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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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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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은 기침을 쏟았다.

한번 터진 기침은 그칠 줄을 몰랐다. 당장에라도 숨통이 달라붙는 것만 같았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목구멍으로 피가 솟구칠 것만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몸이 극도로 허약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마리화나를 반도 태우지 않고 이런 증상이 온 것은 처음이었다. 도저히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 거실 바닥에서, 혓바닥을 길게 빼물고 한여름 개처럼 헐떡이며 기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침이 잦아들며 몸이 허공에 붕 뜨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온몸의 감각 세포들이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귀가 열려, 평소에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미세한 소리, 개미가 걸어다니는 소리까지도 들리는 듯했다. 환청이었다. 마리화나의 기운이 몸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실 바닥에 그대로 누워 꿈결 같은 시간을, 맛있는 과자를 조금씩 아껴 먹는 꼬맹이처럼 야금야금 즐겼다. 베란다의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서 들어온 따뜻한 햇볕이 부드러운 혀로 몸의 구석구석을 핥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평온을 되찾자 잠이 슬슬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런 평온한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만 있다면…….’

태진은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몰랐다.

난방이 잘 된 방에 누워 꼼짝도 않고 있었다. 이틀쯤 지났을까. 이중으로 드리워진 커튼 때문에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었다. 꼼지락거리는 것조차 싫어 밥도 챙겨 먹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에는, 껍질을 깎는 것은 고사하고 씻는 것도 귀찮아 몇 번 물어뜯다 만 사과와 반쯤 먹다가 던져놓은 바나나 한 개가 부패하기 시작한 시체처럼 시커멓게 변해 나뒹굴고 있었다.

심한 갈증이 엄습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다 현기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한참 정신을 가다듬은 후, 냉장고 문을 열고 바이오 물통에 담긴 차가운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소파에 나뒹구는 리모컨으로 오디오의 파워 스위치를 눌렀다. 바흐의 ‘푸가의 비법’이 방 안 가득 흘러넘쳤다. 음악 소리에,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깊이 잠들어 있던 방 안의 사물들이 하나 둘 부스스 일어나 눈을 비비며 선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커튼을 걷었다.

밝은 달빛이 일시에 수천, 수만 개의 화살이 되어 고슴도치의 바늘처럼 온몸에 꽂혔다. 시계를 보았다. 9시를 지나고 있었다. 흐릿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고개를 몇 번 세차게 흔들었다.

이러한 긴 휴식 끝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진희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외출에서 돌아와 샤워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올 거야, 안 올 거야?”

태진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난 어디 여행이라도 간 줄 았았네. 알았어요, 곧 갈게요.”

코트에서 통통 튀는 테니스공처럼 생기찬 진희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태진은 마리화나에 절어 있다가 깨어날 때면, 두개골 속의 뇌가 텅 빈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입 안도 마른 스펀지를 한 입 가득 물고 있는 것처럼 퍽퍽하고 까실거렸고, 피부도 수많은 벌레들이 달라붙어 스믈스믈 기어다니는 것처럼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옷을 벗고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욕조에 물을 받았다. 그리고 칫솔에 치약을 듬뿍 묻혀 세차게 입 안의 스펀지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욕지기가 치밀어오르고 몇 번의 구토 증상이 일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욕조에 넘치도록 받은 물에 몸을 담그고, 벽 한 쪽에 걸려 있는 소영의 사진을 보았다. 수영복을 입은, 한창 물 오른 제비처럼 육감적인 몸매가 눈에 아리도록 다가왔다. 불현듯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욕정이 끓어올랐다. 지금이라도 전화를 하면 그녀는 한걸음에 달려올 것이다. 그러나 태진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향한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이틀에 걸친 휴식과 목욕이 몸을 어느 정도 가뿐하게 했다. 가끔씩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누워서 머리를 진공 상태로 만들고, 최대한 육체의 움직임을 억제한 채 죽은 듯이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방송 원고를 쓰느라 시간에 쫓기고, 담배 연기에 찌들리며, 컴퓨터 자판과 피 말리는 싸움을 하는 일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안에 있어요?”

진희의 목소리였다.

“곧 나가.”

태진은 욕조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물기를 대충 닦고, 머리를 털면서 나갔다.

“자요, 독약.”

진희는 미소를 머금고, 불을 붙인 두 개비의 담배 중에서 한 개비를 태진의 입에 물려주었다. 필터에 보라색 립스틱이 묻어 있었다. 길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진희는 걸치고 있던 외투를 벗어 소파 등받이에 얹었다. 두 사람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침묵했다.

진희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물었다.

“이번엔 며칠을 잠수했어요?”
“이틀.”

태진은 삐쩍 마른 식빵 부스러기처럼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그녀가 말한 ‘잠수’라는 표현이 아주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잠수가 짧았네요. 한 모금 할래요?”

진희는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며 물었다.

태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캔 맥주를 단숨에 쭉 비웠다. 몹시 갈증난 사람처럼. 맥주를 마신 때문일까, 그녀의 뺨이 홍조를 띠었다.

“보기 좋은데.”

태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희는 태진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식적으로 높은 벽처럼 방어막을 치곤 했다. 때론 유별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누군가와 가깝게 지내는 것이 싫었다. 친해질수록 상대방에게 그만큼 신경을 써주어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쓸데없는 만남으로 뺏기는 시간들이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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