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최종보고서(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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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작전을 기획-연출-기록 하였다

▲ 5,18 광주사태 자료 사진, 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은 누구 인가? ⓒ뉴스타운
5.18에 대한 제 연구는 이제 햇수로 12년에 이릅니다. 5.18의 진실을 캐서 정리하는 것은 제 일생의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는 5.18이 역사 왜곡 및 날조의 상징이며, 대한민국을 적으로 생각하는 이 땅의 반역자들이 국가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역적이 충신으로 등극하여 온갖 신분적 대우와 금전적 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 이를 거울삼아 사실날조 및 신분상승을 반복하려는 세력이 부쩍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5.18 수사-재판기록 18만 쪽을 읽었습니다. 이 나라에 알려진 5.18에 대한 상식은 모두 거꾸로 날조된 거짓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 이라는 책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2008년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북한이 발간한 대남공작 역사 자료들, 북한이 만든 5.18 영화, 탈북자들이 쓴 5.18 수기, 통일부 자료, 일본자료 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검찰보고서에 나타난 상황일지, 안기부 상황일지들과 대조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5.18에 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와서 광주작전을 기획-연출-기록 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광주에서 북한특수군이 주도했던 작전에는 북한의 기막힌 전략과 전술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책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김일성이 직접 제작한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과 한국을 모략하는 내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1989년 김일성이 직접 황석영과 윤이상을 불러들여 환석영에게는 시나리오를 쓰게 했고, 윤이상에게는 영화음악을 작곡케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주제곡이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 이라는 사실도 밝견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오직 김일성만 "님"의 호칭을 소유하고 있으며, 영화 제목의 "님"이나 주제곡에서의 "님"은 바로 김일성에게 바치는 영화요 김일성에게 바치는 행진곡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아버님, 선생님 하다가는 살지 못합니다.

북한의 최고인 것들에 "5.18" 이라는 호칭을 명예로 수여한다는 사실을 수많은 탈북자들이 증언록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에서 이구동성으로 증언하였습니다. 실제로 룡성기업에 있는 1만 톤짜리 프레스에 "5.18 청년호"라는 글이 새겨진 사진도 입수돼 있고, "5.18 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이라는 글씨가 있는 철도역 사진도 입수하였습니다. 그리고 2001년 09월 28일 연합뉴스는 "이제까지 막연하게 존재만 알려졌던 북한 '5.18 영화연구소'의 실체가 최초로 밝혀졌다"고 보도하였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북한에서는 모든 지역에서 여러 날 동안 5.18을 기념하고 추념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다는 내용을 탈북자들의 증언록에서 읽었고, 이것을 통일부 '주간정세보고서'를 통해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이 발행한 대남공작 역사책들에는 5.18이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상 최고수준의 작품이라고 자랑되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5월 18일이면, 당시 대한민국 대학생들 전체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던 무서운 날이었습니다. 전두환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1995년 8월 17일자 검찰-군검 공동의 최종보고서에 의하면 5월 18일 아침 9:30분 경, 250여명으로 구성된 광주 대학생들이 전남대학교 정문에 무서운 자세로 정렬해 있는 계엄군을 향해 책가방에 준비해온 각이 진 돌멩이를 던져 계엄군 얼굴에 피가 줄줄 흐르게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그 어느 대학생들도 다 숨고,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는 영웅으로 그 세계에서 칭송되는 운동권 학생들도 모두 다 어디론가 꼭꼭 숨어 있던 그 시각에 감이 전남대-조선대 학생들 250여명이 떼를 지어 감히 돌멩이 정도를 가지고 계엄군을 스스로 찾아가 "우리 도서관에 가야 하겠다"며 시비를 걸고 이어서 돌멩이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배포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세계적인 수준의 싸움 능력을 가진 훈련되고 기획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남들은 혹시 오해를 받아 경찰에 걸려들까 숨죽이고 있는 판에 감히 무술 능력이 가장 뛰어난 계엄군이 곧 출동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수십 개 파출소를 불태워 광주에서 가장 천대받던 무산계급 즉 사회불만 세력의 잔치를 유도해내고, 구경꾼들을 대거 유인하는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을 것입니다. 5월 21일 오후 5시에 계엄군을 코너로 몰아붙여 시 외곽으로 도망가게 할 때까지 벌인 눈부신 북한군의 특공작전은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자랑거리임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멀리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인질로 납치돼 있는 100여명의 이스라엘 국민을 구출해오기 위해 수송기 4대를 보내 특수군사작전을 감행하였습니다. 그 어느 세계의 군사전문가들도 이런 작전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엔테베 작전은 세계 군사작전에서 하나의 기적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 600명이 주도한 광주작전은 이보다 더 화려하고 더 기적적인 특공작전일 것입니다.

