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첫 키스 대상자가 되어 주었으면
(2) 나의 첫 키스 대상자가 되어 주었으면
  • 박정수 소설가
  • 승인 2005.10.10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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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은 고개를 들어 멀리 청중들에게 시선을 꽂았다. 어떤 이는 소영을 부러워하는 시선이 주는가하면 어떤 여인은 입을 비죽거리며 질투와 증오의 눈빛이 확연했다. 그러나 이 순간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듯 오만한 자태로 단상에서 내려가라는 말을 잊고 있었다.

“내려가셔도 됩니다.”

강사의 두 번째 말에서야 다리에 힘을 싣고 계단을 내려왔다. 소영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강사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여인의 입술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끈 달인 주머니형 입술인데 입술 양쪽이 2~3미리 약간 뜨는 듯 하면서 말을 할 때는 입술이 물 흐르는 듯 움직이지요. 남자들에게 쾌감을 안겨주는 입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도넛형이라는 입술이 있는데 입술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넓이가 거의 같고 두툼하며 길이가 길지요. 이런 여성은 대체로 모성애적이고 말수가 적어 온유한 편인데요. 남편을 가정적으로 만들고 아내에게 꼼짝 못하게 하는 입술이 뭔지 안세요? 천장의 좁쌀형 입술인데 입을 다물면 한일자가 되며 입이 작고 입공간이 삼각형이랍니다. 그 외에도 입술의 종류는 참 많습니다. 가위벌린입술, 누에입술, 붕어입술, 배꼽입술 등은 대게 팔자가 세어 과부가 되거나 술집에 종업원이나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며느리 선을 볼 때는 입술을 보고 고르는 편이 좋습니다.”

장내는 서로 아는 사람들 끼리 수군수군 거렸다.

“그래 선생님 말이 맞는가 봐. 성숙이 있잖아 게 입술이 꼭 누에처럼 생겼지 않니?”
“그러게, 그래서 교통사고 났을까?”
“그렇다잖아. 게 입술이 누에처럼 이렇게 굴곡이 있잖아.”

소영의 옆에 앉은 삼십대 여인이 자기의 입술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자 다른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내 입술은 거머리 천마리형 같으니?“

“그래. 거머리 천 마리가 뭐니 만 마리 같다. 남자들을 좀 울렸니?” 죽자살자 따라다닌 것도 어쩌면 네 입술 때문인지도 몰라.“

그들은 수다를 떨기 시작하여 소영은 그들이 길게 얘기하도록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더 강사의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내일은 열 번째 선을 보는 날이어서 옷을 한 벌 사려고 백화점을 가야했다. 집에 옷이 없는 것도 아니다. 투피스만도 열 벌이나 된다. 한 번 입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벗어놓은 옷도 몇 벌이 된다. 문을 열고 나가면 고급백화점이 있는데도 택시를 타고 멀리 신촌 현대로 가자고 행선지를 말했다.

택시에서 내린 소영은 곧장 주니어 코너로 올라갔다. 허리가 남들보다 굵은 편이라서 주니어 코너에는 마땅한 옷이 없는데도 미스라는 이유로 코너를 몇 바퀴 돌았다. 결국은 맞춤 코너에서 옷을 고르기는 했으나 허리둘레 때문에 고쳐야 한다며 일주일 후에 찾으러 오라고 하여 그냥 백하점 문을 나섰다.

선을 보았자 또 퇴짜일텐데 하고 옷에 미련을 버렸다. 남자들이 소영을 싫어하는 이유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 말고 눈이 아래로 처져 팔자가 세다는 말은 들었다. 그래서 여러 번 유명하다는 관상 보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일찍 시집가면 남편이 둘이 되니까 늦게 시집가는 것이 좋다고 하기에 나이를 잊고 살았다.

“한번 입어 봐도 되지요?”

소영은 옷을 들고 거울 뒤로 돌아갔다. 힙이 커서 꽉 끼기는 했으나 어께가 맞아 걸치고 거울 앞에 다가섰다. 옷매무새를 보지는 않고 입술만 쳐다보는 순간 종업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어쩌면 그렇게 잘 맞나요. 손님 옷 같아요.”

소영은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무척 세련되어 보이세요. 입고 나가면 남자들이 그냥 둘 것 같지 않네요.”

그제서야 내가 옷을 사려 왔구나 하고 손으로 엉덩이를 쓰려 내렸다.

“그런데 말이죠.”

소영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감추자 종업원은 소영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나 예뻐요?”
“그럼요. 눈도 큼직하고 눈썹도 가지런하시고 코도 오뚝하시고....”

종업원이 잠시 자랑을 멈추자 다음 말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입가에 미소를 지웠다.
종업원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마도 넓으시고 .............”

소영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거울 뒤로 들어갔다. ‘남들은 내 입술이 최고라고 하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옷을 훌훌 벗어 들고 나왔다.

“마음에 드세요?”

종업원은 소영의 곁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소영은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계단을 고 내려오면서도 종업원이 원망스러웠다. 입술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더라면 샀을 텐데 장사를 잘 못한다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서 다시 거울을 쳐다보았다. 핸드백 속에서 립라이너를 꺼내어 입술 가장자리를 짙게 칠했다.

“누가 이 여자를 못생겼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소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아래 입술로 윗입술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빨아 당겼다. 촉촉한 융기가 입술에 묻어났다. 이 예쁜 입술을 위해 보험이라도 들어놓을까 생각했다. 마리린몬노는 자신의 유방을 보험에 가입했다고 하던데 그런 보험은 없을까를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앞니가 모두 들어날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렸다가 오므렸다. 내일 선을 볼 때는 입술에 포인트를 맞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튿날 소영은 거울 앞에 앉아 다른 때보다 립라이너를 작게 그렸다. 남자들이 입이 작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책에서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핑크빛 립스틱을 바르고 립그로스로 마무리를 지었다. 옷은 한번도 입지 않았던 짙은 갈색 투피스를 걸쳤다. 이번에 딱지를 막으면 다시는 선보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대문을 나서려는데 어머니가 따라 나오며 말했다.

“이번에는 병신이 아니거든 승낙을 하렴.”

소영은 대답도 하지 않고 대문을 밀고 나왔다. 어쩐지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입가에 침을 발랐다. 나의 첫 키스 대상자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바랬다.

가을바람이 머리카락을 가볍게 두들기며 스쳐지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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