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은 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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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은 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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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불굴도 비굴도 같이 간다

이누이트 족은 캐나다 북극권에 사는 에스키모이다. 그들은 약 4천년 동안 사냥감을 쫓아 얼음과 툰드라를 횡단하며 생존을 이어왔다. 주요 지형지물이 없고, 하룻밤만 지나도 인적이 사라지는 척박한 곳에서 백리 길도 무사히 돌아다녔다. 지금은 개썰매 대신 주로 설상차로 이동하며, 야생적 감 대신 GPS로 자기위치를 파악한다. 기계의 편리함에 안주하는 에스키모들은 바람이나 적설 같은 자연신호에 대한 야성이 점점 둔감해져 갔다. 그래서 등잔 밑이 어둡다는 금언처럼 오늘날에는 막상 현지주변의 위험에 빠지는 안전사고가 빈발한다는 것이다.

위성방송에 사용되는 정지위성은 우리 상공에 머물러 있다. 이 방송위성은 지상 36000 km 위에 떠 있는데, 지구 반지름의 약 6배에 가깝다. 따라서 지상에서 정지위성까지 전자기파가 가는데 0.12초가 걸리고, 지구 저편의 정지위성에 연결된 상대방의 반응까지 고려하면 약 0.5초 가량이 걸린다. 따라서 자동차 네비게이션 시스템은 분해능이 더욱 세밀한 저궤도 위성을 이용하지만, 그래도 "네비 아가씨"의 길안내 방송은 10 m 이상의 오차가 발생한다. 이런 사실은 네비의 맹점 범위가 바로 자기 곁에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한 친구는 칠순 노인답지 않게 야성적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줄넘기를 한번에 4천회 돌리며, 냉수욕을 즐긴다. 머리를 찬 물에 처박고 죽은 듯 2분간 숨을 멈췄다가 얼굴을 들었을 때, 그때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의 쾌감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고 언어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 한 여학생이 마지막 숨을 토하며 남긴 말이 떠오른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이때의 한 모금 공기는 억만금하고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삶의 환희는 갈증 날 때의 냉수 한 잔, 참았던 오줌 눈감고 싸기 등등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논리철학자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놀라운 야성을 지녔던 사람이었다. 그는 1차 대전 발발(1914) 직전에 유럽에서 최고부자 중의 하나가 될 만큼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으나 모두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희사했다. 그리고 조국 오스트리아 편으로 참전하여 장교였지만 언제나 최선두에서 독전하여 숱한 무공훈장을 받았다. 마치 총알이 오히려 용감한 그를 피해가는 듯 했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그의 생전에 발간한 유일한 저서, 흔히 "논고"라고 줄여서 부르는 수상록을 틈틈이 기록했다. 그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실직한 후 돈으로 갑질(甲質) 행세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처와 두 딸을 교살했던 끔찍한 사건의 혐의자 엘리트출신의 가장에 대하여 우리는 침묵을 지킬 수 없다. 왜냐 하면, 그에게서 야성은 어디로 숨었는지 도무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약함과 악함이 우리 모두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비참하더라도 을질(乙質)로서 살아남아야 하지 않았을까. 안중근의 막내아들 안준생, 그는 변절자로서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굴욕적으로 절을 했다. 안준생은 왜 그랬을까? 그때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그를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남은 죄밖에 없다고요.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시지만, 가족에겐 재앙이었어요." 지나쳤다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그 비굴함은 어쩌면 그렇게 우리 속 모습과 닮았는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의 하얼빈은 앞으로 21세기 유라시아 네트워크의 거점 도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한 세기 전의 만주는 제국주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기회의 땅이었다. 일본 제국의 정계 원로 이토의 마지막 길이 되었던 하얼빈은 만주를 놓고 러시아의 재무상과 흥정하기 위한 장소였다. 동양의 신천지 만주는 열강들의 정글이었고, 시대는 야성적인 투사 안중근의 출현을 기다렸다. 그리고 안중근이 내품었던 불꽃같은 불굴의 얼과 안준생이 생존하며 다음을 기다렸던 비굴한 삶은 함께 어울려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졌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나자, 우리는 마침내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다음에 지적된 한국에서 없어진 것 다섯 가지는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다.
1. 귀신과 도깨비는 전기가 들어오면서 없어졌고,
2. 호랑이와 늑대는 6.25 전쟁 때 없어졌다.
3. 보릿고개와 굶주림은 박정희 때 없어졌고,
4. "간첩 잡자"는 말은 김대중, 노무현 때 없어졌다.
5.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이 없어졌다.

아래는 이어령의 새해 소원시 중의 일부이다.
"숨 가쁘게 달려와 /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다가 /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액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서도 /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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