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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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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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상징하는 건물은 대기업의 사옥들

 
   
  ▲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 네이버 사진
 
 

여름 휴가로 그리스를 다녀온 사람은 반쯤 부서진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을 모니터의 바탕화면으로 장식하곤 한다. 이집트를 다녀온 사람은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중국을 다녀온 사람은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을 배경을 찍은 사진을 자랑스레 내 놓는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과 루브르 박물관,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과 금문교 등 대개 도시는 그것을 상징하는 건물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건물들의 공통점은 당시의 최고 권력자가 최고 신기술과 거대 자본을 들여 지었으며, 오랜 기간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국가의 세심한 관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건물을 보통 기념비적인 건물이라고 하는데,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정확하게 표상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인간이 후세에 남을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건립하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로, 고인돌이라고 하는 족장의 무덤이 그것이다. 우리는 그 커다란 돌덩이를 바라보며 이것을 실어 날랐을 많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부릴 수 있었던 권력의 크기를 짐작한다. 고대 문명의 특징은 거대한 돌을 쌓아 세력을 과시하는 것인데, 이것이 가장 웅장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진 것이 피라미드이다. 인류 역사상 왕권이 가장 강력했던 나라는 고대 이집트와 마야문명이며, 이 두 문화권에서만 피라미드가 건립되었다. 이집트와 인접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왕의 무덤 대신 왕이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신전이 남아 있다. 이집트의 왕이 신과 동일시되었던 반면, 메소포타미아의 왕은 신과 인간의 중간자였기 때문이다.

인더스 문명이 융성했던 갠지즈 강 유역에서는 왕궁이나 신전 대신, 벽돌로 지어진 서민들의 주거 유적지가 대단위로 발굴되는 것을 보고 학자들은 세계 4대 문명 중 인더스 문명이 가장 민주적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장 많이 지어지는 건축물은 서민의 집이다. 하지만 값싼 재료와 조야한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곧 낡아 없어져 버린다. 인더스 문명의 주거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은 서민 주택을 짓는데 고급 재료와 정교한 기술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그리스 도시국가에서조차 가장 공들인 고급 건축물은 그 도시를 지켜주는 수호신의 신전이었다. 고대 국가에서는 왕권보다 신권이 더 중요시되었고, 그래서 유적으로 궁전이 아닌 신전이 남아 있는 것이다. 고인돌이나 피라미드는 그 사회적 성격상 신전에 가깝다.

로마 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은 한 마디로 대규모 오락장들이었다. 로마 제국은 원칙적으로 공화정을 표방했기 때문에 신전이나 왕궁을 짓지는 않았지만, 로마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들기 위해 각종 오락을 개발해 내었고 그 오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대형 건물들이 필요했다. 인간과 짐승의 맞대결을 구경했던 콜롯세움, 전차 시합이 벌어지던 원형 경기장, 극장과 대형 목욕장, 개선 장군이 입성하는 장면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연출하여 애국심이 절로 끓어 넘치게 했던 개선문 등이 모두 이 때 지어진 것이다. 지금도 로마 시내 곳곳에서는 분수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본디 로마 시민이 물을 마시던 음수대(飮水臺)이다. 로마 제국은 어느 지역을 점령하게 되면 제일 먼저 분수를 설치해 시민들에게 마음껏 물을 마시게 하는 것으로 시혜를 베풀며 제국의 권위를 상징했다.

