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새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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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새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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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이만덕 회장의 운전기사와 이발소 주인은 사색이 되어 떨고 있었다. 열 명도 넘는 형사들이 무전기로 제각각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L호텔 지하 주차장은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 자리에는 김상수 PD 사건을 은밀히 추적하고 있는 최 형사도 있었다.
최 형사가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어떤 아가씨가 접근해서 이 회장이 5층 신사복 코너나 7층 가구 코너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거죠?”

“네, 몇 번이나 말해야 됩니까?”

운전기사는 답답했다. 같은 말을 형사들마다 묻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이발소 주인에게 물었다.

“이 회장이 나간다고 운전기사에게 연락을 했다 이거죠?”
“네, 직접 통화를 했습니다요.”

이발소 주인도 울상을 짓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최 형사는 날카로운 눈매로 이발소 주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운전기사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아가씨 얘기를 듣고 급하게 5층과 7층으로 올라갔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시 내려와 당신에게 확인한 시간까지가 약 10분 정도구만. 일이 벌어졌으면 그 사이에 벌어졌고.”

최 형사는 수첩에 메모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운전기사에게 시선을 꽂으며 물었다.

“그 아가씨의 얼굴을 확실히 기억할 수 있겠소?”
“네,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선글러스를 쓰고 있었지만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일단 몽타주를 작성해야 하니까 동행해줘야겠소.”
“알겠습니다.”

형사들은 주차장 현장에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있는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어이, 김 형사. 혹시 모르니까 이 회장 차의 지문들을 감식해 봐. 그리고 호텔 방제실에 가서 오늘 주차장 녹화 테이프를 확보하고.”

최 형사의 말에 김 형사는 호텔 방제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박 형사는 시외로 빠지는 검문소마다 철저히 검문을 하도록 연락하고.”

최 형사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사건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끼리 한 범행이 아니고 일단 여자가 끼였다면 계획된 납치라는 판단이 섰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가 온통 극으로만 치닷는 노사 투쟁으로 뒤숭숭한 이때에 대재벌 총수가 납치됐다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최 형사는 운전기사, 이발소 주인과 함께 호텔 방제실에서, 이 회장이 이발소에서 나온 시간대에 녹화된 테이프를 확인했다.

“맞아요! 저 여자예요!”

운전기사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손가락으로 화면 속의 진희를 가리켰다.

이 회장이 납치된 것은 확실했다. 이 회장과 문제의 여자가 뭔가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남자가 이 회장 뒤로 가서 전자 충격기로 기절시키는 장면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알아볼 정도로 녹화되어 있었다.

최 형사는 우선 범행에 사용된 차의 종류와 번호를 확인하고, 교통경찰과 검문소마다 연락을 취하도록 했다. 그리고 차의 소유자도 확인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먼저 수사 전담 팀을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건이 사건인만큼 이 방면의 베테랑들로 팀을 짜야 했다. 이런 사건일수록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은 비공개로 수사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회사와 이 회장의 집, 이발소 등에 떠벌리고 다니는 바람에 그만, 사건의 냄새라면 사냥개 코 이상 가는 기자들에게 노출되고 말았다. 이제 어차피 공개 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사건 현장에 기자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기는 했지만, 주차장만 벗어나면 플래시 세례와 질문 공세를 받을 것이 뻔했다.

다른 때와 달리 이번 사건은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범인들이 모자를 눌러써 얼굴을 가린 것도 그렇고, 사건 현장에서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은 것도 그랬다. 그나마 조금 단서가 있다면, 운전기사가 범행에 가담한 여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도 어쩐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그런 엄청난 범행을 저지르며 자신의 얼굴을 그렇게 쉽게 노출했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들이 아마추어라면 몰라도 변장된 모습일 가능성이 높았다.

최 형사의 무전기 소리가 터졌다.

