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하게도 5.18에 대한 분석과 판정이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1980년 5월 나는 당시 공직자였고 서울에서 직무 교육중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로 나는 당혹했다.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진로에 대해 고심이 깊어간 것도 이때 부터였다. 그리고 몹시 분노하고 있었다. 특히, 신군부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몰려왔다.
1979년 부마사태로 촉발된 유신체제는 10.26으로 종말을 고했다. 이후 12.12를 통해 실세로 대두된 신군부는 여러가지 면에서 준비안된 정권이었다. 무엇보다 광주사태에 대한 불온한 소식은 신군부에 대한 인식을 더욱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특히, 부마사태 당시 공수부대원들의 시민들에 대한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대응을 보아온 경험은 계속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다.
마침내 공직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하자 어렵게 구한 광주사태에 대한 자료는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지만원 박사 : 황석영의 '넘어 넘어'는 북한이 사진 좌상측 2개의 북한 책을 따매기 하여 작성해 가지고 여러 경로를 거쳐 황석영의 손에 도달된 것)가 유일했다. 또한 대학에서 우연히 본 광주사태 영상자료도 여기에 일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화 과정에서 김영삼ᆞ김대중이란 인물들에 대한 회의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민주화 초기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짧은 기간 정치컨설팅을 하면서 한국 정치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민주화의 주체들의 의식, 애국심, 지성 등에 대한 실망이 컸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정치 변화에 대한 기본 인식과 고민이 결여되어 있었다. 거들먹거리는 행태와 지도자로서 교양마저 빈곤하여 차라리 군사독재 당시의 정치인들 보다 현저하게 자질이 결여되어 있었다.
마침내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그들의 민낯을 보아온 나에게 초기의 개혁으로 국민들은 환호했으나 의구심만 깊어 갔다. 그리고 곧 문민정부는 효율성과 효과성에서 모두 실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IMF와 권력교체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타난 김대중은 도저히 믿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권력을 잡자 친북(종북)정권으로서 본색을 드러냈다. 인사는 지역성과 국가적 아젠다는 온통 북한 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종북정권인 노무현정부를 탄생시켰었다.
년전 우연하게 종북세력과의 일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5.18 당시 증인인 김동문 대기자로 부터 광주사태에 대한 자료(김대령 저, '역사로서 5.18' 포함)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열람하면서 5.18은 한국 현대사의 왜곡 현장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5.18에 대한 과학적 역사적 검증을 통해 국가적 유명인사인 지만원 박사의 '5.18 분석 최종 보고서'을 받게 되고, 어제는 조갑제 대표로 부터 '조갑제의 광주사태'도 받게 되었다.
이로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운명적으로 5.18(광주사태) 검증을 맡게된 것이다. 과학과 학문의 기본적 본질은 반증과 검증이다. 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마르크시즘을 반증이 불가능한 도그마 이기에 과학이 아니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런 점에서 황석영의 책은 의문에서 출발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책은 이후 오랜시간이 경과하고 정치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체계적 보완 등 적실성의 확보가 아니라 김일성으로부터 자금을 받는 등으로 근본적 의심을 하게된다.
또한, 광주사태에서 쟁점의 관건인 북한특수부대의 개입을 지속적으로 부인하는 조갑제 대표의 저술도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광주 5.18에 대한 북한의 지속적인 선전과 함께 황장엽 등 탈북자들의 계속적인 북한특수군 개입 증언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광주사태 당시 직접 취재현장에 있었다는 경험을 강조하며 이를 일관되게 부정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경험이란 각자가 자기 잘못에게 부여하는 이름이다" 라는 명언을 남긴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의 진실과 사실(역사)에 대한 경험의 한계를 보여주는 자세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지로 검증과 반증을 제1차적으로 과제로 접근하는 점에서 김대령과 지만원 박사의 저술은 다른 두책과 차별화 된다. 그리고 지만원 박사의 '5.18 분석 최종 보고서'는 12년에 걸친 지속성과 재판과정에서 확보된 북한자료 등 다양한 증거들을 통하여 검증과 반증을 보여주어 (과)학자적 우위가 보여진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라는 E.H.Carr의 명제는 5.18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5.18은 단순히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국군의 명예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객관적 검증은 호남인들의 진정한 명예회복과 동서화해, 국민통합에도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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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등 5공 인사들은 지금 큰 착각을 하고 있다. 그들은 5.18의 진실에 대해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 침묵하기만 하면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거라고 여기는 것 같은데 그 건 크나 큰 착각이다.
진실은 결국 승리하게 되어 있고 5.18의 진실도 마찬가지다. 5.18을 북괴 특수군이 주동했다는 진실이 알려지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가? 그 과정에는 앞으로 국민들이 전두환 등 5공 인사들의 증언을 듣는 일들이 반드시 포함되게 되어 있다.
그 때 전두환 등 5공 인사들이 1. 계속 침묵하다가 법정에 <끌려 나오게 되어> 증언하는 모양새가 되어 또 다시 온갖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인가 2. 아니면 5.18 진실 규명의 당당한 주체 중 하나로서 자랑스럽고 능동적인 증언을 하게 될 것인가는 오로지 지금 자신들의 선택에 달렸다는 걸 왜 모르는가.
1이 아닌 2의 경우가 되려면 먼저 전두환 등 5공 인사들은 <5.18에 대한 재심 청구>를 신속히 진행해야 하고 5.18 당시 북괴 특수군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 데 대한 대 국민 사과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명예가 보전될 수 있으며 그러지 않으면 두고 두고 국민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시간은 계속 가는 중이다. 늦기 전에 올바른 선택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