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꽃, 백절불굴의 땅 알제리
스크롤 이동 상태바
사막의 꽃, 백절불굴의 땅 알제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는 우리에게 무었인가? (31)

영국의 런던항에서 기선에 올랐다. 도버해협을 지나 스페인 북쪽해안과 포르투갈의 서쪽해안을 거쳣다.유럼과 아프리카 사이에 가로놓인 지중해를 향해 항해를 계속했다.

세계의 여행자들은 대개가 프랑스의 남뽁 항구인 마르세이유에서나 혹은 이탈리아의 나폴리 항港에서 기선에 오른다. 바로 지중해를 가로질러 알렉사드리 항으로 와서는 이짚트 구경을 한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 동양으로 나오는 것이 버릇처럼돼 있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영국에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지나기로 했다. 지중해의 입구 지브로울터,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을 돌아본 후에 이집트로 들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 항로를 택한 것이다.

기선은 굉장히 컸다. 그렇지만 스페인과 포르두갈 근해를 지날 때는 몹시 흔들렸다. 눈알이 핑 돌았으나 "여기가 영국의 넬슨제독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여 영국을 세계최고의 해양왕국이 되게 한 곳이로구나"하고 생각하니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배는 지브로올터의 좁은 해협에 들어왓다. 이곳은 이른바 '지중해의 서쪽관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양쪽의 해안에는 위장된 포대砲臺들이 여기저기 많이 눈에 띄었다. 기선은 서서히 그 앞바다르 미끄러져 갔다.

나는 눈을 비비면서 갑판에 나와 이 요세지르 인상깊게 바라보았다. 그 너머로 깨끗한 현대식 시가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전에 현대화 됐을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나의 행선지는 알제리인 만큼 어서 그곳에 배가 닫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기선은 아프리카의 서북쪽 끝에 있느 모로코 해안쪽으로 향해 갔다.영화에서 익히 보아 모로코에 대한 낭만에 깊었던 나로서는, 될 수 있으면 그곳도 한번 둘러보고 싶었지만 하로의 코스에 들어있지 않아 군침만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멀리 바라다보이는 희미한 육지에 눈길을 둔 채...

그날 점심 때쯤에야 기선은 알제리 항구에 다다랐다. 반달 꼴로 돼있는 해안선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시가지는 대부분 프랑스식으로 꾸며져 있었으나 아프리카의 독특한 퐁모를 엿볼 수 있었다.

알레리는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7년여에 걸친 끈질긴 항전끝에 1962년 7워 프랑스에서 독립을 쟁취한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풍습이 많이 깃들어 있고 그 색채가 유려하게 남아있다. 그런 중에서도 이 나라 특유의 체취를 물씬 풍겨준다.

야자나무를 비롯한 열대수목이 우거진 아프리카의 정경, 풍속은 나에게 끝었는 이국정서를 자아내게 했다.

신기한 물장수

알제리인들은 원래 베르베르(Berber)족이다. 아프리카 중남부에 있는 흑인처럼 얼굴이 새까맣지 않고 밤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중세기경이곳에 침입한 아랍인들의 지배와 영향을 받았다. 종교적으로 이슬람교를 신봉하게 됐고, 언어도 아랍어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풍습이나 문화의 특색은 역시 '아랍문화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재가 알제리 땅에 발을 디딘 때가 10월 중순인데도 날씨가 어짜나 무더운지 온몸에서 땀이 마구 흘러 주체할 수가 없었다. 햇볕이 따가워서 모자를 벗고 다닐 수도 없을 정도였다. 항구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더위를 식혀주기는 커녕 갈증마져 불러 일으켰다.

겨울철에 일부 지방에서 900밀리 가량의 비가 내리긴 하지만, 국토의 90%를 차지하는 사하라 사막에서는 전혀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연평ㄱㅍㅁ 강우량은 300밀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공기는 아주 건조하고 더위는 숨이 콱콱 막힐 정도이다.

거리에 물장수들이 서 있는 것을 본 나는, 반가운 친구라도 만난듯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긴 잠방이를 입은뭄ㄹ장수는머리에 희고 긴 어러반을 몇겹으로 감았고 한쪽어께에는 염소가죽으로 만든 물통을메고 있었다. 물통에는 물이 가둑 차 있어 마치 살이 통통하게 진 염소와도 같았다.

무척이나 무거워 보이는 물통을 어깨에 맨 물장수의 발을 보자 나는 깜짝 놀랐다. 물을 사 먹으러 다가가던 나의 발길은 딱 멈춰졌다. 그 물장수는 맨발이었던 것이다. 신을 신고도 땅이 뜨거워 걸음이 옮겨지지 않는 판인데, 그 사람으 어떻게 해서 맨발로 다니는지 궁금증이 생겻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하 여름에 맨발로 마당엘 나갔다가 발바닥이 뜨거워 풀쩍풀쩍 뛰었던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 났다. 우리나라의 한여름의 당도 그렇거늘, 알제리의 그 뜨거운 땅에서 물장수가 맨발로 무거운 물통을 메고 사분사뿐 걸어다니는 걸 본 나는 요술장이를 보는드산 착각마져 느꼈다.