“반장님, 이 형삽니다. 범행에 사용된 차량을 조회해 봤는데, 역시 우리가 추측한 대로 도난 차량입니다. 그런데 차와 차 넘버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야?”
“그러니까 범행에 사용된 차를 훔쳐, 다른 차의 넘버판을 떼어달았다는 얘깁니다.”
“뭐야! 그럼 차 넘버판을 잃어버린 차는 확인했어?”
“네, 창동에 있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세워 뒀던 차입니다. 이미 파출소에 신고가 된 상태였습니다. 범행에 이용된 차는 아직 미확인 상태입니다.”
“알았어. 그럼 계속해서, 범행에 이용된 차를 추적해 보라고.”
“지금 주차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태진은 호텔 지하 주차장 앞에서 검표원의 제지를 당했다. 몇 시간 전에 이만덕 회장을 납치한 후 다시 찾은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지하 주차장에서 사건이 발생해서 지금 경찰이 꽉 차 있습니다.”

검표원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무슨 사건인데요?”
“한국그룹 이만덕 회장이 이 주차장에서 몇 시간 전에 납치됐답니다.”
“그래요?”

태진은 겉으로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내심 미소를 지었다.

“호텔 고객들이 주차하지 못해 난리가 났습니다.”

검표원은 얼굴을 찌푸렸다. 주차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주차장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느라 지친 기색이었다.

“범인은 잡았습니까?”

태진은 내친 김에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글쎄요. 형사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까지 신통치 않은 모양입니다.”
“그럼 차를 어디다 대죠?”
“옆 건물 쇼핑센터로 가시면 될 겁니다.”
“수고하세요.”

드디어 게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태진은 그곳에서 빠져나와 시내로 접어들며 라디오를 켰다.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려 뉴스에 맞췄지만, 아직은 이 회장에 관한 보도를 하는 곳이 없었다. 일이 이 정도로 벌어졌다면, 오늘 저녁 뉴스쯤에는 보도될 것이 틀림없었다.

여전히 천둥과 번개와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을 든 사람들이 바람에 휩쓸려 쩔쩔매고 있었다. 심술궂은 바람은 이따금, 아가씨들의 짧은 치마를 들썩거려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윈도 브러시를 빠르게 동작시켜도 폭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소영이 집 근처 꽃집에 들렀다.

“어서 오세요.”

꽃집 아가씨가 반갑게 맞았다.
태진은 꽃들을 보며 물었다.

“흑장미가 몇 송이나 있습니까?”
“몇 송이 정도 필요하신데요?”
“많을수록 좋습니다. 싱싱해야 하고요.”

아가씨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쪽으로 와 보시죠. 그렇잖아도 어제 흑장미를 최상품으로 많이 들여놨다가 오늘 날씨가 이래서 한 송이도 못 팔았는데…….”

아가씨는 꽃들을 보관한 유리 진열장 문을 열고 흑장미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처럼 흑장미는 꽃잎이 벌어지기 직전인 가장 아름다운 상태였다.

“전부 몇 송이입니까?”
“어머! 다 사시게요?”
“네.”
“이백 송이나 되는데요?”
“최대한 예쁘게 포장해 주시죠.”
“이 많은 장미를 어디다 쓰시게요? 선물하실 건가요?”
“네.”
“좋겠다! 어느 여자분이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면 저도 장미 원가에 차비 정도만 붙이고 드릴게요. 앞으로 자
주 애용해 주세요.”
“그러죠.”

아가씨는 장미 이파리를 다듬고 포장한 다음 붉은 리본까지 달았다. 이백 송이를 한데 묶어놓고보니 만만찮은 부피였다.

“십만 원만 주세요. 원래는 한 송이에 천 원씩 이십 만원을 받아야 되지만.”
“그럼 제가 십오만 원을 드리면 서로가 적당한 가격이 되겠군요.”

태진은 꽃값을 계산했다.

“제가 이 자리에서 꽃집을 3년이 넘도록 했지만, 선생님처럼 멋있는 분은 처음이네요. 주시는 거니까 고맙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꼭 들러주세요. 그때는 제가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장미를 한 다발 선물할게요.”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에 보죠.”

아가씨는 장미를 차 뒷좌석에 실을 때까지 우산을 받쳐주었다. 고마움이 뭔가를 아는 아가씨였다. 태진은 다음에 소영이 집에 올 때도 이 곳에 들러 흑장미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차 안이 흑장미에서 풍기는 향으로 가득 찼다. 이 정도면 소영이의 집을 온통 장미로 장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영이가 장미를 받고 좋아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차는 미끄러지듯 빗속을 뚫고 달렸다.

