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은 이러한 국가대표팀의 축구 스타일을 두고 한번 걸려들면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뜻에서 늪 축구를 구사한다는 평가까지 내놨다. 호주도 이 늪에 걸려들어 패배를 당하여 그들이 우승을 위해 짜놓은 경기 일정의 혜택은 우리나라 대표팀이 고스란히 챙기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난 22일 있었던 8강전에서 우스베키스탄을 연장전 끝에 2대 0으로 물리치자 한국 축구를 보는 외신들의 평가도 확연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회가 열리기전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평가했던 일본과 이란이 8강전에서 무릎을 꿇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부상해 있고 외신의 시선도 우리나라 영건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60~70m 드리블을 치고 나가 달라붙는 수비수를 거뜬하게 제치고 손흥민에게 정확하게 패스하여 골을 성공시킨 배달꾼 차두리의 폭풍 드리블에 외신기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뜬채 경탄해 마지않았다. 일본 J리그에서 우라와 레즈팀의 감독을 맡고있는 미하일로 패트로 비치 감독은 "아시안컵을 보면 한국 축구가 일본보다 머리 하나는 앞서 있다"면서 한국 팀의 기량을 극찬했다. 이날 경기 중계에서 캐스터 역할을 맡은 SBS 배성재 아나운서는 "저런 선수가 왜 월드컵 때 해설을 하고 있었을까요"라고 언급하자 박문성 해설위원도 "아, 그러게요"라며 맞장구를 쳤다. 배성재 아나운서의 이 멘트는 한국축구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압축하는 의미로 들려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발언이기도 했다.
이번 2015 호주 아시안컵에 출전한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 감독은 독일인 슈틸리케 감독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 팀을 맡은 지는 이제 불과 145일이 지났을 뿐인데도 지난 브라질 월드컵 당시에 비해 국가대표팀의 팀 컬러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현재 호주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컵은 아시아 선수권을 겨루는 최고 권위의 국가대항전이다. 이 경기에서 우승하는 국가는 대륙별 챔피언 국가가 참가하는 컨페더레이션컵에 출전하는 자격도 주어진다. 아시아 챔피언에 오르게 될 순간까지는 이제 단 한경기만 남겨두었다. 4강전에서 이라크를 2대 0으로 꺾고 여기까지 오는데 55년이 걸렸다.
4강전에서 이라크를 2대 0으로 완파하자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은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완벽함의 정점을 이뤄냈다. 이제 결승에서 호주, 또는 아랍에미레이트가 한국과 맞붙게 되지만 이 두 팀은 한국보다 한 수 아래다"고 보도했다. 이어 "한국의 수비는 난공불락이었다"며 조별예선부터 4강까지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은 점은 기적과도 같다고 찬사를 보냈다. 축구 종주국인 영국의 가디언지도 "한국이 이라크에 비해 궁극적으로 압도적이었다"고 보도했으며 김진현 골키퍼에게도 찬사를 보냈다.
한국축구 대표 팀에는 중동국가와 달리 귀화한 외국출신 선수는 단 한명도 없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에도 순수 토종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렸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국내출신 감독에서 외국인 출신 감독으로 단 한사람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국내파 감독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슈틸리케 감독은 조용히 움직였다. K리그나 대학팀 가릴 것 없이 성인 축구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열심히 찾아가서 여러 선수를 살폈다. 기술의 발전능력과 미래의 성장가치에 중점을 둔 잠재능력을 지닌 선수의 발굴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에서만큼은 학연도 없었고, 지연도 없었으며, 인맥도 없었다. 모든 것이 백지상태였으니 의리 축구를 구사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축구스타일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스타급 선수든, 무명의 선수든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뽑았다하면 충실하게 기용했다. 이때 대표로 선출된 선수가 이정협, 차두리, 김진수, 골키퍼 김진현 등이 이었다. 학연도 없고 인맥도 없는 이들은 이번 아시안컵 대회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무명의 군인선수 이정협의 발굴은 슈틸리케 감독이 지니고 있는 혜안의 질(質)이 어떠한지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만약 대표팀 감독이 국내파였다면 과연 진흙 속에 숨겨져 있었던 이정협을 발굴해 낼 정도로 안목이 있었을까. 또한 폭풍 드리블로 찬사를 받고 있는 차두리를 꾸준한 설득을 통해 과연 대표팀에 승선시키기 보다는 한물간 선수라고 내팽개치지는 않았을까,
슈틸리케 감독은 이라크 전이 끝난 후 "한국이 27년 만에 결승에 진출해 상당한 의미가 있겠지만 우승을 하더라도 한국 축구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한국 축구를 변화시켜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이처럼 슈틸리케 감독은 어떻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길인지를 조용하게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 영입을 추진한 주인공은 KFA 기술위원장 이용수였다. 이용수는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도 기술위원장을 역임했다. 가장 필요한 자리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이용수였던 것이다. 사심이 없는 기술위원장을 통해 감독 한사람을 바꾸니 그동안 축구계를 주름잡았던 의리축구가 사라지고 고정관념 없고 편견도 없는 선수들의 기용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더 없이 좋겠지만 설령 운이 나빠 준우승을 한다고 해도 팬들은 얼마든지 박수를 쳐줄 것이다. 보다 더 큰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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