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없이 이중성에 머문 나쁜 국민성(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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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없이 이중성에 머문 나쁜 국민성(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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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 반성하며 이 기사를 띄운다

나는 개혁에 대해 많은 비판과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언급해본 경우는 거의 없다. 무책임하고 이중적인 태도임을 내 스스로 인정한다. 물론 독자들도 개혁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거나 접근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군사독재 시절 중앙정보부는 국민을 어리석음에 방치하고 이를 이용하는 우민(愚民)정책이 주요 역할 중 하나였다. 나는 한국이 정치적으로 군인 통치가 끝날 때쯤 과거의 나쁜 영향이나 잔재를 정리하고 벗어나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후진적인 사회, 문화, 의식, 관행 등에 대해서 변화나 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들을 만들어서 학계, 언론계, 정치계, 시민단체 등에 호소하며 순회하고 다녔다.

하지만 “개혁”을 시도해서 성공시켜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반개혁적이고 비 개혁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문에 그들은 개혁에 대해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동태눈처럼 멍해지거나, 뭐가 그렇게 복잡한가라는 반응이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안타까움을 반복하는 상황이 되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개혁이든, 개혁 정책이든, 부패가 발생하게 된 저변 원인이든, 개혁이 계속 실패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첫째, 준비된 것이 전혀 없었으며,
둘째, 호기심도 없었고 묻지도 않았으며,
셋째, 다양한 원인 분석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넷째, 더 이상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다섯째, 알려주려고 해도 자신의 무지가 드러날까 우려해서인지 골치 아프다며 최대한 분위기를 회피하고 미루고 더듬거렸으며,
여섯째, 준비된 말(내용이 길면 요약해주라, 요약해주면 자세히 정리해주라.)에 그쳤으며,
일곱째, 한계에 이르면 똘아이나 이상주의자처럼 은근히 취급했다.

이는 개혁 주체도, 개혁의 비판자도, 지식인도, 언론도,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을 뼈 속까지 절실히 느꼈다. 한마디로 콩 심은 토양에서는 크고 작고 모나고 둥근 다양한 콩들이 나온 것뿐이었다. 결국 나는 콩의 성분, 용도,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남들이 소홀한 토양에 대한 연구만 끝낸 채 비료는 만들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한마디로 나의 말이나 글이나 정책이 반영도 효과도 움직임도 전혀 없이 오직 개혁 실패만을 예견하고 확신하는 등 내 스스로가 반개혁적이고 비 개혁적이 되고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개혁을 부패한 사람과 사건을 바로잡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인지 개혁을 주장하면서 곧바로 원칙(기준)을 강조하거나,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거나, 대통령의 의지 부족을 탓하거나, 과거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시대를 거꾸로 돌리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개혁과 혁명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증거들이다.

부패 사건이나 도둑(사람)을 잡는 것은 경찰과 검찰과 법원의 몫이다. 그래서 부패한 인물이나 과거 사건을 바로잡는 것은 개혁과 거의 관계가 없다. 강력한 처벌, 과거사 정리도 그 때 잠시뿐이다. 대만에서 살벌했던 단속이 잠시 효과로 끝난 채 다시 부패로 얼룩진 것이 좋은 본보기다.

개혁이란 국민들이 3절(좌절, 굴절, 변절)되면서 망가질 수밖에 없었던 밑바탕 역사, 사회, 문화, 관행, 의식, 무의식, 사건, 사회구조, 인간관계 형태를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서 합리적이고 월등한 수준으로 대체 향상되는 총체적인 게임이다. 뜨거운 솥단지에 물만 붓는 것이 아니라 불구덩이를 빼내주면서 조절 장치를 마련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나는 오래 준비해놓은 각 분야의 세부 개혁방안(교육, 정치, 사법, 부정부패, 사회구조, 문화, 전통, 의식)은 언급조차 못한 채 우리 사회처럼 계속 겉도는 상황이었다. 물론 개혁 추진은 개혁자의 것이지 일반 독자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어쨌든 내 스스로 계속 모순적인 상황에 머물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우리 사회 전반을 걱정한 이후 지금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맺힌 인생을 마감했으며 지금도 수없이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나는 지금도 너무 많은 죄책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내 자신이 어려움을 함께 겪는 것으로 책임과 죄책감을 대신하며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한국이 다중 인격적인 국민성을 엿보인지도 오래 되었다. 우리 국민은 내부에서 시기, 질투, 무시, 비난, 공격, 이간질을 해댄다. 그래서 서로를 위로, 지원, 격려, 존중, 칭찬, 화합, 협력, 존경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 대외적으로 자랑거리가 생기면 “한국 영화, 우리 감독, 우리 과학자, 우리 민족의 우수성, 우리 문화 등”을 내세우며 관계도 없는 국민 전체가 '우리' 대열에 합류해서 갑자기 우수해지고 위대해진다. 대단히 아름답고 인간적이고 화기애애한 국민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충고나 비판이나 잘못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느새 ‘우리’를 팽개치고 특정인이나, 소수 문제나, 오래 전의 과거처럼 돌려버린다.

일본을 공격할 때는 그들이 조작해서 식민지 사관을 심었다며 책임을 묻거나 비난한다. 우리가 아직도 엉망인 책임을 일본에 전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을 향해서는 언제 식민지 근성에서 벗어났는지 모르게 갑자기 아름다운 나라와 우수한 국민성으로 미화하는 뚱딴지같은 국민성이다. 이런 나쁜 이중성 때문에 잘못도 잘못이 아닐 수 있고, 문제가 생겨도 바로 잡기 힘든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런 이중성은 거의 모든 국민이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과 합리화와 미화용으로 지니고 있다.

우리는 장기간 독재와 실정과 부패가 누적되면서 지금도 각 분야마다 피해자들이 넘쳐날 정도다. 그러나 개혁을 생각하는 주체나 국민들은 이런 피해자들을 돌보지도 않은 채 말뿐이어서 마치 망가진 피해자들을 이용만 해먹는 꼴이다.

언론들도 이들을 취재하면서 보도거리로 여길 뿐 원인분석과 피해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나 책임은 안중에도 없다. 심지어 피해자들 역시 정의사회와 사회개혁을 부르짖지만 자신들의 사건 해결을 위한 목적일 뿐 실제 개혁에는 관심이 없다.

결국 국민들이 자기 나름대로 보고 듣고 느껴지는 즉흥적인 생각과 목적과 방법과 각도에서 개혁을 주장할 뿐이며 이런 다양한 각도와 주장이 모여서 합리적인 지향점을 도출해내지는 못했다.

본인(나) 역시 상황이나 사회나 국민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좋아진 것도 없지만 계속 말과 글로만 메아리 없이 떠드는 꼴이다. 이는 정치인들과 비교해도 실질적으로는 눈곱만큼도 기여한 것 없이 비난만 되풀이하는 꼴이며 벌써 해수로 몇 년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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