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역사 연구의 종착역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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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역사 연구의 종착역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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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작전을 기획-연출-기록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 5.18 광주에 북한특수군으로 참전했던 탈북자(가명 김명국)가 2013년 5월 15일 채널A 탕탕평평 프로에 출연하여 자신이 바로 5.18 광주작전에 직접 참가했던 당사자라고 밝혔다. 그의 참전기를 저술한 이주성 대표 역시 그와 함께 출연하여 김명국의 광주참전 일지를 소상하게 대변했다. ⓒ뉴스타운
5.18에 대한 제 연구는 이제 햇수로 12년에 이릅니다. 더러의 분들은 제 글을 대하자마자 "아 또 그 얘기이겠지" 하시며 지나치시던지 아니면 대충 넘어가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글이라 해도 저는 예전의 글을 긁어 옮기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그게 창작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5.18 역사를 정리하는 것은 제 일생의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는 5.18이 역사 왜곡 및 날조의 상징이며, 대한민국을 적으로 생각하는 이 땅의 반역자들이 국가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충신이 역적으로 몰리고, 역적이 충신으로 등극하여 온갖 명예와 신분적 대우와 금전적 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기막힌 현실입니다.

저는 5.18 수사기록 18만 쪽을 읽었습니다. 이 나라에 알려진 5.18에 대한 상식은 모두 거꾸로 날조된 거짓들임을 알 수 있었고, 이를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 이라는 책을 통해 밝혔습니다.

그 다음은 북한이 발간한 자료들, 북한이 만든 5.18영화, 탈북자들이 쓴 진솔한 5.18수기, 통일부 자료, 일본 자료 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검찰보고서에 나타난 상황일지, 안기부 상황일지들과 대조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5.18에 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와서 광주작전을 기획-연출-기록 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광주에서 북한특수군이 주도했던 작전에는 북한의 기막힌 전략과 전술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책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는 미국과 한국을 모략하는 내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김일성이 직접 황석영을 불러 시나리오를 쓰게 했고, 윤이상을 불러 영화음악을 작곡시켰고, 그 주제곡이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 이라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북한에서는 오직 김일성만 "님"의 호칭을 소유하고 있으며, 영화 제목의 "님"이나 주제곡에서의 "님"은 바로 김일성에게 바치는 영화요 김일성에게 바치는 행진곡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북한의 최고인 것들에 "5.18" 이라는 호칭을 명예로 수여한다는 사실을 수많은 탈북자들이 증언록에서 증언하였습니다. 5.18 글자가 붙어 있는 1만톤 짜리 프레스에 "5.18청년호" 라는 글이 새겨진 사진도 입수돼 있고, "5.18 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이라는 글씨가 있는 철도역 사진도 입수하였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북한에서는 전지역에 걸쳐 여러 날 동안 5.18을 기념하고 추념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다는 사실을 탈북자들의 증언과 통일부 주간정세보고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이 발행한 대남공작 역사책들에는 5.18이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상 최고수준의 작품이라고 자랑되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5월 18일이면, 당시 대한민국 대학생들 전체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던 무서운 날이었습니다. 바로 그 5월 18일 아침에 이들은 어디라고 감히 250명 단위로 대학생 신분으로 위장해가지고, '계엄군'에 다가가 말싸움을 걸고, 돌멩이 공격을 할 수 있는 배포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세계수준의 싸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남들은 경찰에 걸려들까 숨죽이고 있는 판에 감히 계엄군이 곧 출동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수십 개 파출소를 불태워 사회불만세력의 잔치를 유도해내고, 구경꾼들을 대거 유인하는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을 것입니다. 21일 오후 5시에 계엄군을 코너로 몰아붙여 시 외곽으로 도망가게 할 때까지 벌인 눈부신 특공작전은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자랑거리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적지에 갇혀있는 우군을 비행기로 구출해오는 작전이 세계 전사에 기록되듯이, 북한이 삼엄한 계엄상태에서 계엄군을 앞에 두고, 미리미리 남한에 준비했던 600명 단위의 특수군으로 하여금 남한 땅 광주에서 광주의 "쓸모 있는 바보"들을 앞세워 계엄군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갔던 그 전술은 이스라엘의 구출작전보다 더 어렵고 고난도이며 가장 화려한 특공전으로 기록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북한특수군 출신으로 광주작전에 참가했던 사람이 2006년에 탈북하여 현재 서울 근교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작년 5월, 방송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이어서 그동안 보관만 해오던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이 월간조선 편집장에 의해 방송되고 출판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황석영 명의로 발간돼 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라는 책이 바로 북한 노동당이 발간한 대남공작 역사책 2권을 섞어서 베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북한 작가가 써서 남한 반역자들에 넘겨진 것입니다. 이 책의 재료들은 김상집-소준섭-이재의-황석영 순으로 옮겨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5.18 기념사업회가 한국 사회와 유네스코에 내놓은 자료들을 보았습니다. 5.18 단체들이 유네스코에 자료를 내놓은 것은 이제 보니 국가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했습니다. 일단 유엔에 내 놓으면 조작과 가필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자료들은 저로 하여금 5.18이 무엇인지 확실한 답을 얻게 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5.18의 주역이고, 군법회의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5월 18일부터 5월 21일까지 시위를 조직했거나 참가한 사람이 일체 없습니다. 5.18의 주역으로 중형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계엄군이 포기한 전남도청에 5월 22일 이후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증언들에 의하면 그 주역들은 도청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시위대를 조직한 적이 없습니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광주에 대학생 시위대, 노동자 시위대 같은 존재는 전혀 없었습니다.