삼엄한 계엄상태에서 계엄군을 바로 앞에 두고, 6개월 동안 침투시킨 600명 단위의 특수군으로 하여금 남한 땅 광주에서 광주의 "쓸모 있는 바보" 들을 소모품으로 동원하여 계엄군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갔던 그 전술은 이스라엘의 구출작전보다 더 어렵고 고난도이며 가장 화려한 특공전으로 기록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북한특수군 출신으로 광주작전에 참가했던 사람이 2006년에 탈북하여 현재 서울 근교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작년 5월, 방송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광주사람들은 이 사람과 이 사람의 참전기를 책으로 엮어내고 방송에 출연했던 또 다른 탈북자를 고소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 검찰들이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를 기소하지 않습니다. 탈북자 당사자들은 빨리 기소해서 법원에서 진실을 가리자 주장하는 반면 검찰은 사건이 이미 종결되었다며 조사조차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희귀한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가 분명히 북한 특수군으로 광주에 참전해서 적어도 3명의 계엄군을 총으로 쏘아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하는데 어째서 대한민국 검찰은 이런 사람을 처벌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어서 2013년 5월, 그동안 보관만 해오던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이 전 월간조선 편집장에 의해 방송되고 출판되었습니다. "5.18은 북한의 공명주의자들이 배후 조종하여 일으킨 폭동인데 북한이 이를 남한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광주사태가 끝난 이후 통전부 간부들이 일제히 훈장을 받고 술파티를 했다."

그 다음에는 황석영 명의로 발간돼 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라는 책이 바로 북한 노동당이 발간한 대남공작 역사책 2권을 섞어서 베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북한 작가가 써서 남한 반역자들에 넘겨진 것입니다. 이 책의 재료들은 김상집-소준섭-이재의-황석영 순으로 옮겨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한국의 386대학생들, 그리고 운동권 인물들, 교수들, 판검사, 변호사들 모두가 황석영 이름으로 발간된 "넘어 넘어(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라는 책을 5.18의 바이블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거역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1996-97년 판결은 모두 이 황석영 책의 논리대로 그리고 이를 추종하는 조갑제 기자의 책에 따라 내려졌습니다. "5.18은 반공민주화운동이고, 이는 전국적으로 확산됐었어야 했는데 전두환 등 신군부가 이를 조기에 진압한 것은 내란"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갑제는 당시에 대한민국의 모든 휴전선은 철통 같이 경비되었고, 대한민국의 모든 해안선은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발자국만 나도 우리 군이 즉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밀봉되어 있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해안은 잘해야 5% 정도만 모래사장이고 나머지는 돌과 흙과 콘크리트입니다. 당시 장님 문고리 잡는 식으로 1980년 3월부터 5.18 직전까지 2개월여에 붙잡힌 간첩단은 공식 기록만 해도 7개나 되었습니다.

북한 탈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남한은 북한 통전부의 안방이라고. 역대 국정원 대공요원들은 말합니다. 그동안 간첩을 잡은 것은 순전히 통신감청과 기존 간첩들의 제보에 의한 것이었다고. 해안경비는 전혀 믿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에는 저도 찬성합니다. 저는 1986년 대한민국의 전 해안을 돌아다니며 해안감사 시스템과 실정을 파악한 바 있습니다. "해안이 비었다", "공중이 비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가 국방장관으로부터 미움을 사 스스로 예편하였고 곧장 미 해군대학원 교수와 미국방성에 가서 취직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5.18 기념사업회가 한국 사회와 유네스코에 내놓은 자료들을 보았습니다. 5.18 단체들이 유네스코에 자료를 내놓은 것을 이제 보니 국가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했습니다. 일단 유엔에 내 놓으면 문서조작과 가필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자료들은 저로 하여금 5.18이 무엇인지에 대해 마지막 결론을 얻게 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5.18의 주역이고, 군법회의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5월 18일부터 5월 21일까지 시위를 조직했거나 참가한 사람이 일체 없습니다. 5.18의 주역으로 중형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계엄군이 포기한 전남도청에 5월 22일 이후에 들어온 호기심 많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주역들은 도청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시위대를 조직한 적이 없습니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광주에 대학생 시위대, 노동자 시위대 같은 존재는 전혀 없었습니다.

