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차 한 잔 하고 가요.”
“그럴까. 올라올 때 잠간 보았는데 경치가 죽이더군.”
훈이의 말에 연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연지는 종이컵에 커피 두 잔을 뽑아들고 와서 한 잔을 석호에게 내밀었다.
“부라보!”
훈이는 연지가 내미는 커피 잔을 높이 들었다.
“훈이 씨, 어제 밤은 너무 행복했어요. 우리가 같이 살아도 어제 밤 같은 행복은 다시 오질 않겠지요?”
연지는 훈이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연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애써 감추려 노력했다.
“우리가 함께 지낸 칠년은 내 인생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행복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당신을 쳐다보며 살아온 칠년은 내가 여자였던 게 자랑스러웠어요. 가끔 당신이 사탕발림으로 던져준 거짓말도 분명히 거짓말인 줄을 알면서도 위안이 되었거든요. 무척 당신을 사랑했나 봐요.”
훈이는 한참동안 연지의 말을 듣고 있다가 말했다.
“나와 마지막 인 것 같이 말하는군.!”
“마지막이라니요. 늘 함께 하고 있잖아요. 어제 밤 얼마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어요.”
훈이는 연지의 진지한 태도에 듣고만 있었다.
“저는 당신을 알면서 내 눈을 멀게 만들었어요. 하늘처럼 높다는 지아비 부(夫)도 하숙생같이 보였어요. 꿈 많던 여고시절. 사랑이란 글자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잠 못 들었던 그런 때도 있었어요. 사람들은 처녀시절 사랑이란 풋과일 같지만 결혼 후에야 사랑은 익어간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한 후에는 남편바라지, 아이 뒷바라지에 사랑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거든요. 당신을 알고부터 두려움도, 무서움도 모르고, 한 남자에게 쏟아 부었어요. 그러나 후회하지 않아요. 당신은 사랑을 심어 주었거던요. 그리움도 주었고, 두려움도 함께 해 주었어요.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연지는 가슴속에 묶어 두었던 말을 모두 쏟아내었다.
“나도 당신 때문에 이혼했으니까 할 말이 있겠어?. 당신과 함께 주말을 보내고 차에서 내리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고 몹시 가슴 아팠어. 그렇지만 우리는 당신 말대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느끼며 살았잖아. 이 순간에도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산꼭대기에서 방황하고 있고.”
먹다 남은 커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훈이는 커피 잔을 받아 휴지통에 넣고 길을 재촉했다. 차에 오르자 연지는 훈이의 얼굴에 얼굴을 포개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랑해요.”
훈이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연지의 두 눈엔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이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나도.”
차는 내리막길을 재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급커브 조심이란 간판이 붙은 그 밑에 가드레인이 찌그려져 있는 지점에 이르자 연지는 눈을 꼭 감았다. 두 눈 가득 고였던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림과 동시에 훈이가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핸들을 꽉 움켜쥐고 힘껏 왼쪽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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