차창 밖 저만큼 앞에서 번개가 무서운 기세로 번쩍이는가 싶더니, 몇 초 간격을 두고 고막이 멍멍할 정도로 천둥이 으르렁 거렸다. 얼마나 비가 쏟아져 내리는지, 한낮인데도 주위가 어두웠다. 차들이 모두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녔다. 봄 날씨치고는 살벌했다.

태진은 아파트 공터에 차를 세우고, 작살처럼 내리꽂히는 비를 우산으로 막으며 뛰었다. 미친 년 널 뛰듯 너울대는 바람때문에 20여 미터를 뛰었는데도 바지 아랫부분과 구두가 흠뻑 젖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 거센 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졌다. 아파트 전체가 빗속에 갇혀 사람의 그림자라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것만 같았다.
태진은 소영의 집 문앞에서 심호흡을 한 후 챠임벨을 눌렀다.

“삐리리릭…….”

챠임벨이 새 소리를 냈다.

기다리기라도 한듯 곧바로 문이 열리고, 그토록 보고 싶던 소영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생일에 초대받았을 때 입었던 원피스 차림이었다.

“어머나! 웬 흑장미를 이렇게나 많이…….”

놀라며 웃는 소영의 얼굴이 이백 송이의 장미보다 훨씬 더 환했다. 안으로 들어선 태진은 장미 다발을 신발장 위에 올려놓기가 바쁘게 소영이의 입술을 덮쳤다. 길고 깊은 키스였다. 소영인 그의 불 같은 키스에 얼음 기둥이 녹아 무너지듯 한꺼번에 허물어졌다. 태진은 소영이가 무너져내리지 못하도록 벽에 세우고 오른쪽 무릎을 소영의 다리 사이에 세워 넣었다. 소영인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태진은 몸을 숙여 끈질기게 소영의 입술을 탐했다. 무릎에 와닿은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의 감촉과 신음이 가슴에 불을 질렀다.

“아아…!”

태진의 뜨겁고 거친 손이 소영의 원피스를 거칠게 위로 올리고 젖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소영의 젖가슴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고, 유두도 딱딱하게 돌기되었다. 소영이는 원피스 안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소영의 입술에서 벗어난 태진의 입은 탐스런 젖가슴을 한입에 삼키기라도 할 듯 몰아넣고 자근자근 깨물었다. 다른 손으로 공략한 그녀의 은밀한 숲은 벌써 이슬 내린 풀밭처럼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비단결보다도 부드럽고 무성한, 원시림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옹달샘은 이미 그의 손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그만…… 방으로 가요.”

소영이는 소금 맞은 지렁이처럼 온몸을 비비꼬더니 끝내 그대로 주저앉았다.

태진은 소영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내팽개치듯 털썩 던져놓고 서둘러 옷을 벗기 시작했다. 비에 흠뻑 젖은 바지와 양말이 몸에 착 달라붙어 쉽게 벗겨지지 않고 애를 먹였다. 소영은 이미 알몸이 되어, 바지와 양말을 쉽게 벗지 못하고 쩔쩔매는 태진의 모습을 보며 킥킥댔다. 그는 화난 사람처럼 애 먹이던 바지와 양말을 집어던지고, 소영의 알몸을 향해 다이빙 선수처럼 덮쳤다.

“숨 막혀요.”

소영이 그의 엉덩이를 꼬집으며 곱게 눈을 흘겼다.
귀여운 녀석.

방 안은 이미 무드를 잡아 놓은 상태였다. 실내가 적당히 어둡도록 커튼을 치고, 촛불을 밝힌 채,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며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켜 놓은 것이 분명했다. 태진은 배 고픈 아기처럼 서둘렀다. 아니, 굶주린 승냥이가 토끼 사냥을 끝내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사냥감을 갈갈이 찢어 먹듯 소영이의 몸을 잔인하게 유린하기 시작했다.

“아, 아파요.”

