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새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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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새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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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개미들은 당분을 특히 좋아하기 때문에, 색마의 심볼과 사타구니에 조금씩만 발라 놓으면 꿀을 먹으려고 달려들어 강철 같은 이빨로 물어뜯게 돼 있어요.”
“!”

정말이지 기가 막힌 생각이었다. 그 말을 듣고보니, 제목은 잊었지만 언젠가 읽은 책의 한 부분이 생각났다.

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은 부족 간에 싸움을 하다 적을 생포하면 손과 발을 꽁꽁 묶고는 개미 굴 앞에 구덩이를 파 목까지 묻고 머리만 땅 위로 내놓게 했다. 그 상태로 하루만 지나면 적의 얼굴에 붙은 살은 개미에게 깨끗이 뜯겨먹히고 하얀 두개골만 남았다. 그들은 그 두개골을 장대에 꿰어 마을 입구에 세워 놓았다. 그것은 자신들의 용맹성을 과시하기 위해, 용사로서의 위용을 다른 부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마을 입구의 장대에 매달린 적의 두개골 수가 많은 부족일수록 적에게는 함부로 침범하지 못할 용맹한 부족으로 인식된다는 것이었다.

진희는 비디오 카메라로 이 회장의 사타구니를 클로즈업시켰다. 불개미들은 집요했다. 어느 새 살 속 깊이 파고들어간 녀석들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피부와 실핏줄 정도만 건드렸지만, 잠시만 지나면 정맥과 동맥도 물어뜯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 테이프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글쎄.”
“못된 짓을 한 놈들은 잠도 제대로 못 자겠죠?”
“나라고 해도 그럴 거 같아.”

이 회장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댔다.

“시끄러워서 못 견디겠어요.”

진희는 이 회장의 입에 테이프를 붙였다. 귀가 따갑도록 들려오던 비명이 일시에 그쳤다. 이 회장의 사타구니에서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점점 많아지며 하체가 붉은 잉크를 뿌린 듯 번들거렸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개미들이 마치 조직적으로 훈련을 받은 병사처럼 사타구니 살을 뜯어 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던 개미의 모습이 시간이 지나면서 괴기스러우면서도 묘한 흥분을 주었다.

“몸부림치는 것이 꼭 소금 맞은 지렁이 같군.”
“언제쯤 저 광란의 춤이 멈출까요?”

“신경의 마디마디가 끊기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눈을 하얗게 뒤집고 죽어가겠지. 한때는 저 심볼로 인해 인생의 환희를 느꼈는지 몰라도, 이젠 자신의 심볼이 원망스럽기 그지없겠지.”

태진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이 회장을 보았다. 그가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개미들은 더 악착같이 덤벼들 것이다. 자신들의 살아있는 먹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빨리 죽이기 위해, 본능적으로 급소를 찾아 집중적으로 물어뜯을 것이다.

태진은 기발한 생각이 났다.

“마지막으로 담배나 한 대 물려줄까?”
“담배를요?”

진희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담배를 피우면 살고 싶은 욕망이 더 솟구치지 않을까?”
“후후후, 악마!”

진희는 태진을 보며 웃었다.

태진은 입을 봉했던 테이프를 떼내고, 불 붙인 담배를 입에 물려주었다. 이 회장은 진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급하게 몇 모금 빨아들였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엔 극심한 고통도 잊은 듯 표정이 평온해 보였다.

“나, 나를 이대로 죽일 거요?”

몇 분이 흘렀을까. 이 회장은 필터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뱉고 절망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우리가 지금 널 데리고 장난을 치는 걸로 보이나?”
“제발 살려주시오. 내 재산을 전부 드리리다. 제발 개미 좀 떼어내 주시오. 제발, 제발 부탁이오!”
“미안하지만 안 돼. 우린 네 재산에 대해 관심도 없을뿐더러, 넌 이미 우리 얼굴을 알고 있어.”

태진은 시니컬하게 웃었다.

“…… 좋아요. 지금까지는 내가 세상을 잘못 살았다고 합시다. 그러나 한 번은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소. 내가 세상에 나가 지난 세월들을 반성하며 제대로 살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소. 이 늙은이를 가엾게 여겨 한 번만,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시오. 내 이렇게 진심으로 참회하지 않소.”

