 양반 운전기사가 이거 공급책이었고요.”

새끼손가락은 여자를 뜻했다.

최 형사는 그의 말을 들으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불빛을 본 듯한 느낌, 이 사건은 반드시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이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동물적인 감각,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설명이 되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최 형사는 담배를 꺼내 물며 툴툴거리듯 말했다.

“젠장, 누군 한 명의 여자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해 쩔쩔매는 판에…….”
“그 양반이야 그게 세상 살아가는 낙이 아니었겠어요? 무슨 걱정거리가 있었겠어요? 어떡하면 짧은 이 한 세상 좀더 멋지게 즐길까, 그게 고민이었겠지요. 아닌 말로 정력에 좋다는 것은 천금을 주곤들 사 먹지 않았겠어요? 최 형사님이나 저처럼 못난 사내들이 허구헌날 밤잠도 설치며 피비린내나는 살벌한 곳을 헤매는 시간에도 그 영감은 향기로운 계집 품에 안겨 세월 가는 줄 몰랐겠지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래서 부럽습니까?”

최 형사는 그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부럽다마다요. 나도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이 생활을 때려치우고 싶습니다.”
“그러다 이번 범행을 저지른 놈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서 개미들에게 그 곳을 뜯겨 먹히면서 죽으면 어쩌시려고.”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아이구,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

“실은 제가 이 곳에 파견되기 전에 최 형사님에 대한 자료를 봤습니다. 강력범 검거 경력이 화려하시더군요. 나이도 저보다 두 살 위시고요. 앞으로 형님으로 모실 테니 잘 봐 주십시오.”

그가 새삼스럽게 최 형사에게 공개를 숙이며 말했다.

“까짓것 그럽시다. 오늘은 멋진 아우를 둔 기념으로 내가 한 잔 사리다.”
“거 좋지요. 부검을 보느라 피 튄 눈을 소주로 씻어보자고요, 형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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