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욱의 책읽기] 이노베이터, 창의적인 삶으로 나아간 천재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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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욱의 책읽기] 이노베이터, 창의적인 삶으로 나아간 천재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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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비지의 차분기관에서 트랜지스터, 최초의 컴퓨터 ENIAC, 실리콘 밸리에서 월드와이드웹(WWW)으로 이어져 마침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디지털의 혁명은 지금 다시 돌아봐도 놀랍다. 그렇다면 그런 디지털 혁명을 이끈 창의적인 천재들은 과연 누구일까. 『이노베이터』는 디지털 혁명을 선도한 각 인물들을 흥미롭게 소개하며, 창의적인 삶으로 나아간 천재들의 비밀을 담아낸다. 

시작은 에이다 러브레이스로, 무려 1840년대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를 개척한 인물인다. 이어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 인텔의 로버트 노이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 구글의 래리 페이지 등 현대 디지털 혁명 주역들의 대단히 흥미로운 성격을 탐구한다. 그들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창의적인 인재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 이노베이터, 창의적인 삶으로 나아간 천재들의 비밀 ⓒ뉴스타운

맨해튼 본사에 공간이 부족해지자 벨 연구소의 대부분이 뉴저지 주 머리힐의 80만 제곱미터 규모의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머빈 켈리를 비롯한 운영진은 신사옥을 연구 분야에 따른 개별 건물로 구분하지 않으면서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 이들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창의성이 배가된다고 믿었다. 한 중역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건물과 건물은 부서 간의 지리적 단절 없이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긴밀한 접촉이 가능하도록 연결되었다.” 여러 개의 복도는 축구장 두 개보다도 긴 길이로 설계되어 다양한 재능과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섞여 우연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 전략은 스티브 잡스가 그로부터 70년 후 애플의 새로운 본사를 설계할 때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 연구원들은 연구소의 이곳저곳을 거닐다 맞닥뜨리게 되는 임의의 아이디어를 태양전지처럼 흡수했다. 외바퀴 자전거를 타고 공 세 개를 저글링하면서 기다란 테라초 복도를 오가는 연구원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하는 괴짜 정보이론가 클로드 섀넌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에 대한 익살스러운 메타포였다. 

인텔의 문화는 혁신의 문화이기도 했다. 필코 사의 딱딱한 위계질서를 경험한 노이스는 보다 개방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직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보다 빨리 도출되고 전파되고 개량되고 적용될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직원들이 명령 계통을 거칠 필요가 없어여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인텔 소속 엔지니어 출신 테드 호프는 그렇게 전한다. “관리자와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에는 거리낄 것 없이 직접 가서 이야기하면 되었다.” 다음은 톰 울프가 기고한 인물 소개글 중 일부이다. “노이스는 무수히 많은 계층과 등급으로 이루어진 데다 최고 경영자와 부사장들이 마치 기업 내 왕족 또는 귀족이나 되는 양 행동하는 동부의 기업 체계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노이스는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인텔에서 명령 계통 자체를 의식적으로 멀리함으로써 직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모두 다 기업가 정신을 가지도록 강제할 수 있었다. 회의 중 분쟁이 일어나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도 그로브는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노이스는 고위급 간부들이 평직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대신 직원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게 두는 것을 좋아했다. 책임이 지워진 젊은 직원들은 혁신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톰 울프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간혹 난관에 부딪힌 직원이 “노이스를 찾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타개책을 의논하려고 하면, 노이스는 고개를 숙이고 눈빛을 반짝이며 경청한 다음, ‘다음과 같은 지침을 줄 수 있네. A를 고려하고, B를 고려하고, C를 고려하게’라고 말하고는 영화배우 개리 쿠퍼를 닮은 특유의 미소를 띠고 이렇게 결론지었다. ‘하지만 내가 대신 결정을 내려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네. 이건 내 문제가 아니니까.’” 

혁신에는 적어도 세 가지 요인이 필요하다. 위대한 아이디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공학적 재능, 그리고 이를 성공적인 제품으로 만들어낼 사업적 기량(및 거래를 성사시킬 배짱)이 그것이다. 스물아홉의 놀런 부쉬넬은 이 세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빌 피츠, 휴턱, 빌 너팅, 랠프 배어가 아닌 부쉬넬이 비디오 게임 산업을 만든 혁신가로 역사에 기록된 이유다. “우리가 <퐁>을 개발했다는 것도 자랑스럽지만, 그보다 사업을 구상하고 그것을 재정적으로 설계한 방식이 매우 자랑스럽다.” 부쉬넬의 전언이다. “게임 자체를 개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자금 없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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