민주화 판사들이 판결문에 명시한 "광주시위대는 헌법을 지키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 광주인들 중에는 없었습니다. 학생들로 위장해서 결집한 600명의 북한특수군이 광주시위대의 전부입니다. 결론적으로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인들이 기획-지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증언집은 북한특수군이 내려와 국가전복 작전을 하는 사실을 모르고 거기에 부화뇌동했다는 고백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이들의 증언대로 지각있는 시민들이나 대학생들은 모두 꼭꼭 숨었고, 지각없는 막노동꾼, 무직자, 중고생들이 북한특수군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5월 21일 저녁, 계엄군이 사라지자 5월 22일부터 600명도 잠시 지취를 감추었습니다. 북한군이 자취를 감추니 광주에는 시위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광주에는 광주인들로 구성된 시위대가 5월 18일부터 21일까지도 없었고, 계엄군과 600명이 다 사라진 22일부터 광주 재진입작전이 끝난 27일까지에도 없었습니다. 공산군의 작전은 정규전이든 비정규전이든 언제나 "쓸모 있는 바보"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5.18에는 광주시위대가 일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5.18 기념재단 증언자들의 말 그대로 지각없는 중고생들이 유언비어에 속아 의협심에서 앞장섰고, 평소에 사회로부터 학대 받으면서 세상 뒤집히기를 간절히 바라던 양아치 등 사회불만세력들이 공수부대원들에 적개심을 가지고 앞장서서 부나비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1980년 5월 17일부터 대한민국이 모두 얼어붙었습니다. 전국이 모두 다 얼어붙었습니다. 운동권 인물들은 모두 잡혀갔거나 꼭꼭 숨었습니다. 대학생, 말 많은 지식인, 말 많은 교수는 알아서 숨었습니다. 광주가 대한민국의 모든 지역보다 앞섰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두가 얼어붙었는데 광주만 용감했을 리 없습니다.

