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명 '광수' 왜 전라도와 광주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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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명 '광수' 왜 전라도와 광주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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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단체 등은 뉴스타운 공개 사진 속 '광수' 인물 한사람도 찾지 못해

기회가 왔다. 이제라도 5.18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이 사건 종지부를 찍자. 그래야만 왜곡된 역사가 바로서고, 온전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

거짓말이 계속 거짓말을 낳듯이 왜곡된 역사 역시도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왜곡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거짓말이건 왜곡된 역사건 둘 다 시간이 지나면 지난 만큼 누더기만 덧씌워 질뿐이다.

따라서 1980년 5.18의 진실은 100년 후 역사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더 이상 이런 아픔을 후세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도 이 시점에서 악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특히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북한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서도 정부가 앞장서 5.18 광주사태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 ⓒ뉴스타운

솔직히 광주사태는 500만야전군 의장 지만원 박사가 아니면 전두환 정권과 공수부대의 잔악무도한 역사만을 간직한 채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겪어야 했던 12년간의 고행은 결국 진실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단적인 예가 그동안 뉴스타운을 통해 공개한 최첨단 영상자료 사진 속 152여명의 '광수(5.18 광주 북한특수군)'들이다. 이들은 광주사태 내내 총을 들고, 지프차와 장갑차를 몰고 현장에서 계엄군과 전투를 벌였던 사람들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사람들이 지금 광주 5.18 관련단체들이 찾아내 영웅으로 대접해줘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누구보다 앞장서 계엄군과 목숨 건 사투를 벌였고,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5.18 단체들이 말하던 일명 '시민군'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모두 어디에 있는가. 친절하게도 뉴스타운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을 인터넷과 신문 지상을 통해 이들이 누구 인지 확연히 알아볼 수 있도록 배려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관련 단체들은 지금까지 단 한사람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사진 속 얼굴이 나요"라고 나선 사람도 없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정답은 하나다. 5.18 관련 단체들이 못 찾고 있는 이유는 이들은 전라도 사람도, 광주 사람도, 남한 사람도  아닌 바로 북한특수군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진 속에 드러난 152명의 광수를 아는 전라도민이, 광주시민이 한명도 없는지. 이걸 미스터리라 해야 할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해야 하는지 말문이 닫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진 속 인물이 자신 이라면 당장 나와 보라. 최첨단 영상기법과 방대한 기록과 각종 자료를 통해 그 진위여부를 우리가 가려 주겠다.

한 가지 당부컨대 가짜라고 판단되면 '여적죄'(외환죄의 하나로 적국과 합심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함에 따라 성립되는 범죄로 형법 제93조에 언급되어 있다. 처벌은 무조건 사형으로 현재 유일하게 형법상에서 다루는 범죄 중 무조건 사형이 법정형인 유일한 범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뉴스타운

5.18 관련 단체들이나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북한 특수군들이 시민군으로 둔갑 된지도 모르고 35년간이나 방치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역사를 바꿔 놓았으면서도 이들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지내왔다.

이것이 바로 역사왜곡의 대표적 증거며, 북한이 광주를 통해 남한을 인수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 보낸 북한특수군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나마 지만원 박사와 뉴스타운은 사진 속 그 인물들이 현재 북한에서 모두 영웅칭호를 받을 정도의 권부에 자리하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5.18 관련 단체들이나 정평위 신부들은 진실이더라도 이것을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아니 부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광주사태를 민주화 운동으로 만들어 엄청난 국민의 혈세에 빨대를 꼽은 것도 그렇지만, 관련자 모두가 '여적죄'로 처벌 받을 수밖에 없다는 법적 판단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바란건데 5.18 관련 단체들이 앞장서 뉴스타운이 공개한 광수 사진 152명에 대해 "나요" 라고 하는 사람들을 찾아 주기를 당부한다.

▲ ⓒ뉴스타운

부정하고 싶겠지만 당시 광주에 침투한 황장엽(제71광수)은 남한의 한 청년을 연행해 죽였다. 이 사실은 사진으로 명백하게 증명돼 있고 우리는 뉴스타운을 통해 공개 했다. 우리는 광주에서 북한특수군이 남한의 한 청년을 살해한 사실을 첨단 영상 분석기법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북한 특수군이 직접 광주에 내려 왔다는 수많은 증언들이 있지만 이 조차 부정하니 기록을 토대로 한 가지만 따져 보겠다. 80년 5월 21일, 광주 일원에서 발생한 민간 사망자는 61명이다. 이 중에서 28명은 도청과는 거리가 먼 다른 곳들에서 사망했고, 33명만이 도청 앞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도청 앞 사망자 33명 중 20명은 칼에 찔리고 몽둥이에 맞아 사망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더해 13명이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총상 13명 중 9명이 카빈총에 의해 사망했고, 4명은 총기불상으로 기록돼 있다.

▲ ⓒ뉴스타운

뉴스타운이 공개한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도청 앞 상황은 계엄군과 시민이 수십 미터의 거리를 두고 대치해 있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 상황에서는 민간인들이 공수부대에 맞아 죽고 찔려죽는 일이 발생할 수 없었다. 설령 있었다 친다면 그 많은 시민들과 총을 든 시민군이 이 광경을 보고 가만 있었겠는가.(2015년 8월 28일자 뉴스타운 보도 사진 참조)

그러면 이들 20명은 누가 죽였는가? 한마디로 5월 21일에 칼에 찔리고 몽둥이로 맞고 총에 의해 사망한 61명 모두가 계엄군과는 무관한 사망이었던 것이다.

5.18 관련 단체들은 바로 이러한 광수를 밝히는데 주력해야지 광주 정평위 신부들이 앞장선 명예훼손 사건에 숟가락을 얹는가 말이다. 주지 하건데 정평위 신부들의 사진집 속 사진들은 수사기관의 조사에서 밝혀 지겠지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꼴이 될 것이다.

▲ ⓒ뉴스타운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1980년 3월 28일 북한은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을 틈타 금년 봄에 대량의 무장간첩을 남파, 지방 도시의 방송국을 점령하는 등 본격적인 게릴라 활동을 벌일 계획이었다.(1980년 3월 28일 동아일보 보도)

▲ ⓒ뉴스타운

이어 같은 해 6월 28일에는 재일조총련에 앞으로 모든 힘을 기울여 대남파괴, 교란공작을 펴고 제2, 제3의 광주사태를 한국 각지에서 일으키도록 지령한 사실도 드러났다.(1980년 6월 28일 매일경제 보도)

북한이 왜 이랬을까. 그 답을 광주는 알고 있기에 광주 스스로가 국민들에게 진실을 밝힐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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