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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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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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이 진희를 만난 것은 숙명적이었다.

태진은 작년 초겨울로 접어들 무렵, 작품 취재를 위해 강릉에 간 일이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저녁에 바닷가 횟집에 들러 우럭회에 소주 몇 잔을 걸치고 고속버스를 탔다. 차를 타기 전부터 배가 슬슬 아픈 것 같더니 급기야 탈이 나고 말았다. 뱃속에 개구리가 수십 마리는 든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설사가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차멀미와 함께 구토 증상이 일며 이마에 식은땀도 흘렀다.

“저어, 기사님. 잠깐만 차를 세워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태진은 기사에게 다가가 미안함과 지금 아주 급하다는 표정을 함께 지었다.

“곤란한데요.”

운전기사는 곁눈질로 태진을 흘끔 보며 말했다.

“너무 급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요.”
“이 차는 시골 버스가 아니고 고속버습니다. 아무 데나 설 수가 없다고요.”

운전기사는 개구리 뱃가죽처럼 유들유들한 표정을 지으며 느물거렸다. 태진은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차에 반쯤 탄 승객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띨띨한 녀석이라고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설삽니다. 잠깐만…….”

태진은 애원하다시피 했다.

“거 참, 젊은 양반이 미리미리 손을 쓰지 않고는.”

운전기사는 투덜대며 차를 도로 한 쪽에 세웠다. 태진은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황급히 길가 언덕 아래로 뛰어가며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까기가 급하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배설물이 한동안 쏟아졌다. 한결 살 것 같았다. 차로 돌아오니 운전기사는 차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태진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차가 정지하는 바람에 선잠을 깬 승객들이 잠시 시선을 주고는 다시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청했다. 차는 출발했다. 저녁에 먹은 우럭회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차 시간에 쫓겨 급하게 먹고, 우럭회가 나오기 전 밑반찬으로 나온 소라를 먹을 때 꺼림직하더니 그것이 원인인 것도 같았다.

그렇게 십 분쯤 갔을까. 이번에도 아까와 똑같은 증상이 일어났다. 온몸을 비비 꼬고, 항문의 괄약근에 최대한 힘을 모으며 참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 기사님.”
“또 뭐요?”
“…… 한 번만 더.”
“이 양반이 지금 장난하나?”

운전기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흘낏 보았다. 태진은 얼굴에 나타낼 수 있는 가장 곤란한 표정과 애원하는 눈빛을 지었다. 운전기사 뒷좌석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지금은 체면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 초가 급했다. 운전기사는 투덜대면서도 태진의 급한 상황을 눈치챘는지 도로 가장자리에 바짝 붙여 차를 세웠다. 태진은 번개처럼 뛰어내렸다.

“이제 시원하게 일 다 봤수?”

차 문으로 들어서는 태진을 보며 운전기사가 큰 소리로 물었다. 두 번이나 차가 멈추었기에, 그를 보는 승객들의 표정이 곱지만은 않았다. 태진은 잠을 청하려 애를 썼다. 잠이 들면 고통스러움을 잊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차창 밖은 이제 어둠이 내리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불빛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억지로 청한 잠은 오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복통과 현기증과 메슥거림은 더해만 갔다. 그것은 지독한 고문이었다. 태진은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앙다물고 참아냈다.

고속버스는 붕어의 창자처럼 구불구불한 대관령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들도 이 길을 내려갈 때는 기압 차이와 차의 흔들림 때문에 귀가 멍멍해지고 멀미를 하는 구간이었다. 태진은 차에 비치된 비닐 봉지에 얼굴을 묻고, 저녁에 먹은 모든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오물이 코에 들어갔는지 재채기도 함께 나왔다. 한참을 웩웩거리자 더 이상 토할 것도 없는지 신물이 넘어왔다. 속옷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고, 정말이지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터져나오려는 설사를 괄약근으로 최대한 막고 있던 그는 순간의 방심으로 팬티에 물똥을 조금 지리고 말았다. 이제 체면이고 뭐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토사물을 담은 비닐 봉지를 들고 비틀거리며 좌석 사이를 비집고 운전기사에게 갔다.

“또요? 도대체 몇 번쨉니까? 이 버스가 당신 혼자 전세낸 것도 아니고, 손님들 입장도 생각해줘야죠. 그리고 보다시피 이 내리막길에서 어떻게 차를 세웁니까? 서울까지 참아봐요.”

이제 차 안의 승객들은 태진과 운전기사의 실랑이에 짜증을 넘어서서 실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부탁합니다. 제발…….”
“아, 그렇게 급하면 맨 뒤좌석에 가서 비닐 봉지에 대고 싸요, 싸!”

운전기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차 안에 폭소가 터졌다. 이제 잠을 자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태진은 그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으로 비쳐질까를 생각하자, 모닥불에 얼굴을 묻은 것처럼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병원이라도 가까이에 있다면 그냥 내릴 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이제 아랫배는 수십 개의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고, 차 천장이 빙그르르 뒤집어지는 어지럼증도 동반했다. 몸이 소금에 푹 절인 파김치처럼 자꾸만 늘어졌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요. 제발…….”

태진은 입술을 앙다물어 가며 애원했다.

“기사 양반, 죽은 사람 소원도 풀어준다는데 한번 봐주시
구랴.”

출입문 쪽에 앉은 중년 사내가 거들었다.

“허, 나참. 차 안에 화장실을 만들든지 해야지, 신경 쓰여 운전을 할 수가 없구만.”

차가 멈추었다.

태진은 정신 없이 고속도로 아래로 뛰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넘어질 때 무릎이 까졌는지 몹시 아팠지만, 그런 걸 따질 경황이 아니었다. 바지를 내리고 아래로는 쏟으며, 위로는 헛구역질과 함께 계속해서 신물을 뱉어냈다. 온몸에 진땀이 났다. 이제 걸을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기다시피해서 겨우 차까지 갔다. 운전기사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차에 오르는 태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않고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차가 다시 출발했다.

자리에 구겨진 걸레처럼 앉은 태진은 정신이 혼미했다. 마치 마리화나를 처음 피던 때 같았다. 한시 바삐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주말이라서 그런지 차는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오한이 일며, 땀이 국수 기계에서 삐질삐질 흘러나오는 국수가락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차 천장이 빙그르르 뒤집히는 형상을 보며, 거미줄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가느다란 의식마저 깜빡 잃고 앞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여보세요! 정신 차려요!”

누군가 어깨를 억세게 흔들었다. 하지만 태진은 고개를 들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재차 어깨를 마구 흔드는 바람에 낚시줄의 납봉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밀어올렸다. 눈앞이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흐렸다.

“운전기사, 차를 세워요. 사람이 죽어가요!”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차가 서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태진이 간신히 눈을 뜨고 보니,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몇 겹으로 겹쳐 보였다. 또다시 의식이 가물가물 멀어져갔다.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태진은 끝내 가까스로로 잡고 있던 거미줄 같은 가느다란 의식의 끈마저 놓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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