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서의 배신은 일상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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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에서의 배신은 일상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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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정보제공자가 왜 국세청 전직 간부였을까

▲ ⓒ뉴스타운
육망(六望)을 바라보는 50대 나이의 전직 고위 관료 출신이 두 사람이 있다. 50대의 나이라면 뒷방으로 물러나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한 나이다. 이들의 나이가 한창 일할 때임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야욕(野慾)을 가질 만한 나이임은 분명하다. 이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노무현 정부 때도 고위관직에 기용되었고, 현 정부에서도 고위관료에 기용되었으니 좌파정권과 우파정권에서 권력의 속성을 알만했을 것이다.

이것 말고도 이 둘의 공통점은 또 있다면, 한때 자신을 요직에 등용했던 주군을 향해 칼끝을 겨눌 줄을 안다는 점일 것이다. 칼끝을 겨눌 줄 아는 나이라면 아직도 나이가 젊다는 의미도 있고, 앞으로도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의욕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짐작은 어렵지 않다. 관료생활도 했고 차관급과 장관급까지 지냈다면 남은 것은 아마도 정치입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치지형에는 야당도 있고 여당도 있으며 무소속이라는 것도 있다. 만약 이들이 앞으로 정치를 한다면 선택할 지대는 야당이나 무소속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때, 자신을 기용해 주었던 임명권자에게 저들이 저렇게 안면을 몰수하고 과단하게 나올 리가 없었을 것이다.

주변 지인들은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는 균형 된 시각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섣불리 결론을 내거나 예단(豫斷)을 하지 말라고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일요일 모 결혼식장에서 만난 전직 법무장관도 똑같은 말을 해주기도 했다. 

이른바 정치권에서의 배신은 생존본능에 의한 살아남기 위한 자신의 방어막이자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비밀병기와도 같다. 배신이란 배신을 해 본 사람만이 또 배신을 하는 법이다. '섹스피어'는 배반당하는 자는 상처를 받지만 배반한자는 더 비참한 상태에 놓인다고 말한다. 또 '샤르트르'는 배신자를 기생충에 비유하기도 했다.

배신이라는 말 속에는 배은망덕이라는 인감품성의 진면목도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정치판에는 배신을 밥 먹듯 하는 기생충이 유독 많았다. 기생충은 생명력이 끈질겨 긴긴 세월동안 명맥을 이어왔을 정도로 환경토양이 잘 발달되어온 탓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환경토양이 정치권에서 기생충이 번창하는데 유용하게 작용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현대를 막론하고 유난히도 조정에는 투서와 상소(上訴)가 많았다. 눈에 가시와도 같은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서라도 김밥을 돌돌 말아 반대세력을 말살해야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배신정도야 식은 죽 먹기 정도로 쉬운 일이기도 했다. 특히 궁중암투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사건의 거의 대다수가 배신과 음모에 의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각종 기록과 실록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고려 말, 개성에는 '설매'라는 유명한 기생이 있었다. 가무에 능란하고 재색이 뛰어났으며 잘생긴 남자를 보면 먼저 눈꼬리를 치는 요부의 기질도 지니고 있었다.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켜 고려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을 축출하고 조선왕조의 태조가 된 뒤에 개국 공신들을 초대하고 기생들을 불러 주연을 베풀 때의 일이었다. 당시 개성이 수도였던 터라 당연히 개성 최고의 기생 설매도 불려 와서 홍등을 밝혔다. 이 자리에 참석한 조선최초의 영의정 배극렴이 술에 취해 설매에게 농을 걸었다. 

배극렴이 취중에 말했다. "설매야, 듣자하니, 네가 동가숙 서가식을 잘한다던데, 나와도 하룻밤을 지낼 수가 있겠는냐"고 물었다. 배극렴의 이 소리는 설매에게는 모욕이었다. 하지만 재기가 번득이었던 설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설매가 술잔을 들고 대답하기를, " 대감이 말씀하셨듯 제가 동가숙 서가식하는 천기로서, 왕씨도 섬기고 이씨도 섬기는 정승대감과 어찌 하룻밤을 못 지낼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니 배극렴이 낯이 붉어 머리를 들지 못했다고 한다. 고려에서 높은 관직을 지내고도 왕씨 고려를 멸망시키는데 앞장섰고 이씨조선에 빌붙어 높은 벼슬을 한 배극렴의 배신을 설매가 멋진 화술로 한방을 먹인 일화다. 현대사에서도 배극렴과 같은 일화를 가진 레전드들이 즐비하다.

세상에서 출세를 노리는 학자들이 자신이 배운 학문은 뒤로하고 시류에 편승하여 곡학아세를 주업으로 삼는 자들을 일러 학문을 배신한 자들이라고 지칭한다. 또한 고위관료를 지낸 자들이 자신을 등용시킨 임명권자에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앞으로의 정치적 입지를 도모하는 자들도 배신자라고 한다. 질(質)이 어떠하든, 종류가 어떻든 간에 배신자는 역시 배신자일 따름이다.

만약 특정 문고리 권력 3인방이라는 자들이 자신들이 모시는 임명권자의 눈을 속이고 정치권 밖의 어떤 그림자와 어두운 뒷골목에서 국정을 어지럽히는데 일조를 했다면 이들은 임명권자를 속인 배신자 그룹에 들어간다. 이 경우에는 읍참마속이 아리라 쾌도난마처럼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실하게 판명이 된다면, 이들을 배신자로 몰아간 또 다른 배신자가 엄중한 단죄를 받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엊그제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서는 여당의 지도부와 예결위원을 초청하여 오찬을 함께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격정이 섞인 소회를 밝혔다. 내용은 이미 언론에 충분하게 보도되었으니 보도 내용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각자가 내리는 해석은 분분하다. 아직도 실체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스러운 지적도 있고, 진정성이 읽혀진다는 지적도 있다. 아직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만큼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진정성의 판단여부는 각자의 생각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은 검찰에서 십상시 모임의 최초 정보제공자인 박 모씨를 찾아내어 진위를 물었더니 자신도 증권가 찌라시에 나도는 풍문을 박 경정에게 전달했을 뿐이라고 했다고 한다. 최초 정보제공자나 이 제보를 받은 박 경정 역시 아무도 현장에 나가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가 막히는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풍문과 루머는 항상 이렇게 가공 생산되어 널리 퍼져나가는 법이다. 

최초 발설의 정보제공자는 전직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자였다고 한다. 국세청 간부를 지낸 자가 왜 정치권 풍문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자처했을까. 이 사람이 노린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또 현장을 목격하지도 않고 임의로 정보를 제공했다면 항간에 흘러 다니는 풍문만 듣고 그럴듯하게 각색(脚色)하여 전달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박 모씨가 어떤 이유로 이런 정보를 제공했는지, 또 그의 뒤에는 과연 배후는 없었는지, 검찰은 그 단서를 밝혀내야 한다. 제보자가 드러난 이상 이제 팩트만 남았다. 오늘 아침 대다수의 언론은 이 사실을 크게 보도하고 있다. 이 보도가 여론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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