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령전 현판화령전 현판은 교체되지 않았고 교체할 계획도 없다고 한다. ⓒ 이진우 | ||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지난 25일 광화문 현판 교체계획과 관련,"정조대왕의 글을 집자하는 과정에서 어쩌다 언론에 보도된 것일 뿐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은 아니다"고 강조한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의혹의 눈길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한 문화재청 관계자는"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을 내리는 대신 정조의 글을 집자한 현판을 거는 일에 정치성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수원 화성의 화령전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화령전(華寧殿.정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건물)에 걸려 있던 운한각(雲漢閣), 풍화당 현판이 24일 수원시가 나서서 지난해 12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교체됐다. 운한각 현판은 원래 정조 아들인 순조가 7살때 쓴 글씨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언제인가 유실돼 1966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으로 새로 걸어 지금까지 사용해 왔다.
문화재청은 "현판을 바꾸는 데는 뚜렷한 기준이 없다. 광화문 현판의 교체는 2009년까지 계획되어 있는 경복궁 복원 정비 사업의 하나로 추진되어 왔고, 운한각 현판은 '재질(베니어)과 규격, 문양 등이 건물과 잘 어울리지 않아' 교체했다"고 말했다.
또, 수원시 화성사업소에서도 문화재위원회 심의와 문화재청 허가를 거쳐 조선 정조의 어진을 모셨던 화령전 안 운한각 현판이 낡아서 새로운 것으로 교체한것 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수원화성 화령전의 정문 앞 입구에 걸려있는 화령전 현판은 그대로 내버려둔채 정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운한각 현판과 제향이 있을 때 현관이 미리와서 머무는 건물인 풍화당 현판만을 교체한것이기에 이것도 모순이다.
왜냐하면 사진에서 보듯이 화령전 현판이 운한각 현판과 풍화당 현판 보다도 더 낡았기 때문이다.
▲ 운한각 현판기존의 박정희 전 대통령 필체 ⓒ 이진우 | ||
▲ 운한각 현판새로 제작된 현판 건물과의 구색도 맞지않고 바탕 페인트 칠한것이 너무 조잡하다. ⓒ 이진우 | ||
▲ 풍화당 현판기존의 풍화당 현판 ⓒ 이진우 | ||
▲ 새로 바뀐 풍화당 현판새로 바뀐 풍화당 현판으로 역시 바탕 페인트칠이 조잡하다. ⓒ 이진우 | ||
▲ 정문에 위치한 화령전 현판역시 교체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 이진우 | ||
▲ 정문에 위치한 화령전 현판역시 교체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 이진우 | ||
화령전은 23대임금 순조 조선제 23대왕(재위 1800~1834)이 아버지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본받기위해 순조 1년에 수원부의 행궁 옆에 건물을 짓고 화령전이라 칭한곳이다.
따라서 문화재 복원취지라면 현판도 서예가 정도준씨의 글씨로 하는것보다는 순조의 글씨체로 해야 당연 했을 것 이라고 본다.
지난해 부터 이곳 화령전을 관리했다는 관리원에게 왜 화령전 현판은 내버려두고 운한각과 풍화당의 현판만 교체했냐고 물었더니 "화령전 현판을 보며 박정희라고 안씌여 있군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 그리고 그는 이어 "지금의 교체된 운한각 현판은 2004년 12월에 제작된 현판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이러한 일들이 공교롭게도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일어날수 있는것인가?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개혁군주 정조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해 10월경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노 대통령과 창덕궁 후원을 거닐며 독대할 당시 정조가 세운 규장각을 안내하며 “정조는 개혁정치를 추진했고 소장 학자들을 양성했으며 수원 화성으로 수도를 이전하려 했다는 점에서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연초부터 ▲박정희 기념관 건립 무산 ▲친일진상규명법 제정 ▲한일협정문서와 육영수 여사 시해사건 문서 공개 ▲영화 <그때 그 사람들> 개봉 등 일련의 사건들이 정치적으로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정부당국은 정치적인 보복이 아닌 한점 부끄럼이 없이 역사적인 문화재 복원사업을 추진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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