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자살미수'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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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의 '자살미수'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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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에 노인의 이름이 없습니다

이 글은 풍자-픽션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존경하는 자식님들께!

감히 천한 이 애비 놈이 세태(世態) 탓인지, 늦가을 탓인지, 부쩍 자진(自盡)하고픈 마음을 가눌 수 없습니다. 고상한 말로 쓰자니 자진이지 바로 자살이지요.

'방귀를 자주 끼면 똥 싼다'는 속어처럼 제 마음을 저도 주체할 수 없어 자살을 결단하기 전에 이 욕된 글을 미리 컴 속에 남겨둡니다.

"아니, 자식에게 경어를 쓰다니, 애비 놈이 치매에 걸렸나" 하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제 머리는 명경 같이 맑습니다"

'님'이란 존칭을 빼먹으면, 혹시 젊은 님들로부터 몰매 맞지 않을까 겁이 납니다.

요즘 늙은이들이 어디 사람 축에 끼일 수나 있나요.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죽고 나면, 자식님 보다는 내 또래의 친구와 이웃의 늙은이 아니, 대한민국에서 용도 폐기된 60대 이상의 집에서 쉬어야할 노인들이 보기를 바라고 쓰는 것이지요.

이왕에 자살 이야기가 나왔으니 얘기해 봅니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2011년 통계에 의하면, OECD국가 중 최고로 45.1%나 됩니다.

노인 두 사람 중 한사람이 가난에 처해 있다는 말이지요.

나이 들면서 더 가난해지고, 가정은 붕괴되고, 부자간 소통은 단절되고, 그래서 생활이 비참해지며 아차 하는 순간에 사고나 질병, 사업실패, 사기, 고독 등의 이유로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의 늪에 빠져 결국 자살을 택한다는 것이지요.

2011.08.23 네이트에 올라온 한 기사에 의하면 정신적·물질적으로 한계 상황에 몰린 우리나라 75세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은 10만 명 당 160.4명으로 OECD 평균의 8배가 넘고, 65∼74세 사이 노인의 경우에도 10만 명 당 81.8명으로 OECD 최고다고 했어요.

죽지 아니하려 하여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가 왜 참지 못하고 죽음을 자초합니까.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박승희 교수는 “노인복지에 대해 ‘경제적 지원’만을 강조하는 단기적인 처방만으로는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하며 “노인자살은 핵가족 문제와 노인들이 처한 자존감 상실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쳐진 현대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일으킨 문제”라면서 “무너진 가족제도의 개선에서부터 노인들의 경제적,심리적 요인까지 총체적으로 치료하지 않는다면 황혼자살의 악순환을 끊기 어렵다.”고 지적하였지요.

위 교수 분의 견해가 일면 타당합니다만, 최근에 갑작스레 노인들의 자살 율이 높아진 원인의 하나가 국가 권력이 노인을 방관하고, 나아가 모욕하고 멸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박 교수가 외면한 점이 안타깝습니다.

대통령의 최근 국회시정연설에서 노인문제, 고령화사회문제에 관한 일언반구의 언급이 없음을 보고 실망하였습니다. 대통령 눈에는 청년실업만 보이고 고개 숙인 노인들의 모습은 비치지 않는 가 봐요.

예전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너희들도 늙지 않는가 보자'고 하여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요즘은 이런 울분의 토로도 공허하다는 실망이 더욱 노인들을 염세주의자로 만든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지요. 권력자들은 늙어도 명성이 남고, 쌓아놓은 부가 그들의 노년을 더욱 화려하게 꾸며 줄 것이기 때문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이런 지도자급 엘리트들이 노인들을 무시하고 비하하니 정책이 없고 의지할 때 없는 늙은 놈들은 고뇌 끝에 자살할 수밖에 없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제 자살 동기는 "부디 늙은이들이여! 젊은 님들이 아무리 늙은 놈이라 무시하고, 기분을 상하게 하더라도 고개를 쳐들고, 댓 걸이를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하는 일이면, 무조건 '옳소'하고 찬성의 박수를 쳐야합니다. 그래야 남은 인생이 덜 괴롭습니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내 처지가 너무 비참합니다.

제 한 몸 죽어 6백만 늙은이들이 젊은 님들의 궁박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이 어찌 가치 있는 죽음이 아니겠습니까.

여지 끝 이 늙은 놈이 그래도 오기가 있어, 국정을 농단하는 젊은 님들을 향해 온갖 방법으로 악을 써 보았지만 누구하나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 없습디다.

그래서 죽음을 담보로 하여 늙은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 꽥 ] 소리 몇 마디 하려는 것입니다.

자식님이여!

제가 힘께나 오를 때 일이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일제치하에서 자랐습니다..

일본 천황이 울먹이며 항복하는 비참한 라디오 육성을, 광복의 태극기가 방방곡곡 물결치는 환희를, 좌우익 단체들의 투쟁과 반란을 직접 보았습니다.