나는 물장수가 물통 주둥이에서 물을 빼내는 동안 슬그머니 그의 박바닥을 들여다 보얐다. 혹시 발바닥에 매끈한 가죽이락도 붙였나 해서.... 순간 나는 물사발을 따에 떨어뜨리며 아! 하고 속으로 탄성을 올렸다.

물장수의 발바닥, 거기에는 매끈한 가죽이 붙여이씨는 커녕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아니 그보다도 무른 황토에 지렁이가 수천마리 지나간 것처럼 쫙쫙 갈라져 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시골 농부의 주름진 이맛살에서 볼 수 있는 생生에의 고난스러운 훈장, 바로 그것이었다.

신비에 싸인 알제리아 여자들

알제리에서는 가는 곳마다 면양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 광경은 우리나라의 길거리에서 개가 돌아다니는 것과 흡사했다. 면양이 돌아다니며 종이 조각을 주워 먹어도 주인이 붙들어 들이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보고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면양들이 개가 제집 찾듯 반드시 집을 찾아 들어간다는 걸 나중에 알고 혀를 내둘렀다. 알제이 중심가로 들어 어갔다. 프랑스식 고층건물이 빽빽이 서 있다. 보도와 차도의 구별도 잘 돼 있었다. 길가에는 꽃이 활짝 핀 화분들이 줄지어 있어서 종려나무, 야자나무의 가로수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프랑스의 어느 작은 도시에 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순간 알제리식 흰옷을 입은 여자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그 착각에서 깨어났다. 눈을 제외한 온 얼굴과 머리를 앞치마같은 것으로 가리고, 온 몸을 흰 홑이불같은 천으로 두른 알제리의 여자들.

이 여자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리벙벙해지곤 했다. 그도 그럴것이 두 눈만 깜빡깜빡하는 알제리의 여자가 여자같지않고 무슨 하얀 요정妖精처럼 생각되었다. 휘적휘적 몸놀려 가기 때문에 도무지 생김새를 알 수가 없었다. 광대뼈가 툭 취어 나왔는지, 코가 납작한자, 합죽인자, 웃는지, 우는지오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가슴과 허리와 히프의 크기도 눈으로 측량할 수 없었고, 다리가 무우다린지, 새다린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제리 여인의 육체미 감상은 섭섭하게도 신비로 시작해서 신비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알제리 여인들의 살갗을 보았다면 발목과 슬리퍼같은 것을 신은 발, 그리고 빠끔하게 내다보이는 두 눈뿐이었다. 그러니까 이 나라 여인들의 생생한 율동미를 볼 수 있는건 발락밖에 없다고나 할까. 이집트에 가서 비교해 본 것이지만, 이집트여인들은 대체로 검은 옷으로 이와 같이 휘두르고 있어서 음산해 보였으나 알제리 여인들은 흰 옷을 입고 있어서 깨끗한 인상을 받았다. 하얀 옷, 이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백의민족이어서 그런지 어쩐지 호감이 갔다.

오아시스에 핀 경제력

나는 거리 한 모퉁이에 열려있는 시장근처에 가 보았다. 그곳은 우리나라 시골장처럼 시끄럽고 복잡했다. 장사꾼들이 소리를 지르고 행상들이 왔다갔다해서 어수선했다. 그러나 이국적인 풍경이 무척 호기심을 자극했다.

알제리 사람들은 원래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종족이었다. 기원전 9세기에는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고, 기원전 2세기에는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7세기부터는 아라비아 사람들의 세력에 눌렸고 1515년부터 오스만 제국의 총독에 예속되었지만, 17세기에 와서 오스만제국이 쇠약해지자 처음으로 종주권을 갖게 됐다.

옆나라인 튀니지와 서로 세력을 다투었으며 지중해를 중심으로 약탈을 잘했다해서 상당히 용맹스런 종족으로 알려져 있었다. '알제리'란 말은 원래 '해적'이란 뜻을 갖고 있다. 그 후 영국, 미국, 메델란드, 프랑스 등과 외교관계를 맺고 통상도 했으나 1830년에 프랑스에 정복당했다. 몇차례 저항운동이 벌어졌으나 1871년에 완전히 프랑스의 속국으로 됐다.

그러나 그들의 민족성은 뿌리깊어 독립을 이룩할 때까지 무력저항운동이 구준히 계속됐다. 할제리인에게는 그들 고대의 풍습이 짙게 남아있어 노새를 타고 다니는 광경을 쉽사리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높이 솟은 이슬람교 사원 안에서 교도들이 경건하게 기도드리는 모습 또한 옷깃을 여미게 했다.

사막 저 끝없는 모새바다 위헤 세운 결제력을 보며 알제리 민족의 끈질긴 저력과 백절불굴의 정신에 새삼 경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 사하라 사막의 한 자락^^^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