민주화 판사들이 1096-97년 판결문에 명시한 "광주시위대는 헌법을 지키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 광주인들 중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대학생들로 위장해서 결집한 600명의 북한특수군이 광주시위대의 전부였습니다. 결론적으로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인들이 기획-지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 광주 영웅들의 증언집은 북한특수군이 내려와 국가전복 작전을 하는 사실을 모르고 거기에 부화뇌동했다는 고백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이들의 증언대로 지각 있는 시민들이나 대학생들은 모두 꼭꼭 숨었고, 지각없는 막노동꾼, 무직자, 중고생들이 북한특수군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5월 21일 저녁, 계엄군이 사라지자 5월 22일부터 600명도 잠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북한군이 자취를 감추니 광주에는 시위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광주에는 광주인들로 구성된 시위대가 5월 18일부터 21일까지도 없었고, 계엄군과 600명이 다 사라진 22일부터 광주 재진입작전이 끝난 27일까지에도 없었습니다. 공산군의 작전은 정규전이든 비정규전이든 언제나 "쓸모 있는 바보" 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입니다. 광주에서 부나비 역할을 한 무산계급들이 바로 공산당 투쟁이론에 들어 있는 "쓸모 있는 바보" 들이었던 것입니다.

1980년 5월 17일부터 대한민국이 모두 얼어붙었습니다. 운동권 인물들은 모두 잡혀갔거나 꼭꼭 숨었습니다. 대학생, 말 많은 지식인, 말 많은 교수는 알아서 숨었습니다. 광주가 대한민국의 모든 지역보다 앞섰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두가 얼어붙었는데 광주만 용감했을 리 없습니다.

광주에는 민주화운동을 기획하고 지휘할 수 있는 인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민주화입니까? 광주민주화운동은 아예 기획되지도 않았고, 지휘되지도 않았습니다. 부나비들에 조직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300명이 매복해 있다가 극비리에 이동하는 20사단 사령부를 기습하여 사단장 차를 포함한 지휘차량 14대를 빼앗아 가지고, 방위산업 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가서 "20사단 사단장 차를 보아라"  하면서 순종하도록 만들 생각을 했으며, 또 다른 300명이 버스를 타고 달려와 4대의 장갑차를 몰고 나갈 수 있는 것이며, 17개 시군에 숨어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2개 연대를 무장할 수 있는 무기를 탈취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600명이 광주시위대 입니까?

5.18은 순전히 북한특수군이 와서 군과 광주시민을 이간시켜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게 하려는 최고수준의 특공작전이었습니다. 검찰의 최종보고서에 나타난 그 600명의 존재와 활동은 북한 책 "광주의 분노"에도 기술돼 있습니다.

계엄군이 도망가자 광주유지들이 도청에 모여 그 화려한 학생들을 찾았지만 그런 학생은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무기가 반납되자 이들 600명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력시위를 하면서 자기들을 믿고 다시 싸우자 선동하고 다녔습니다. 한마디로 5.18에 민주화운동은 없었습니다. 5.18은 순전히 북한특수군 600명이 벌인 이간용 특수작전이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거기에 가담했거나 앞장선 사람들은 지각없는 사회불만 세력과 중고생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소위 '진보' 라는 간판을 내건 사람들이 이런 부나비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지각없는 사람들을 "쓸모 있는 바보"(소모품)라고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난 12년 동안 줄기차게 연구한 연구결과를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신 국민들은 이 책을 읽지 않은 주위 분들을 계몽하실 책임이 있으신 분들입니다.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역사의 진실을 중요시 하신다면 이런 분들이야 말로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하늘의 명령을 받으신 분들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진영논리'에 함몰된 사람이 아닙니다. 좌익이 한 행동은 무조건 나쁘고, 우익이 한 행동이면 무조건 잘했다는 식의 자세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5.18에 대한 재판은 최규하 정권에서도 했고, 김영삼 정권에서도 2중으로 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두 개의 재판 모두가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1981년 4월 1일의 대법원과 1997년 4월 17일의 대법원은 다 같이 광주에 광주인들이 독자적으로 구성한 시위대가 없었음에도 이를 있었다고 잘못 판결하였습니다.

1981년의 대법원은 이 광주시위대를 내란 음모와 연관된 폭동이라고 단죄한 반면, 1997년의 대법원은 유령의 광주 시위대를 놓고 헌법 수호를 위해 결집한 준헌법기관이라 판결하였습니다. 전자는 엉터리 판결이었고, 후자는 빨갱이 판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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