광주 운동권의 최고영웅 윤한봉은 그의 증언집에서 밝히기를 5월 17일 이전에 경찰에 잡힐까 겁을 먹고 대전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전남지역으로 은신 했다가 서울 빈민촌으로 가서 숨었다가 미국으로 밀항하였습니다. 이런 판에 어느 대학생들이 250명 단위로 뭉쳐 감히 계엄군으로 다가가 돌멩이질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증언록들에 의하면 광주에는 이런 대학생이 250명이나 되기는커녕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5월 18일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첫날입니다. 그날의 첫 싸움은 전남대 앞에서의 싸움이었습니다. 전남대 정문 앞에 일렬로 서 있는 20명의 공수대원들에 250여명의 "광주 학생"들이 책가방에 숨겨온 돌멩이로 공격하여 부상을 입히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얼마 전까지 검찰의 최종보고서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 학생 그룹이 250여 명이었겠거니 하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최근 5.18 핵심영웅들의 증언록들을 읽으니 5월 18일, 광주의 모든 운동권은 도망갔거나 체포됐고, 학생들은 비겁하게도 모두 숨었고, 유지와 교수들은 더 민감하게 처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광주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광주인들이 더 치사하고 비겁했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당시의 대학생들을 비난하고 교수와 지식인들을 비겁하다고 비난합니다.

5.18 핵심세력은 저들의 주장 그대로 노동자 기층세력입니다, 이들은 북한특수군의 매력에 도취되어 그들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5.18 옹호세력에 물어보십시오. 5.18의 주도-핵심 세력이 누구였느냐고. 100%의 사람들이 답할 것입니다. 5.18의 핵심-주도세력은 기층민중이라고! 기층민중에게 기획능력이 있고, 조직능력이 있고, 지휘능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냥 개별적인 부나비들이었습니다. 부나비들이 조직하는 것 보신 분 없으실 것입니다.

광주에는 민주화운동을 기획하고 지휘할 수 있는 인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민주화입니까? 광주민주화운동은 아예 기획되지도 않았고, 지휘되지도 않았습니다. 부나비들에 조직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300명이 매복해 있다가 극비리에 이동하는 20사단 사령부를 기습하여 사단장 차를 포함한 지휘차량 14대를 빼앗아 가지고, 방위산업 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가서 "20사단 사단장 차를 보아라" 하면서 순종하도록 만들 생각을 했으며, 또 다른 300명이 버스를 타고 달려와 4대의 장갑차를 몰고 나갈 수 있는 것이며, 17개 시군에 숨어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2개 연대를 무장할 수 있는 무기를 탈취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600명이 광주시위대 입니까?

결 론

5.18은 순전히 북한특수군이 와서 군과 광주시민을 이간시켜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게 하려는 최고수준의 특공작전이었습니다. 검찰의 최종보고서애 나타난 그 600명의 존재와 활동은 북한책 "광주의 분노"에도 기술돼 있습니다.

5월 18일 광주사람들은 겁을 먹고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경찰에 오해를 받을까 몸들을 사렸습니다. 그런 5월 18일에 감히 나서서 계엄군에 돌을 던지고 수십 개 파출소를 불 태워, 사람들을 모은 사람들이 광주사람들일 수는 없습니다. 광주대학생들은 사태 10일 내내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5월 18일부터 10일 동안 내내 광주에는 민주화시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차량에 현수막을 달고 다닌 것은 북한특수군의 작전 아이템이었습니다.

계엄군이 도망가자 광주유지들이 도청에 모여 그 화려한 학생들을 찾았지만 그런 학생은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무기가 반납되자 이들 600명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력시위를 하면서 다시 싸우자고 선동하고 다녔습니다. 그 사진들이 많이 확보돼 있어서 기록영화에 반영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5.18에 민주화운동은 없었습니다. 5.18은 순전히 북한특수군 600명이 벌인 이간용 특수작전이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거기에 가담했거나 앞장선 사람들은 지각없는 사회불만세력과 중고생들입니다. 이들은 공산당이 말하는 "쓸모 있는 바보"로 이용당한 소모품들이었습니다. 이런 소모품들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소위 '진보' 라는 간판을 내건 사람들이 이런 부나비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지각없는 사람들을 "쓸모 있는 바보"라고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소모품들인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과 기쁨의 파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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