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장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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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장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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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부를 기다리던 광호는 두 번째 소주병을 하늘 높이 던졌다. 달빛에 반사되어 나르는 비행접시처럼 보였다. 멀리 떨어지며 가벼운 마찰음을 냈다. 무서움을 참고 있었던 광호는 그 소리에 더욱 섬뜩함을 느꼈다.

작부의 얼굴이 아른거려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엄마는 살이 낀 아들이 밤이슬을 맞고 다니는 것을 걱정했다. 작부가 미치게 보고 싶었다. 술집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작부들은 다른 곳에서 잠을 잔다.

공동묘지를 내려왔다. 천천히 비틀거리며 걸었다. 좁은 오솔길을 헤치고 한참을 나와 큰길에 들어섰다. 술에 취하여 아무 것도 무서운 게 없다. 천천히 읍내를 향해 걸었다.

새벽 장터는 추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쓰레기 더미와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일장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른 새벽이지만 상인들은 벌써 장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장날 오후가 되면 읍내 장터는 흥청거리기 시작한다. 자기 물건을 자랑하는 상인들, 흥정을 해대는 손님들의 웃음과 외침으로 왁자지껄한 골목에서는 욕설과 농담 그리고 물건을 깎는 소리로 가득 찬다.

소금물에 절인 야채, 돼지 창자, 쌀과 밀가루, 각종 잡곡과 기름, 밀가루, 한약, 약초 뿌리, 면과 비단을 팔았다. 신발 가계에서는 예쁜 신발들을 잘 진열해 놓고 손님을 유혹하며 팔았다. 푸줏간의 돼지 머리와 주렁주렁 매달린 여러 종류의 고기, 설렁탕, 막걸리를 팔았다. 옷을 파는 가계에서는 바지와 속옷, 양복, 티셔츠를 걸어 놓고 팔았다.

광호가 어릴 적에 보았던 시장과는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광산촌에 돈이 흔하던 시절에 시장 난전은 정말로 낭만이 있었던 곳이다. 젊은 아가씨들에게는 화장품이 인기였다. 코티 분이나 동동 구르무, 머리에 바르는 동백 기름, 머리 빗, 머리를 묶을 때 쓰는 고무줄과 소품들, 손거울, 같은 것들이 인기가 있었고, 그러한 것들을 난전에 펴놓고 팔았다.

난전의 애 띤 젊은 총각 상인은 아가씨들에게 손짓해 부르며 물건 자랑을 하기도 하고 농담을 하기도 하면서 물건을 팔았다. 그럴 때면 순진한 시골 처녀들은 얼굴을 붉히며 피하기도 하지만 다소곳이 흥정에 응하기도 해서 시장의 아름다움과 멋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시장은 늘 흥청거리고 열기가 있었으며 낭만과 사랑이 살아 숨쉬었다. 길 양편을 따라 있는 난전에는 간편한 옷, 내의, 농기구, 물 끊이는 화덕, 주전자와 도기, 고무줄과 각종 끈, 향이 나는 양초 같은 것들을 팔았다.

농부와 광부들은 그 속을 비집고 다니며 물건을 흥정하고 구경하며 북적거렸다. 뒤쪽으로 있는 가계들은 다소 좀 여유가 있는 상인들로서 언제나 많은 단골 손님을 가지 있었다. 그 중에 왕만두를 찌는 가계는 늘 아이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무쇠 솥뚜껑을 열 때마다 먹음직한 찐빵과 왕만두가 김을 내고 있어서 그것을 사 먹고 싶은 유혹을 늘 가지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진을 찍는 사진관이 있었다. 그 곳 역시 인기가 있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소원이었고 특히 흘러간 배우의 사진이 색 바랜 채 걸려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그 곳에 가기도 했다. 사진관 진열장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교태를 부리거나 정장을 한 아가씨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어서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또 그 옆에는 면바지와 셔츠를 파는 가계가 있었고 긴 양말과 장갑을 파는 가계도 있었다. 대개의 아이들은 추운 겨울에 어머니들이 손수 떠준 장갑을 끼었지만 시장에서 파는 가죽 장갑을 끼고 싶어해서 어머니들을 조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조금 더 벗어나면 우시장이 있다. 우시장에는 늘 늙은 황소와 젊은 암소가 가지런히 팔려 나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새끼소가 울고 서 있는 정겨운 풍경들이 있었다. 소를 팔러 온 농부는 정들게 기른 소가 어서 팔리기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막걸리를 한 잔 사서 마시며 기다리기도 했다. 광호는 그런 우시장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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