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너의 행복을 위해 이혼 할거야
(59) 너의 행복을 위해 이혼 할거야
  • 박정수 소설가
  • 승인 2005.10.07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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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는 오래 전부터 자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자식에게 부모의 공을 들이지 않은 탓도 있지만 자식들이 크면 클수록 오히려 왜 나를 낳았느냐고 달려드는 바람에 할 말을 잊어버렸다.

훈이가 법원에서 나올 무렵 연지는 딸 방에서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한 여대생 딸이 현직 파출소장인 자신의 어머니의 실명까지 밝히면서 가정에 대한 무책임과 불륜을 인터넷에 폭로한 내용을 놓고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딸은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주장인 반면 연지는 어떻게 자식이 인륜을 저버리고 부모를 고발할 수 있는가, 라고 맞섰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딸의 고발장에 “어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이며 엄마이며 아내이며 모든 국민의 선망의 대상인 여자파출소장으로서 자식을 버리고 반사회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주장에 딸은 동정했다. 반면에 연지는 스무 해 넘게 살았지만 남편의 가정폭력과 의처증 때문에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던 점을 강조했다. 더불어 파출소장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이라고 하더라도 장관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 자기의 인생을 포기한 채 오직 딸 하나만을 키워보겠다고 하는 것이 도의적으로나 사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개인의 존중과 행복이 우선이라고 맞섰다.

남편을 섬기고 자식을 저버릴 바에는 자신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딸의 주장에, 연지는 나도 처녀시절에는 그런 말을 입버릇처럼 했지만 살아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설득으로 점차 가정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너에게 호강을 받으려고 20년 동안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시댁에서 못 배워왔다는 그 말을 듣지 않으려고 대학을 보내려고 하는 거야. 꼭 대학을 나와야 좋은데 시집간다는 그런 보장은 없어. 나는 네 아빠와 결혼한 후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지금 같아서는 절대로 안 해.”

“연애도 안 했어?”

“연애? 연애를 했으면 후회는 하지 않지. 팔린 거나 다름없어. 충청도 양반 댁에 큰 농사도 짓고 잘 사는 집안이라 해서 엄마가 강제로 중매쟁이를 넣어 시집갔지 뭐니. 지금은 때리지는 않지만 네가 어릴 때는 매일 두들겨 맞았단다. 잠자리에서부터 반찬에 이르기까지 까다로웠고, 친정에 자주 간다고도 시어머니와 합세해서 구박이란 구박은 다 받고 살았단다. 이제는 나도 행복을 추구해야할 권리를 찾고 싶어. 먹고 싶은 것도, 입고 싶은 것도 내가 벌어서 할거야. 받지 못한 사랑도 받아보고 싶고.”

연지의 말에 딸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어릴 때 아빠로부터 엄마와 자주 싸운 것도 알고 있었고, 몇 년 사이에도 아빠와 싸우기라도 하면 베개를 들고 건너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자유로워지고 싶어. 네가 대학에 입학하면 나는 이 집 귀신이 되지 않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하려고?”
“나의 행복을 위해 이혼할거야.”
“이혼?”
“응”
“그럼 내 대학은?
“네가 대학 나와서 결혼하는 것을 보고 이혼하려고 생각했는데 그러려면 10년을 또 같이 살아야 한다. 단 하루도 네 아빠랑 산다는 것이 힘들어. 이제 장밋빛 인생이란 꿈도 꿀 수 없어.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스스로 행복을 찾는 길 밖에는.”
“나 있잖아?”
“너, 자식이란 키우는 재미지. 너에게 무엇을 기대고 싶은 생각이 없어. 자식에게는 오로지 해 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겠니?”
“엄마 호강시켜줄게.”
“호강? 그런 생각만 갖고 있어도 나는 행복하다.”
“그런데 엄마, 메일 오던 사람은 누구야?”

딸 방에서 잠자고 있을 때 메일을 딸이 읽었던 모양이다. 연지는 애써 모르는 사람이라고 우겼으나 결국은 친구라고 대답하기는 했으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딸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 친구? 가끔 만나, 지난번 등록금도 그분이 준거란다.”
“잘 살아?”
“그런대로, 너 대학 갈 때 입학금도 책임진댔어.”

연지는 더 이상 딸의 물음에 자신이 없었던지 밖으로 나왔다. 석호가 여러 차례 메일이 왔었다.

- 우리 여행 가자. 아주 멀리.-

연지는 딸이 대학을 들어갈 때까지는 외박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면 엄마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 돼요. 대학가기까지는. 꼭 가고 싶으면 하루에 다녀와요.-

메일을 넣고 난 뒤에도 생각은 훈이에게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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