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사내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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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사내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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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이 그의 집 암코양이와 놀아난 수컷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매스컴에서 접한 것은, 아버지에게 소포를 보낸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경찰에선 범인이 누군지, 무슨 이유로 피살되었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집에서 예리한 칼에 수십 군데나 잔인하게 난자당한 걸로 보아, 원한이나 치정에 얽힌 살인 사건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수사망을 좁혀오다 보면 태진의 집 암컷이나 아버지, 그가 참고인 자격으로 불려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태진은 아버지란 남자가 그렇게 쉽게 수사망에 걸려들 정도로 허술하게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태진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첫 계단에 턱을 고이고 앉아있었다. 안방에선 수컷의 고함과 뒤이어 뭔가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 뒤이어 들려오는 암컷의 비명…… 이제 두 짐승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했다. 암컷이 수컷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신나게 두들겨 맞는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질러대는 비명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차마 듣기 거북한 수컷의 욕설이 퍼붓는 눈발처럼 난무하고 있었다.

태진은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두 짐승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암컷은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옷이 갈갈이 찢겨, 작은 수박만한 젖가슴 한 쪽이 찢겨진 옷 사이로 드러나 있었고, 그에 못지않게 수컷의 모습도 가관이었다. 암코양이의 길다랗고 날카로운 발톱에 할큄을 당했는지 얼굴에서 줄기를 지어 피가 흐르고, 안경도 한 쪽 알이 깨져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태진은 부끄러웠다. 자신이 한때 저 비곗덩어리 같은 암컷 젖가슴의 젖꼭지에 매달려 커왔다는 사실이. 수컷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에게서 일용할 양식과 안식을 얻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봐, 당신들! 다 큰 자식놈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아?”

갑작스런 태진의 등장과 거친 말투에 짐승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서도 암컷은 찢겨진 옷 사이로 드러난 젖가슴을 가렸고, 수컷은 당장에라도 태진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나가서 죽든지 살든지 결판을 내라고!”

태진은 소리를 지르고 ‘꽝’ 소리가 나도록 방문을 닫고는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심하기만한 자신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몰랐다. 정말이지 평소답지 않은 말투와 행동이었다. 두 짐승은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독기 어린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함께 차에 올랐다. 차는 거칠게 대문을 빠져 나갔다. 태진은 이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 순간, 할 수만 있다면 어디론가 끝도 없이 깊고 깊은 나락의 끝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몇 시간 뒤.

태진이 두 짐승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한 것은 병원의 영안실이었다. 그들은 양평 가는 길 고가도로의 난간을 부수고 차와 함께 추락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시신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태진은 피투성이가 된, 부서진 장난감 로보트처럼 망가진 시신을 보면서도 아무런 느낌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면서도 싸웠을 것이고, 누군가가 극단적인 흥분 상태에서 핸들을 꺾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어디까지나 태진의 추측일 뿐이었다.

서로가 떠돌다 만난, 부모 형제는 고사하고 가까운 친척 하나 없는 그들이었기에 장례는 차라리 홀가분했다. 태진은 시신을 함께 화장했다. 죽어서나마 멀고 먼 저승길을 가면서 못다한 부부의 인연을 더하고 길동무하라고. 뼛가루를 북한산에 뿌리며, 가난했지만 단란했던 시절이 문득 떠올라 그제야 눈물 몇 방울이 볼을 타고 또르르 굴러떨어졌다.

태진에게 남겨진 유산은 상상을 초월했다.

맨 먼저 집을 팔고 거처를 옮겼다. 학교는 다녀야 했기에 하숙을 했다. 그리고 회사는 아버지 밑에서 부사장을 한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부동산과 주식 등은 모두 현금화시켜 은행에 예치했다. 은행에서 매달 나오는 이자만으로도 그는 얼마든지 호화롭게 쓰고 남을 지경이었다

어머니의 섹스 파트너, 수컷에 대한 수사도 시간이 흐르면서 미궁에 빠져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보니, 수컷의 본집은 비참할 정도로 가난했다. 수컷의 죽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개죽음에 불과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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