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 미래로 기찬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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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 앞에 거짓이 드러나다

하, 기차다! 솟구치는 45개 물줄기 위로 여러 불꽃들이 손에 손잡고 터진 공간으로 너울거렸다. 퍼팩트 45개 참가국, 아시아 40억 인구를 하나로, 미래로 엮어가는 인천 아시아드 게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개회식을 밝힌 그 성화는 태극문양을 나타내고 있었다. 분수대 테두리의 동그라미, 하부 청색의 물, 상부 홍색의 불이 그랬다, 그리고 그라운드의 네모까지 눈길이 잡히고 보면, 우리의 태극기가 어두운 밤하늘에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문득 까맣게 잊었던 스크립트 하나가 떠올랐다. 일제강점기 때 인도의 타고르가 동아일보 기자에게 넘겨줬다는 시, '동방의 등불'이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다섯 달 동안 세월호가 우리를 볼모잡았지만, 성화는 마치 횃불처럼 우리의 갈 길을 비췄다. 코리아는 이대로 통째 끝장난 나라가 아니었다. 이렇게 깨우치는 시인, 아시아 최초의 노벨수상자의 외침이 시공을 뚫고 우리에게 들려왔던 것이다. 

뻔뻔하고 표독스런 군상들의 표정에 우리는 질식하고 있었다. 자정너머 30분 이상 기다리게 했던 대리 운전기사에게 한마디 사과도 없이 명함만 내밀었던 어느 여자 국회의원, 그리고 마치 그녀의 졸개나 된 듯이 대꾸가 건방지다고 그 기사를 집단폭행한 세월호 유족 대표들, 그들의 이중성에 우리는 억장이 뒤틀리는 아픔을 당했다. 아니, 어쩌면 그런 그 허위성마저 우리는 예감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오히려 진실이 실종된 사회적 허탈감이 우리를 더욱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죽어서 열사가 되기를 바라던 문재인의 오리엔테이션과 달리, 46일 동안 단식했다던 어느 유족은 이 집단폭행 사건에 대하여 모종의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것은 그들이 자기 생명처럼 내세웠던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거기에서 보여준 뒤틀린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심청 같이 귀한 딸을 세월호와 함께 갈라 앉혔던 이 분은 심봉사와는 거꾸로 뜬 눈마저 감겨서 뭐가 뭔지 똑똑히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어느 듯 천안함피침 사건처럼 나라의 근간을 흔들며 뒤집어씌우는 무리들의 일관된 적색 기획이 심지어 세월호 유족의 저린 뼈까지 침투되고 저변화 되어 있음이 뚜렷하게 다가온 것이다. 이런 심각한 사태는 고 유병언의 파멸적 종말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기쎈 여자'가 있다. 남자에게 별로 달갑지 않지만, 여자가 기가 세려면 무엇보다 자신에게 정직해야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소신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세기 초엽에 국권을 장악한 것은 '기찬 나라'의 축복 받은 선택이었다. 파미르의 마고성에서 온 아시아를 아우르던 '환(桓)' 민족의 줄기가 삼천리 금수강산에 도래한 다음 한반도는 신토불이의 나라가 되었다. 그 후 '우리'는 오랜 옛날부터 여자들 중심으로 정한 수 떠다놓고 '칠성님'께 기를 부탁했고, '살풀이 굿'의 기 역시 다수 무녀들의 칼날에서 번쩍거렸다. 

그 기쎈 여자가 정색을 하고, 한마디 쏘아붙였다. 세월호 유족의 아픔을 뒤에서 정략적으로 흔드는 세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박영선은 국회를 버리고 장외로 뛰쳐나갔다가, 결국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마저 내놓고 말았다. 이어서 김현은 야밤중에 세월호 대표들과 술 마시며 그 대책회의를 하다가 세월호 특별법을 묻는 가부여론의 분수령이 되고도 남을 큰 실수(?)를 저질렀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놓고도, 청와대가 영도자답지 않게 지나친 품새를 보였다고 일부 대가 약한 정객이 꼬집었지만, 이것은 앞뒤를 못 보는 단견이다. 즉 정직의 장풍 앞에서 거짓의 무리들이 나가떨어지는 장면을 무시한 것이다. 

어둡고 힘들어하는 우리 대신 '명량'은 오늘도 울고 있다. 이순신이 그때 나직하게 말했다.

"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이 문제지.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은 다름 아닌 용기며, 그 기의 실체는 바로 희망이다. 장군은 몸소 앞서 전선으로 나갔다.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 그는 병사들의 용기를 먼저 북돋았다. 충무공은 우리를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용기로 바꾸어준 진정한 지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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