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22일 새벽 지병으로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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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22일 새벽 지병으로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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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김시대 역사 속으로

▲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0시 22분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증으로 서울대 병원에서 영면했다. 향년 88세. ⓒ뉴스타운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0시 22분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증으로 서울대 병원에서 영면했다. 향년 88세.

한국 제 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9일 시행된 ‘국가장법’에 따라 ‘국가장(國家葬)’으로 장례식을 치러질 예정이다. 장례식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서 치러질 예정으로 발인은 오는 26일이다.

장례식은 우선 유가족의 의견을 고려해야 하고, 이후 행정자치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현직 대통령의 결정이라는 절차를 거쳐 확정된다.

지난해 국가장법으로 통합되기 전 역대 전직 대통령은 국장, 국민장, 가족장 등으로 치러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장,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족과 협의에 따라 국민장으로, 최규하 전 대통령은 국민장,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장, 이승만 전 대통령과 윤보선 전 대통령은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정치적 라이벌로 애증 관계에 있던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뒤를 따라 영면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큰 족적을 남긴 ‘양김시대’를 마감했다. 거산이라는 호에서 말해주듯 ‘큰 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경상남도 거제군 장목면에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영남을 대표하는 한국 민주화 지도자로, DJ는 호남권을 이끈 정치적 리더로 한국 민주회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오늘날 세계가 주목한 민주화를 일궈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55년 신익희, 조병옥 선생과 함께 민주당 창당발기인 33인에 포함될 정도로 야당 정치인으로 뼈가 굵은 인물이다. 1954년 5월 3대 국회에 자유당으로 입성했으나, 1년도 안된 1955년 4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을 반대 투쟁을 하다 자유당을 탈당, 같은 해 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기나긴 야당정치인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역대 대통령으로 이름을 영문 이니셜을 따 YS, DJ로 불리며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이름보다 더 잘 알려진 YS, DJ이다. 이 두 정치인은 1969년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고, 1971년 신민당 대권 경선에서 처음으로 라이벌로 맞붙었다. 당시 1차 투표에서 1위를 YS가 차지했지만, 2차 투표에서 DJ에 역전패했다. 하지만 YS는 묵묵히 DJ를 도왔고, 이어 두 사람을 유신반대에 함께 나서기도 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탄압을 받을 당시에는 두 사람은 민주화동지로 거듭나게 된다. DJ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석방되어 미국으로 망명했고, YS는 가택연금 상태에 놓이게 됐다. YS는 이후에도 민주화 투쟁을 계속 해 나갔다.

1983년 YS는 5.18광주항쟁 4주기를 맞아 단식 투쟁에 나섰고, 5월 25일 단식투쟁을 시작해 6월 9일 단식을 끝내는 등 민주화투쟁의 선봉에 섰다. 이를 계기로 YS는 가택연금 해제됐고, 23일간의 단식투쟁으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을 결성하는 계기가 돼 이후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합쳐, 신당 창당 등을 거쳐 6.10항쟁으로 이어졌다.

YS와 DJ는 합심하여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내긴 했으나 1978년 당시 두 사람을 양보하지 않고 서로 대권에 도전하는 바람에 노태우에게 정권을 빼앗겨, 지지자들로부터 날카로운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이후 YS는 1990년 1월 통일민주당 총재 자격으로 민주정의당(민정당)과 신민주공화당과 전격적인 3당 합당을 거쳐 1992년 DJ에 앞서 제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됐다. YS정권은 대한민국 최초의 ‘문민정부’였다. 이 일로 YS와 DJ는 갈라섰고 DJ는 일시 정계를 떠나 영국으로 가기도 했다.

YS는 대통령 재임 중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제도를 도임해 금융투명성을 일궈냈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하는 등 정치, 경제 민주화를 일궈냈다. 또 군부세력의 핵심인 ‘하나회’를 해체시켜 군의 쿠데타의 가능성을 사라지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 말기인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이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한국 경제를 맡기는 최대의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YS에 이어 DJ는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통해 대통령이 됐고 IMF 위기를 극복했다. 대통령을 임기를 마친 YS는 상도동 자택에 머물면서 현실 정치에 훈수를 두는 등 크고 작은 정치적 사안에 끼어들기도 했다.

YS와 DJ는 서로 영남, 호남이라는 지역 분리로 지역주의를 만들어 냈다는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물과 기름과 같은 관계 속에서 YS는 2009년 DJ 서거 전 병문안을 가 화해를 했다. 당시 YS는 나이가 90에 가까이 되니 미운마음도 사라지더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 DJ병문안을 마치고 나온 YS에게 기자들이 “이제 화해한 것으로 보아도 되느냐?”는 질문에 “이제 그렇게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말했다.

고인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한편, 말레이시아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긴급 보고 받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날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외신들도 긴급 타전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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