태진의 포악한 이빨과 발톱에 잡힌 먹이는 속수무책이었다. 온몸에 피를 흘리며, 연한 살이 갈갈이 찢겨 고통의 신음을 내며 서서히 죽어갔다. 굶주리고, 피 맛을 본 태진은 더 거칠게 그녀의 살을 찢어발겼다.

“정말 아파요. 상처나겠어요.”

소영이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두 손으론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가만있어, 더 사나워지기 전에.”

장난기가 발동한 태진은 그녀의 유두를 문 이빨에 지긋이 힘을 더했다.

“살살…… 아프지 않게, 부드럽게 하란 말예요, 제발. 가슴에 이빨 자국이 남겠어요”

소영인 금방이라도 울 듯이 쩔쩔맸다.

“난 이미 너무 굶주렸다고. 젖이 나오지 않으면 젖가슴이라도 한 입 베어 먹을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뭐, 뭐예욧!”

소영의 작은 주먹이, 태진의 머리와 어깨에 창 밖의 폭우처럼 무차별로 쏟아졌다. 그는 소영이의 주먹을 고스란히 견뎌내며, 이빨과 발톱을 더 사납게 곧추세웠다. 소영의 몸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후로랄 계열의 향수였다.

“후후후…….”

갑자기 소영이 웃었다.

“왜 웃어?”

태진은 거칠게 몰아붙이던 이빨과 발톱을 멈추며 물었다.

“선생님이 꼭…….”
“꼭 뭐?”
“발정난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뭐야!”

소영이는 이미 손아귀에 들어온 먹이였다. 잡힌 먹이를 앞에 두고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시간도 충분했다. 어차피 잡은 먹이,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야금야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뜯어먹으리라 생각했다. 거미가 거미줄로 먹이를 칭칭 감아 놓고 여유를 즐기는 것처럼…….

태진은 빽빽하게 꽂힌 CD 중에서 드뷔시 것을 골라 오디오에 넣었다. 왜 갑자기 드뷔시의 ‘시링크스’가 생각났는지 알 수 없었다. 이 곡을 들은 게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가물거렸다. 한때는 음악에 미쳐 살 때가 있었는데, 얼마간 음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음의 여유를 잃어서일까.
소영이 태진의 팔을 베고 누웠다.

태진은 이불을 걷어차고 누운 채 그녀의 윤기 흐르는 긴 머리카락을 만져도 보고, 볼에 대고 비벼도 보았다. 감촉이 좋았다. 한바탕 흐드러지게 섹스를 한 뒤라서 그런지 기분 좋은 나른함도 밀려왔다.

“누구 거예요?”

소영이 태진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드뷔시.”
“좋은데요. 몇 번쯤 들은 거 같은데 작곡가와 곡명을 잊어버렸어요.”
“그게 좋은지도 몰라. 음악이란 이론적인 지식으로보다는 마음으로 들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
“플루트는 자연의 소리에 가장 가까운 천사의 악기라면서요?”
“어떻게 알았어?”
“날 무시하는 거예요? 나도 음악에 대한 그 정도의 기본 상식은 있다고요.”
“곡명이 시링크스야.”
“시링크스? 무슨 뜻이죠?”
“그리스 아르카디아의 요정 이름인데, 상반신은 사람이고 염소의 다리와 뿔을 가진 목자의 신 ‘판’으로부터 구애를 받았지. 하지만 시링크스는 판을 싫어해서 계속 피해 다녔어. 그러던 어느 날, 판에게 붙잡히려는 순간 시링크스는 그곳 요정들의 도움으로 갈대로 변신해 버렸어. 그 후 갈대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를 냈지. 그러자 시링크스를 사모했던 판은 그녀를 생각하며 그녀가 변신해 버린 갈대로 피리를 만들었지.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면서 갈대 피리를 불었어.”
“애절한 사랑의 곡이네요.”
“이 곡은 드뷔시가 작곡한 유일한 무반주 플루트 곡으로, 그가 쉰 살 때인 1912년에 완성했어. 원래는 지금처럼 독립된 소곡이 아니고, 가브리엘 무레이의 드라마 ‘푸시케’의 부수 음악 중 하나인 ‘판의 피리’라는 제명으로 발표됐었지. 플루트 독주로는 당시 이 악기의 명인인 루이 플뢰리에게 헌정됐어. 다른 음악에 비해 매우 짧은 소품이기는 하지만, 플루트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한 거야. 웬만한 기교와 실력을 갖춘 연주자가 아니고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플루트곡의 최정상급인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하면 돼.”