서양의 중세를 기독교가 지배했듯이, 중세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성당과 교회 일색이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영국의 웨일즈 대성당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대성당은 모두 이 때 지어진 것들이다. 곤핍한 삶을 상징하는 어두컴컴하고 긴 복도와 천국을 상징하는 높고 밝은 천장의 대비는 신의 위대함과 인간의 왜소함을 절절이 깨닫게 했고, 결국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이 ‘고딕 양식’의 건물들은 서양 건축사에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르네상스 이후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해운 항로가 개척되면서 서구 열강들은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고 그 와중에 축적된 막대한 국부는 전제 군주의 탄생을 부르게 된다. 서구 역사상 처음으로 왕권이 교황권을 능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절대 권력은 호화 궁전의 건립으로 이어진다. 러시아의 에르미타쥬 궁전, 프랑스의 루브르 궁전과 베르사이유 궁전이 모두 이 때 지어졌으며, 왕정이 붕괴된 지금은 모두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전세계의 관광객 앞에서 여전히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건물로 손꼽히는 베르사이유 궁과 루브르 궁은 ‘태양왕’이라 불리었던 루이 14세의 비호 아래 지어졌으며, 그것은 결국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된다. 이후 시민의식이 싹트고 대통령제나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는 국가가 많아지면서, 20세기에는 국회 의사당이나 국립 도서관과 같은 건물이 주도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고건축들은 주로 사찰과 궁궐인데, 특히 사찰은 삼국시대와 고려 시대의 것이고 궁궐은 조선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불교가 탄압 받던 조선시대에 이렇다 할 사찰이 지어지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고려나 삼국시대의 왕궁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대개 근세 이전의 국가는 왕권보다 신권이 앞섰기 때문이다. 조선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유교 이념을 근간으로 한 나라였기에 통치의 기본이 되는 왕궁 건축을 중요시하였다. 무속이나 불교 등의 종교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성현이나 조상에 대한 제사는 인정하였기에 각종 사당과 향교가 많이 지어졌다.

조선 중기 이후로는 집안의 재산을 장남이 단독 승계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재산축적이 심화되어 거대 문중이 탄생하게 되고 이른바 ‘종가’가 등장하게 된다. 종가나 사당, 향교 등은 유교가 변질되기 시작했던 조선 중기 이후의 특이한 건축물이며, 지금 이것들은 주로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렇게 건축물은 그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의 건축물은 무엇에 의해 지배를 받을까, 다시 말해 오늘날 세워지고 있는 기념비적 건축물은 무엇일까. 서울의 도심,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그 곳에 어떤 건물들이 세워져 있는가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바로 대기업의 사옥들이다.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업 사옥 가운데 하나인 63빌딩의 야경
ⓒ 63빌딩 홈페이지
 
 

현대는 자본주의의 시대라서 거대 자본을 가진 대기업의 사옥이 가장 멋진 건물들이다. 사옥은 특히 기업의 이미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모든 기업들은 우리가 자본금이 많은 견실한 기업임을 강조하기 위해 값비싼 재료와 첨단 기술을 아낌없이 사용한다. 그런 건물들은 아주 교통이 좋은 요지에 자리잡은 것으로도 모자라, 건물 앞에 넓은 공지를 두어서 분수대와 조각상, 벤치 등을 두어 쉼터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로마가 시내에 분수를 설치하여 시민에게 식수를 제공하는 것으로 시혜와 권위를 상징했듯, 그 비싼 땅을 시민에게 제공하며 거대 자본을 자랑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3,40년 후면 철거되고 없을 테지만, 가장 값비싼 재료로 가장 공들여 지은 그 건물들은 적어도 몇 백 년은 거뜬히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300년 정도를 버티고 나면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해 주며, 용케 500년 정도를 견디고 나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 그리하여 국가의 지속적인 보호와 관심 속에 놓여진 채로, 구경을 하려면 먼저 요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곳곳에 ‘들어가지 마시오’, ‘실내 촬영 금지’ 라는 팻말이 붙어 있을 것이며, 그 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기껏 분수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나마 영원히 기념으로 간직할 것이다.

도심지에 나갈 일이 있거든 대기업의 사옥에 들러 로비에 앉아 보자. 혹은 분수대 앞에서 미리 사진을 찍어도 좋다. 지금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복궁이나 덕수궁, 하다못해 종갓집도 그 당시에는 나 같은 서민이 얼씬조차 못하던 곳이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 대기업 사옥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앞으로 몇 백년 후 까마득한 나의 후손들은 이 곳에 돈을 내고 입장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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