이 회장은 애원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네 놈이 더 잘 알 텐데.”

“당신들의 얼굴을 내가 알기 때문이라면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소. 살려만 준다면 납치된 순간부터 눈을 가려 못 본 걸로 하겠소.”
“너 같은 놈에게도 명예가 있었나?”

태진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 회장은 태진의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진희가 그의 입에 다시 테이프를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 날 기어이 죽일 거면…….”

진희는 동작을 멈추었다.

“제발 고통이나 없게 죽여 주시오.”

이 회장은 이제 모든 걸 체념한 듯,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이 개미 떼에게 뜯겨 죽는 추한 고통에서나마 벗어
나게 해 주시오. 이 늙은이의 마지막 부탁이오. 제발…….”

태진은 죽음을 앞둔, 너무도 진지하고 숙연한 그의 말에 일말의 동정심이 일었다. 그의 감기다시피 한 눈빛이 그만큼 간절했다. 적어도 그 부탁만은 진심인 것 같았다. 이 세상에서 제아무리 악한 인간이라 해도, 어찌 자신의 코앞에 닥친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인가. 형장으로 향하는 사형수도 잠시 후면 죽을 몸이지만 흙탕물을 피해 간다는데, 그것이 인간이 가진 삶에 대한 애착이라는데, 어찌 영감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인가. 어차피 죽을 몸이지만 개미에게 뜯긴 추한 모습으로는 남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이 회장은 피를 과다하게 흘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탈색되어가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몇 시간도 버티기 힘들 거 같았다. 고통스러움에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채워진 쇠고랑에 패어 손목의 하얀 뼈가 드러나 보일 지경이었다.

태진은 진희를 돌아보았다.

이 회장에 관한 모든 권한은 그녀에게 있었다. 진희만 허락한다면, 영감의 말대로 더 이상의 고통을 주지 않고 끝내고 싶었다. 이만큼 고통을 당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진희는 태진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 올라가요.”

진희는 태진의 등을 밀었다.

거실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마지막 부탁마저 거절당한 이 회장은 신경의 마디마디가 끊기는 듯한 처절한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태진의 귀에는 아직도 영감이 질러대는 비명이 이명처럼 남아있었다. 쉽게는 잊혀지지 않을 비명 이었다.

태진은 창가에 섰다.

폭우 속에 잠긴 도심이, 짙은 화장을 한 작부처럼 요염한 불빛을 뿌리고 있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이 꾸역꾸역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정말 올바른 것인지, 이 순간만은 자신이 없었다. 한 인간의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는 사실이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진희가 꼭 끌어안았다.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그녀의 뭉클한 젖가슴의 감촉이 등에 전해져왔다. 태진은 장승처럼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지금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은 진희도 폭우 속에 갇힌 도심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도심의 밤은 그렇게 점점 더 깊은 혼미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태진은 자신의 목덜미에 방울져 떨어지는 눈물을 느꼈다. 진희는 울고 있었다. 소리는 내지 않지만 온몸으로 울고 있었다. 왜일까. 진희는 왜 우는 것일까. 하지만 태진은 차마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등을 통해 느껴지는 그녀의 소리 없는 통곡을 온몸의 떨림으로 감지할 뿐이었다.

진희는 이 회장의 마지막 애원마저 매정하게 거절한 자신이 무서웠다. 그러나 여기서 약해지면 안 됐다. 한 방울 피도 섞이지 않은 남을 죽이면서도 약해진다면, 장차 자신의 아버지인 나석만 회장을 납치했을 때는 어떡할 것인가. 그는 결코 용서할 수는 인간이었다. 자신의 어머니를 자살하게 만들고, 지금의 자신이 이렇게까지 되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를 납치하면 이 회장보다 몇 배, 아니 백 배, 천 배 더 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하리라고 입술을 피가 맺히도록 깨물며 맹세했다.

그러나 그런 진희의 마음을 알 리 없는 태진은 그녀를 참 알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번개가 일었다.

순간, 정원의 나무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태진은 등 뒤에 있는 진희의 소리 없는 울음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진희의 젖어있는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창 밖의 폭우를 보며 석상처럼 서 있었다. 언제까지라도 그대로 서 있을 것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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