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에서 계엄군에 붙잡힌 광수 어떻게 탈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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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에서 계엄군에 붙잡힌 광수 어떻게 탈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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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광수, 36광수, 44광수는 31사단으로부터 곧장 풀려난 것

8광수 최경성, 36광수 최룡해, 44광수 전진수 이상 3명은 계엄군에 잡혀 있는 상태에서 사진이 찍혔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계엄군에 잡혔는데 어떻게 북한으로 가서 출세를 했느냐,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신뢰하기 어렵다" 이런 식의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당시의 시스템을 알지 못해서 발생하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먼저 8광수를 보십시오. 8광수는 공수부대가 관장하는 차에 꽁꽁 묶여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600명 집단이 무기를 탈취해서 광주공원에 부려 놓고 있을 때, 8광수는 총을 하나 들고 있었습니다.  

공수부대원의 감시를 받으며 트럭에 묶인 채 누워 있는 사진과 광주공원에서 총을 하나 들고 점검하는 사진, 이 두 개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 찍힌 것이고, 어느 것이 나중에 찍힌 것입니까?  

트럭에 묶여 있는 사진은 5월 20일 이전에 찍힌 사진이고, 총을 하나 들고 있는 사진은 5월 22일 이후에 찍힌 사진입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5월 18일부터 20일 사이 공수부대는 많은 청년들을 체포했습니다. 하루에 1개 대대 당 200명 내외의 젊은이들을 붙잡아 도망을 갈까봐 겉옷을 벗기거나, 허리띠를 빼거나 묶거나 해서 화풀이를 좀 한 후, 그들을 모두 광주지역 향토사단인 31사 헌병에 넘겼습니다.  

광주 주둔의 향토사단은 정웅이라는 김대중 꼬붕이 사단장을 했습니다. 그는 처음 며칠 공수부대를 작전배속 받아 공수부대를 지휘했는데, 그 지휘방법 등이 여러 가지 의심을 받게 했습니다. 따라서 31사단의 군기는 그리 큰 신뢰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8광수 최경성은 공수부대에서 31사단으로 념겨졌을 것입니다. 최경성은 31사로부터 플려나 곧바로 본 대열에 참가하여 5월 22일 이후에 총기 하나를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광수들도 이와 같습니다.  

제36광수인 최룡해는 이미 공수부대에서 31사단에 넘겨졌고, 31사단병력과 함께 있을 때 사진이 찍힌 것입니다. 그리고 최룡해는 31사로부터 풀려나 5월 22일 이후 방독면을 쓰고 있는 모습, 머리에 오색두건을 쓰고 있는 모습을 한 채 사진이 찍힌 것입니다.  

44광수인 전진수는 공수부대가 잡아 31사로 념긴 후 31사 병력과 함께 사진이 찍힌 것입니다. 광주에는 고정간첩들이 대거 집합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50세 였던 손성모는 거물간첩으로 특수군에 길을 안내하고 증심사에 본부를 두고 고정 간첩들을 지휘했을 것으로 알려진 간첩입니다.  

8광수, 36광수, 44광수는 31사로부터 방출된 것이며, 31사로 방출되었기 때문에 5월 22일 이후에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진이 찍힌 것입니다. 저는 이들 특수군이 31사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식은 죽 먹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31사에서 세 광수들을 계엄사 검찰부로 넘겼다면 이들은 5월 22일 이후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진 찍힐 일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3명의 광수는 31사단으로부터 곧장 풀려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신뢰를 위해 재판기록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재판기록 : 공수부대, 체포자들을 31사 헌병대로 인계했다

1996.10.17. 5.18 사건재판 제2심 3차 공판에서 35대대장 김일옥 중령은 이렇게 진술했다.  

문 : 7공수여단 35대대는 광주 조선대학교에 도착함과 동시에 31사단 96연대에 배속되었지요. 

답 : 그 현장에서 명령 받았습니다. 

문 : 증인은 광주에 도착한 다음 날인 5.18. 14:40경에 500MD헬기를 타고 조선대 연병장에 내린 정웅 31사단장으로부터 광주시위 진압작전 명령을 하달 받은 사실이 있지요. 

답 : 예, 있습니다. 

문 : 시위진압 임무를 받고 위수지역에 투입되면, 그 이후에는 위수지역 사령관인 현지 지휘관의 지휘 하에 시위진압작전을 하는 것이지요. 

답 : 예, 배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 : 정웅 31사단장은 명령을 하달하면서 지금 전교사 회의에 갔다 오는 중인데 오면서 보니까 광주 시내가 난리가 났다. 경찰은 완전히 수세에 몰려 있는 것 같다. 33대대로 하여금 금남로 아래에서 유동 삼거리 방향으로 병력을 투입해서 압축하겠다. 도청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차단하고 있으니 35대대는 금남로를 중심으로 좌우측 도로의 주요 목을 점령하고 있다가 금남로로부터 빠져나오는 시위대를 체포 연형해서 조선대학교로 호송 하였다가 헌병대에 인계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은 사실이 있지요. 

답 : 예, 받았습니다. 

문 : 평시 충정훈련 상의 시위진압 방법은 시위대를 향하여 위력시위와 선무방송을 한 후에 시위대가 불응할 경우 시위대를 세 방향에서 봉쇄, 차단하고 한 방향은 반드시 퇴로를 마련해서 시위대 해산에 중점을 두는 시위진압 방법을 택하고 있지요. 

답 : 예, 그렇습니다.  

문 : 그러나 정웅 31사단장의 시위진압 작전명령은 위력시위를 생략한 채 금남로 상의 시위대의 모든 퇴로를 차단, 봉쇄함으로서 체포에 중점을 둔 것이었으므로 증인을 비롯한 대대원들도 강력한 시위진압 방법으로 받아 들였지요. 

답 : 예, 그렇게 받아 들였습니다.  

문 : 더구나 35대대는 오전에 96연대에 배속이 되었는데 느닷 없이 차상급 지휘관인 사단장이 직접 조선대 연병장까지 와서 시위진압 명령을 하달 하였으므로 부대원 모두가 상당히 긴장하였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위 명령을 수행하다 보니까 수적으로 열세인 계엄군이 수많은 시위대를 해산, 체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몸싸움이 불가피 하게 되었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지요.  

답 : 그 당시 상황으로는 그랬습니다. 

문 : 35대대 예하 10지역대는 충장로에서, 11지역대는 제봉로에서 약 5-10분간 선무방송을 실시한 후 시위군중들을 제압, 체포한 사실이 있지요. 

답 : 예, 그렇습니다. 

문 : 35대대는 당시 173명을 체포하여 조선대로 호송한 다음 31사단 헌병대에 인계한 사실 이 있지요. 

답 : 예, 있습니다. 그것은 최초 사단장이 명령을 했기 때문에 조선대에 호송시켜 헌병대에 인계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문 : 전교사 전투상보에 의하면 31사단이 체포, 연행한 것이 405명으로 나와 있는데, 이 중 173명이 포함된 것이지요.  

답 :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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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2015-08-16 19:52:42
참으로 어이가 없어 할말을 잃었습니다 광주 한심한 시민들이여 불쌍하다. 저래도 잘났다고 하였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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