소영은 태진의 음악에 대한 해박함에 내심 감탄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전문가 수준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그는 만나면 만날수록 신비함이 있었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행동과 느낌으로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마력 같은 게 있었다. 소영은 그를 자신의 남자로 선택한, 남자를 보는 자신의 안목에 스스로 대견해했다.

“아 참, 장미가 시들겠어요.”

소영이 그제야 생각 난듯 벌떡 일어났다.
태진은 일어서려는 소영의 허리를 솔개가 병아리를 덮치듯 잽싸게 낚아챘다.

“놔 둬. 시들면 또 사오면 되지.”

소영인 그의 억센 팔의 완력에, 그의 가슴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태진은 손을 뻗어 이 세상의 어떤 아름다운 그릇보다도 더 예쁘게 생긴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방금 미친 폭풍우 같은 시간을 보냈건만, 어느 새 그의 남자는 또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태진은 일어나 앉아, 소영의 등 뒤에서 손으로는 가슴을, 입술로는 하얀 목덜미를 애무했다. 태진의 남자는 그녀의 엉덩이 깊은 계곡에 닿아있었다. 소영이 고개를 돌려 그의 입술을 찾았다. 소영의 입에서는 달콤한 적포도주 향기가 났다.

“씻고 올게요.”

소영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이대로 가만히 있어.”

태진은 손가락 사이에 소영이의 유두를 넣어 정성스럽게 젖가슴을 애무하며 혀로 귓불을 고양이처럼 핥았다. 싫지 않은 땀 냄새와 막 피어난 듯한 밤꽃 냄새가 어우러져 코를 자극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태진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아있는 소영의 허리를 누르며 다리를 천천히 벌렸다. 엄청나게 커 보이는 엉덩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고개가 숙여진 소영의 등과 달덩이처럼 희고 커다란 엉덩이의 곡선이 기하학적으로 보이며 욕정을 자극했다. 허벅지 사이에 그녀의 은밀한 숲이 보였다. 나무 토막처럼 빳빳해진 거대한 태진의 남자는 그녀의 은밀한 숲 속의 뜨거운 샘을 향해 급하게 비집고 들어갔다.

“천천히…….”
“고개를 더 숙이고 엉덩이를 들어.”

그녀는 시키는 대로 했다.

“다리를 더 벌려.”

태진은 두 사람이 일체를 이루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능숙하게 조정을 했다. 언젠가 시골 논두렁에서 강아지들이 교접을 벌이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의 여자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남자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 상태에서 강약을 주며 허리 운동을 시작했다. 그 사이에 소영의 여자는 충분히 젖어있었다.

“아아!”

소영의 신음이 점점 증폭되어갔다. 태진은 가솔린 기관의 피스톤처럼 힘차게 가속도를 더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그마보다 뜨거운 기운이 남자로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가슴 속이 백지처럼 텅 비어가고, 미친 돌개바람을 동반한 뜨거운 열기로 머릿속이 하얗게 타버리기 일보 전이었다. 누군가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머리를 만진다면, 그의 손바닥은 뜨거운 열기에 타버려 그대로 바스러지고 말 지경이었다.

소영이는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태진의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태진의 남자는 그녀의 여자를 유감없이 공략하고 있었다. 아니, 철저하게 공략당하기를 애타게 바라는 그녀의 여자와 더불어 격렬한 춤을 추고 있었다. 끝내 소영은 방바닥에 깔린 카펫을 움켜쥐고 몸부림쳤다.

“사랑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태진은 그녀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그녀의 몸에 자신의 몸을 최대한 밀착시켰다. 남녀간의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사랑하면 이렇게 두 몸이 한 몸이 되어 짐승처럼 헐떡이며, 어느 순간 육체의 지문뿐만이 아니라 영혼의 지문까지도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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