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바람, 바람, 바람
(62) 바람, 바람, 바람
  • 박정수 소설가
  • 승인 2005.10.07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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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는 비행기를 처음 타 본다. 결혼식을 마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려고 했었는데 혼전 임신으로 아이에게 해롭다는 친정어머니의 만류로 못 갔다. 그 후에 여러 번 남편의 휴가 때에 가려고 했지만 여행 떠날 형편이 못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올 때도 그랬지만 트랩을 내릴 때는 훈이의 손을 꽉 잡았다.바람이 세차게 부는 것으로 보아 제주도라는 것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람, 바람, 바람, 남자 바람, 여자바람, 늦바람, 봄바람이 뒤섞여 불고 있었다. 렌터카에 전화를 걸어 스포츠카를 주문했다. 차가 훈이의 앞에 도착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연지는 준비한 머플러를 목에 감고 차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차는 한라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516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여보, 우리 차도 사자. 빨간 색이 어때?”
“그래. 아주 예쁜 것으로…”
“우리는 행복할거야. 그리고 나 고전무용도 배울 거야. 당신 앞에서 멋지게 춤도 추고 싶어.”
“욕심도 많군.”
“나 욕심 많아.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것 모두 하고 싶어. 해 줄 수 있지?”
“응, 당신을 기쁘게 해 주고 싶어.”
“그렇지만…”

연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왜 그래. 당신. “
“너무 제가 짐이 되는 것 같아요”
“아니야. 짐은 무슨 짐. 우리 남은 인생 멋지게 살아보자고. 자, 내려”

두 사람은 한라산의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평소에 산을 잘 오르지 않던 두 사람은 산을 오르는데 무척이나 힘들었다. 날씨가 추워도 이마에는 찝찔한 땀방울이 계속 흘러내려 눈을 따갑게 했다. 정상은 끝이 없었다. 힘이 들어서인지 바로 곁의 풍경에도 눈길 한번 줄 여유가 없었다. 마치 훈이와 7년이란 사랑을 나누는 그런 세월만큼이나, 연지의 셔츠가 땀에 흠뻑 젖었다. 그들은 풀숲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려올 때는 한결 낫겠지.”
“아니에요. 내려올 때가 더 힘들어요.”
“어째서?”
“올라갈 때는 앞만 보고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는 이치와 겸손이 필요한 법이에요.”
“맞어.”

연지는 훈이와의 사랑을 등산에 비유하고 있었다. 사랑은 무작정 좋아하고 만나면 기쁘고 즐거웠지만 막상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석호와 함께 살 것이란 생각을 하니 힘이 들었다.

“올라가자, 우리 정상을 향하여.”

훈이는 연지의 손을 잡고 앞에서 끌었다.

“나 언제까지 앞에서 끌어줄 건가요.”

연지는 훈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영원히!”
“고마워요.”

정상에 오를 즈음은 소금에 절인 파김치처럼 되어 쓰러졌다. 한동안 연지는 하늘에 흘러 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참 힘들었지요?”

훈이는 연지의 옆에 누워 말했다.

“그럼요. 이제부터 산을 오른 만치 힘들 거예요. 아주 힘든 산을 오르듯이.”
“그래. 인생은 산과 같아. 오르면 또 내려가야 하고 또 올라야 하잖아.”
“우리가 같이 살아도 또 산이 있을까요? 들판만 있었으면 좋겠다.”

연지는 훈이의 볼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연지는 훈이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 훈이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너무 좋아서 꽉 깨물었지.”

연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서울 가지 말고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
“알았어. 하루를 살더라도 당신과 살다 죽을래.”
“저도요. 남편과의 20년 섹스를 당신은 5년 안에 더 많이 했듯이 20년 살았던 만큼 행복하게 살다가 죽어요. 당신이 10년만 더 젊었으면 좋겠다.”

연지는 도살장 같은 집이 싫었다. 무능한 남편이 싫었다. 언제나 훈이의 손을 잡고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좋을 것만 같았다.

그날 밤. 연지는 훈이의 가슴에 묻혀 밤새도록 사랑을 나누었다. 그래도 낮보다는 밤이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물들었다. 꼬박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두 사람은 아침 늦게야 일어났다.

연지는 바깥으로 나왔다. 한 번도 훈이에게 선물이라고는 사 준 적이 없기에 가죽장갑을 사서 훈이의 손에 끼어 주고 싶었다. 추운 겨울 훈이의 손을 녹여주고 싶었다. 남자에게 선물하기 위해 백화점을 찾아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토끼털장갑 속에 깊숙이 손을 꼽아보았다. 따스함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호텔로 돌아왔다.

훈이는 다시 잠이 들어 있었다. 연지는 훈이의 손에 장갑을 끼워 주었다.

“웬 장갑?”
“응, 항상 내 손을 잡고 있다고 생각해줘요. 잃어버리지 마세요.”
“고마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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