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신의 지석 예언, 5백년 뒤에 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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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신의 지석 예언, 5백년 뒤에 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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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 ⓒ뉴스타운

역사의 기록은 세종대왕의 능을 지금의 여주로 옮길 때 참여한 사람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그 이름들은 모두 후세까지 알려진 명사들이다.

우선 당시 호조판서로 있던 노사신을 들 수 있다. 노사신은 그 뒤 성조 25년에 영의정에 올랐던 인물, 노태우 전대통령의 직계 15대조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또 예조판서 임원준, 한성부윤 서거정 등이 여주에 능을 정하니 예종 임금은 정인지, 정창손, 신숙주, 한명회, 홍윤성, 좌의정 김질과 육조참판 이상과 승지를 불러 여주로 천장하도록 일렀다.

당시 지사의 우두머리인 상지관(相地官)은 안효례(安孝禮)였다.

이때 세종의 왕비 소현왕후릉도 함께 여주로 옮겨 합장했다.

요즘 세종대왕의 열릉이 명당이라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지사들 사이에서는 노사신(盧思愼)의 분묘이장 얘기도 빠지지 않고 화젯거리로 떠오르곤 한다.

노사신은 영의정까지 지냈지만 후학들은 벼슬보다는 강희맹, 양성지와 함께 그가 편찬한 ‘여지승람’을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그가 72세로 세상을 떠나자 후손들은 지금의 서울 대방동 보라매공원 근처에 장사를 지냈다. 그런데 공군사관학교가 들어서면서 어쩔 수 없이 이장을 해야 했다. 후손들은 급한 김에 교하 노씨의 원적지인 파주 부근의 벽산(碧山)에 장지를 마련한 뒤 파묘했다. 무덤을 파헤치고 보니 지석(誌石)이 나왔다. 뒷면에 노사신이 손수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 있었다.

이 무덤을 쓴 지 5백년 뒤에는 한강의 수세(水勢)가 변하여 이장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백석산(白石山)으로 이장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후손들은 백석산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정해 놓은 벽산에 이장하고 말았다.

조상의 유지를 못 받은 후손들은 마음이 늘 찜찜했다. 그러던 어느날 무릎을 탁 친 후손이 있었다. 백석산이 바로 벽산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문의 벽(碧)자를 파자(破子)하면 왕(王), 백(白),석(石)이 되어 백석(白石)임을 알 수 있으나 산(山)이 의문으로 남았는데 원래 임금 왕(王)자는 산(山)자 두 개가 좌우로 합친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금방 풀이가 됐다.

자기가 죽은 5백년 뒤의 일까지 예견해 지석으로 남겼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옮길 장소까지 맞췄으니 풍수지리를 알지 못하고서야 어찌 그런 예상을 할 수 있겠는가.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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