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인간들과 인간성 상실'에 대한 슬픈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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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인간들과 인간성 상실'에 대한 슬픈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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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히너의 미완성 비극 <보이체크>을 보고

연극이 끝난 뒤에도 마음 속에는 여전히 '보이체크'의 잔영이 남아 있었습니다. 관람하는 내내 귓가를 스치듯 흘러 나오던 아코디언의 선율도 애잔하게 마음 속을 떠나니고 있었습니다. 또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던 무대도 눈 앞에 계속 어른거렸습니다. 그렇게 연극 <보이체크>는 필자의 내면 깊숙이 들어 앉아 있었습니다.

천재적 작가 뷔히너의 유작 <보이체크>

 
   
  ^^^▲ <보이체크> 포스터
ⓒ 예술의 전당^^^
 
 

<보이체크>는 불과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독일의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가 쓴 미완성 비극이다. 뷔히너는 19세기에 활동한 작가였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현대 연극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특히 <보이체크>와 더불어 <당통의 죽음>과 같은 그의 희곡은 냉철한 사실주의와 섬뜩한 비전, 허무주의와 부조리, 소외 등 많은 요소들을 갖고 있어, 현대 연극의 과제를 가장 먼저 다룬 극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보이체크>는 뷔히너의 미완성 작품으로 그의 사후인 1879년 오스트리아의 작가 프란초스(Karl Emil Franzos)에 의해 처음으로 해독되어 발간되었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희곡기법을 보여주어 표현주의적 드라마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 펴가 받는 동시에, 공연사상 처음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연극 뿐 아니라 무용,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로 공연되어 오고 있으며, 또한 연출가에 따라 그 해석도 다양해 공연 때마다 새로움을 안겨 주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소외된 인간'은 현대인의 군상

현재 예술의 전당 내 토월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보이체크>는 예술의 전당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획한 최초의 한·러 합작 연극이다. 러시아 차세대 연출가 그룹의 선봉에 서 있는 '유리 부드소프(Yuri Butusov)'와 그와 함께 많은 작품들을 해 오고 있는 안무가 '니콜라이 레우또프(Nicholai Reoviov), 무대 디자이너 '알렉산드레 쉬치킨(Alexandre Chichkine)'을 초청해 우리나라의 대표적 연극배우들인 박지일, 김호정, 남명렬, 윤주상, 장민호 등과 함께 만들어 낸 작품이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부드소프는, 계급간 갈등과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집중하는 (기존의) 일반적인 해석과는 조금 다르게 개개인의 캐릭터, 인간성 상실 문제에 중심을 많이 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극을 이끌어가는 해설자 역할의 '백치 칼(장현성 역)'은 본래 (원작에서는) 몇 마디 대사밖에 나오지 않는 역할이었지만, 부드소프는 이 인물에게 여러 역할을 맡겼다. 백치 칼은 해설자 뿐 아니라 마리의 아기, '보이체크(박지일 역)'의 내면을 표현하는 분신, 친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 보이체크를 사정없이 부려먹는 '대위(이대연 역)'는 "나쁜 놈"이라는 느낌보다는 "측은한 (조금은 불쌍해 보이는) 인간"이라는 느낌의 동정심을 자아내는 주정뱅이로 표현되고, 지식인의 허상을 상징하는 역할로서 엉터리 학설을 증명하기 위해 보이체크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의사(윤주상 역)' 또한 그렇게 밉게만 보이는 캐릭터은 아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작품의 번역을 담당한 단국대 함영준 교수는 "(연출을 맡은) 부드소프는 가해자조차 피해자와 다를 바 없는 소외된 인간이라는 시각을 강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불안한 무대 - 역동적 몸짓 - 정열적 탱고'의 삼위일체

 
   
  ^^^▲ 연극 <보이체크>의 무대철과 나무의 거침없는 노출과 경사진 무대는 관객들의 심리를 불안감으로 조성해 놓는다
ⓒ 예술의 전당^^^
 
 

나무와 철을 소재로 만들어진 무대는 불안해 보인다. 30도로 경사진 무대는 뒤틀림과 균열의 법칙을 보이고, 곳곳에는 비정형적으로 쇠가 박혀 있으며, 바닥은 불규칙적으로 구멍이 나있다. 실로 보는 것만으로도 위태롭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위험스러워 보이는 무대는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들이 발 딛고 서있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과 같은 이 무대 위를, 배우들은 쉴새 없이 뛰어다니고, 무대 뒤편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탱고 음악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춘다. 탱고의 정열적이고 극적인 느낌만큼이나 배우들의 몸짓도 역동적이다. 일반적인-보통의 평면적인-무대에서는 다소 눈에 거스릴 만큼이나 몸짓이 과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층적 구도로 확장된 이 역동적 무대와는 오히려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더욱이 강렬한 탱고 음악도 불안한 무대와 배우들의 역동적인 몸짓과 하나가 되어 극의 감정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百聞不如一見

관계자의 말에 의하며, 부드소프는 컵을 하나 갖다 놓고 배우들에게 "이 컵이 어린아이인 것처럼 생각하고 연기를 해 보라"는 요구를 하며 배우들을 (연극을 처음 배웠을 때와 같은) 초심의 상태가 되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연습실에도 공연장과 똑같은 경사 무대를 만들어 놓고, 배우들에게 "배역을 연기하려 하지 말고, 그 인물 자체가 되라"며 세차게 몰아치면서, 연기 도중에 배우들이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 연극 <보이체크>의 스탭과 배우들
ⓒ 예술의 전당^^^
 
 

이러한 혹독한 주문에 배우들은 익숙하지 않은 (몸짓으로서 표현해내는) 연기를 소화하느라 진땀을 흘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 영화 <나비>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김호정, 백상예술대상과 서울연극제, 서울공연예술제 등 수상경력이 화려한 박지일, 국립극단 지도위원인 원로 배우 장민호, 그리고 윤주상, 남명렬, 장현성 등 - 가히 '한국 최고의 배우들'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이들의 연기는 공연 내내 생생한 에너지가 살아 넘쳐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이 다는 아닐 것이다. 표현의 한계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을 것이란 얘기이다. 작품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해서, 필자 마음 속에서는 수많은 느낌들이 꿈들거리고 있지만, 막상 무언가 필자의 마음을 '쾅!' 하고 치는 그 느낌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분명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이다. 이는 나름대로 많은 연극을 보아 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강렬하고 재미있는 그리고 공연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작품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이 모든 얘기들은 "직접 느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말로 대신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부드소프가 기자회견을 통해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저는 연출자로서 연극 작품을 만들 때마다 항상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저의 대답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직접 보라'는 것입니다.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 연극 <보이체크>의 스탭과 배우들
ⓒ 예술의 전당^^^
 
 

<편집자주> 현재 소경수 기자의 섹션 'Indiean's Review'에 대한 그림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편집자의 통신보안'이라는 그림을 곧 'Indiean's Review'로 바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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