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도 고향에 못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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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도 고향에 못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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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칠순때는 꼭 보내드리겠다고 다짐했건만...

아버지는 1936년 함북 청진에서 내어났다.

지금도 기억하는데 청진 포항동 15번지가 아버지의 고향이다. 1.4 후퇴때 월남 했으나 이 과정에서 어머니와 헤어졌고 나의 아버지와 사촌동생만이 겨우 월남 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사촌동생은 현재 "L 건설" 사장으로 있고 그의 밑에서 "L 제과"에서 35년 근무하셨지만 거의 금전적 도움은 받지 않는다.

나에게는 할아버지가 되시는 분의 본명은 이국선이고 대형약국을 경영하셨는데 공산군의 반격으로 사망하셨다.

일제때는 아사히약국으로 불리다 해방이후 조일약국으로 불리며 동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영업을 계속해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살아계실때 들은 이야기로 일제때 당시 일본관료가 단골로 이용했는데 이때문에 아버지께서는 해방이되면서 '친일약사'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작은 할아버지께서 당시 형무소장이었다는 이유도 있었으니까...
또 해방직전 김일성이 소련군과 함께 청진에 입성하면서 약을 구입해 갔다며 그 지역에서 유명한 약국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월남 했을때 아버지 나이 16세로 지금의 고교1학년 나이였다. 월남 하자마자 학병으로 지원했고 이때 중공군이 서울까지 내려왔을때는 사촌동생을 사찰에 맡기고 전선으로 향했다며 그 시절의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가족과 친지들이 불교신자여서 사촌동생도 절이 낯설지 않았고 스님의 보살핌으로 잘 적응했다고 하셨다.

이분이 지금의 "L 건설" 사장이라며 아버지는 당시를 거론하며 자책하셨다. 휴전 직전 월남하면서 나와 떨어지게 되었고 이제는 대기업 사장으로 성장 했다고 하시며 '월남하고 가족과 상봉하기 전까지 친동생처럼 보살펴 주었는데...다 부질없는 짓이야!'라고..

금강산관광에 이어 개성관광을 할 수 있게 되었다니 감회가 새롭지만 아버지는 아직 고향이 멀게만 느껴진다고 한숨만 지으신다.

개성과 금강산에만 한정 되있어 금강산에서라도 망향제라도 올렸으면 하는 바램이 있긴 했으나 아버지는 '길이 열리면 뭐하나! 돈이 있어야지...'이렇게 한탄만 하시고 칠순의 추석을 이렇게 우울하게 보내고 계셨다.

소주 한잔에 망향가를 부르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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