6.25 동란의 골육상잔 때는 중 1년으로 고향에서 북 체제의 모순을 경험하였습니다. 감격의 수복을, 4.19를, 장면 정부를, 군사정권의 창출을 체험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60대 이하의 젊은이들은 직접 경험하지 못하였겠지요.

그래서 우리 70대 이상의 늙은이들은 해방과 건국, 6.25를 경험한 '역사의 증인이요, 살아있는 역사'이라고 누가 말했지만 틀린 말이 아니란 것이지요.

6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과 경제건설의 시대에는 젊은 님들은 아기걸음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입니다. 그래도 흰쌀밥에 우유와 고기도시락을 들고 다니지 아니 하였습니까.

초근목피의 아픔을 잘 아는 우리는 젊은 님들을 보다 풍족하게 그리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건설현장에서, 기계소음 속에서, 열사의 사막에서 밤낮 구별 없이 땀 흘리며 일해 온 덕분이 아닙니까.

이런 늙은이들이 어찌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 근대화의 공헌 자가 아니라고 부인하겠습니까.

젊은 님이여!

그대들이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총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여 온 나라가 감격에 벅찼던 시대를 아십니까. 그 후, 저는 요, 이십대 후반으로 제가 다니던 H합섬(주)이 단일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일억불수출탑 상’을 받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답니다.

비록 말단 직원이었지만, 가슴에 달고 있는 회사 배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이런 긍지를 젊은 그대들이 이해나 하겠는지요.

그 시절 대선이 3번 있었는데, 여러분이 인권 탄압과 반공의 괴수로 부정하는 박정희 대통령은 63년 5대 대선에서 윤보선후보에게 15만 여 표 차로 승리하였는데 투표율은 85%였고, 67년 6대 대선에서는 역시 윤보선 후보에게 백 십여만 표차로 이겼는데 투표율은 83.6%이었습니다. 71년에 있은 제7대 대선에서는 여러분들이 존경하는 김대중 후보에게는 백만 표 이상으로 승리하였는데 투표율은 79.8%이었습니다.

이 선거들에 관권이 동원되고 돈이 뿌려지는 것을 이 늙은 놈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독재라 하지만 100%찬성을 강제하는 북정권처럼 인권이 무시당하지도 아니하였고, 유권자의 50% 이상이 임의로 자유의사에 따라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선택하였습니다.

당시 우리는 인권보다 먼저 자식들을 굶기지 아니하는 것이 우선이고, 자식들에게 메마른 강토를 물려주지 않아야 하는 것이 생의 목표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천사 같이 티 없는 자식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오로지 그들의 미래를 위해 내한 몸 뼈 빠지게 일하였습니다.

만약 그 당시 세월 호 사건이나, 소 수입 사건이나, 국정 역사교과서 등 문제가 있었다 해도 우리들은 애기인 그대들을 가슴에 안고 촛불을 쥐여 준채 광화문 거리로 뛰쳐나가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 자식의 눈에 갈등과 충돌의 기억을 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자식이 어른이 되어 대통령도 우리가 뽑고, 국회의원도 우리가 뽑은 대표임을 알고, 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듣던 '국회를 해산하라' ‘대통령 물러가라’든가 하는 구호가 과연 정당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혼돈의 세대에 꼬마로 촛불시위의 참여한 일을 상기하며, 기성세대를 불신할 것이고, 정치의 가치관에 회의를 느낄 것입니다.

더욱 정치는 이성의 대상이지 감성의 대상이 아닌데, 하고 자기 혐오와 고뇌에 빠질 것입니다. 또 왜 내가 특정정치인을 정치보다 더 사랑하였는지에 대한 잘못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생활과 경제를 요리하는 수단입니다.

정치는 머리로 판단할 일이지 감정으로 처리할 수단이 아닙니다.

노사모가 왜 생겼는지, 박사모가 왜 생겨야 하는 지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노무현이가, 박근혜가 자기자식보다 더 귀중하단 말입니까.

사랑하면, 잘못이 있어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잘하면 좋아하고, 못하면 싫어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성이요, 머리이며, 정치란 물건에 국민이 가져야 태도입니다.

정치에서 이성의 목표는 미래입니다. 자식을 위한 미래입니다. 조상을 위한 미래가 아닙니다.

자식과 후손을 위한 합리적 판단이 우리가 추구하여야하는 정치의 길입니다.

내 후손에게 고모부를 기관포를 쏘아 죽이고, 장군의 별을 자기 기분에 따라 뗐다 붙였다 하는 북 체제의 인민으로 종속시킬 어떤 일에도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정 교과서문제로 박대통령을 친일의 망령이라 굿판을 벌이더니, 또 한쪽에서는 종북자 빨갱이라고 쏟아 붓는 파렴치를 보면서 이제 나의 유서파일을 컴에 저장해두고 내 자살을 잠시 유보해 둘 수밖에 없습니다.

재미있게 꼬여가는 역사교과서 정국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여의도 하늘만 이 늙은는 주시 해보고자 합니다.

자살은 잠시 미루겠습니다. 용기 없는 늙은이라고 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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