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환경이 이랬으니 측근 참모라고 해봤자 아칸소 주지사 시절 같이 어울렸던 동료들이 거의 전부였다. 후일 클린턴이 당선되자 측근들은 워싱턴 중앙정가로 대거 진입했다. 이들을 아칸소 사단이라고 명명하기 시작했다. 당시 백악관 멤버였던 해리 토머슨 보좌관, 버너드 너스바움 고문, 토머스 맥라티 비서실장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물론 부시 대통령의 후보 시절에도 부시를 도운 측근들을 텍사스 사단이라고 불렀다. 부시가 당선되자 이 멤버들은 권력의 중심부로 대거 진입했다. 칼 로브, 알베르트 곤잘레스, 캐런 휴즈 등 상당히 많았다.
이런 현상은 아득한 옛날 시절에도 있었다. 한고조 유방이 성공을 거두게 된 배경에도 고향이었던 패현성 풍읍에서 같이 건달생활을 하면서 친교를 맺었던 소하, 노관, 번쾌, 하후영 등이 유방의 사단인맥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시절에도 이런 현상은 어김없이 발생했다. 당시에는 이념으로 뭉친 사단의 구성요원들이 권력의 요로를 점령했다. 보수세력은 변방으로 밀려났거나 현직에서 물러났다. 이들이 물러난 빈 자리에는 노무현과 이념적 사단멤버들이 그들이 비운 자리를 대신했다.
이명박 정권 때도 서울시청 출신들의 멤버로 구성된 이명박 사단이 있었다. 이 사단의 멤버들도 이병박의 성공을 위해 요직에 들어갔다. 이 당시,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 같은 이는 노골적이고 공개적으로 노무현 사람의 인적 청산을 천명하기도 했다. 노 정권의 사람들은 임기를 지키려는 이유에서, 또는 이념의 전선을 지키겠다는 이유에서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광경이 곳곳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이처럼 핵심 사단 인맥은 정권의 버팀목이 되기 때문에 일정부분 묵인해 주는 것이 정치권의 관행이기도 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측은 많은 것을 획득하고 패배한 측은 전부를 잃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에서 51.6%의 특표율을 획득했다. 과반수를 넘겼으니 정통성에다 정당성까지 덤으로 얻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공신들로 구성된 사단멤버를 구성하지 않았다. 정권 탄생과는 거리가 먼 관료나 법조인들이 권력의 핵심부 곳곳으로 진입했다.
생사고락을 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혼신의 힘으로 정권을 성공시켜 달라는 주문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성공한 정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선거 때 획득했던 지지율은 철저하게 지키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에 '플러스 알파'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이렇게 되어야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지지세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플러스 알파'란 소위 중도 층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중도 층은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지지층이다. 이 계층은 아차하면 저리 갔다 여차하면 이리로 돌아오는 갈대와도 같다. 상황의 전개와 사건의 발전에 따라 오늘은 우측에 붙었다 내일은 좌측에 붙기를 밥 먹듯 하는 층을 말한다. 좋게 말하면 이념의 종속변수를 거부하는 세력이고 더 좋게 말하면 매우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소유하고 있는 계층을 말한다. 유식한 사람들은 이들을 오니피언 리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른바 40대의 화이트 칼라 층이 이런 계층에 속할 것이다.
최근의 여론조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대까지 추락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70%에 육박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지가 불과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 대라니 참으로 민심이 얄궂고 원망스러운 존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럴만한 원인이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고 보면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몇 가지 변수가 존재했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여파가 피로를 누적시키고도 남을 만큼 너무나도 오래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사이 두 사람의 유력한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는 사태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총리 낙마 사건도 세월호 사고로 일어난 파생 상품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세월호 사건만 없었다면 6.4 지방 선거는 여당이 압승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지만 세월호 사건은 많은 국면을 변경시켜 버렸다.
그런데다가 엎친데 덥친 격으로 우군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장 강력한 우군이 되어야 했던 새누리당으로 부터는 당의 미래 권력자를 뽑는데 정신이 빠져 전혀 병참 지원을 받지도 못했다. 야당의 비판보다 더 뼈가 저려오는 비판이 새누리당 중진들의 입으로 부터 거침없이 나왔다. 상황은 최악의 조건들로만 잘 구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정국이 매우 어수선할 때, 문창극의 강연내용은 정국의 핵으로 전면에 등장해 있었다. 이때만 해도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대 초 중반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에다 KBS가 불까지 질렀다. 청와대가 맞불을 놓고 정면대결로 갔었다면 더 이상의 지지율 추락은 어쩌면 막을 수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당과 좌파의 총공세에다 좌파언론까지 가세한 공중전까지 벌어지자 가장 강력한 우군이 되어야 할 새누리당은 새파란 초선까지 등장하여 트랜스포머로 변해갔다. 좌파의 공세에 맞받아치고 나와야 할 일부 당권주자들은 어느 사이 여론의 아첨꾼과 여론의 눈치꾼, 그리고 정치권의 기회주의자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지지자의 심정은 자괴감과 처연함,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결국 소용돌이의 정중앙에 있었던 문창극은 사퇴했다. 대통령의 원칙이 흔들렸는지 아니면 참모들이 판단을 흐리게끔 진언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문창극을 지켜내지 못하는 모습에서 가장 견고했던 지지층은 동요했고 이탈의 조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년간 스스로 칭하기를, 애국하는 심정으로 온갖 고난 속에서도 보수의 가치를 지지해 온 세력이었다고 자부하는 계층이었다. 이들이 분노했던 이유는 문창극의 지지여부를 떠나 좌파와의 이념대결에서 왜 원칙을 지켜내지 못하고 꼬리를 내렸느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문창극의 사건은 가장 강력하게 저변을 이루고 있었던 지지세력으로부터 등을 돌리거나 돌리려고 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었던 51.6%의 지지율에 포함되어 있었던 극강 지지세력으로 간주되는 이들 10% 내외의 고정 붙박이 지지세력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으니 지지율이 출렁거리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모름지기 정권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정권 곳곳에 충성심 강한 지지세력이 포진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획득했다면 당연히 보수의 가치를 견지하는 길로 가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어차피 30%대의 야권 지지세력은 천지개벽의 상황이 오지 않는 한 결코 현 정권에 지지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설픈 중도통합은 일시적으로는 모르지만 종장에 가서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성공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도덕성 높은 인적자원의 배치가 요구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심 없는 충신이나 공신을 배신하게끔 만들어 놓은 정권치고 성공한 정권은 없다. 정권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인적배치야 말로 최소한 실패만은 면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담보(擔保)가 될 것이라고 본다. 현 정권은 과연 그렇게 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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