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최룡해 '생사투(生死鬪)'도 머잖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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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최룡해 '생사투(生死鬪)'도 머잖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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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룡해 기용 차도살인(借刀殺人),양호우환(養虎憂患)자초

▲ 북한의 꼬마 김정은
2011년 12월 17일 희대의 살인폭압 독재자 김정일이 죽음으로서 후계자 수업도 제대로마치지 못한 20대 풋내기 김정은이 얼떨결에 최고지도자라는 감투와 지구상 최빈국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유일체제지도기반을 채 굳히기도 전에 김정은의 오늘이 있게 해준 고모부 장성택을 ‘반혁명적세도가’ 라는 죄목을 씌워 철직거세(撤職去勢)하는 패악을 저질렀다.

소위 ‘유일사상10대원칙’ 이라는 괴물이 살아 날뛰는 북괴체제의 생리나 독재 권력의 속성상 최고위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영향력을 잠식할 현실적 경쟁자나 잠재적 적대자로 돌아설 우려가 있는 제2인자의 존재나 역할을 용납할 수 없음은 자명한 노릇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정일의 유훈(遺訓)을 받들어야 할 고명대신(顧命大臣) 장성택은 김정은의 권위를 훼손할 경쟁자나 권력을 찬탈할 잠재적 적대자(敵對者)가 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70~80대 노회(老獪)한 군 원로와 당정관료를 다루기에는 경험이 일천하고 120만 대군과 2,400만 주민을 이끌고 나가기엔 역량이 딸리는 김정은으로서는 장성택을 원숙한 보좌와 냉철한 조언자로서 곁에 두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최고위’로서 권력 맛에 취한 김정은으로서는 자신에게 고분고분하기는커녕 어딘가 눈에 차지 않고 비위에 거슬리는 행태를 보여 온 장성택이 못마땅했을 것이며, 대외적으로도 장성택의 지도와 간섭을 받는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 자체가 싫었던 차에 장성택의 위세에 눌리고 독주를 질시하는 무리들의 모함을 모른 체 받아들여 고모부를 쳐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자신에게 잠재적 경쟁자나 적대자가 될 수 있는 인물은 장성택이 아니라 최룡해란 사실을 간과 한 것이다. 무자식으로 후사(後嗣) 조차 없는 장성택은 김정은이 믿고 의지할 후견인이자 울타리 겸 섭정(攝政) 이지만 무언가 부담스럽고 거추장 스러운 ‘집안어른’ 일지는 몰라도 김정은 독재권력에 도전할 적대분자가 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장성택은 우여곡절은 있었다 해도, 김경희와 눈이 맞아 일약 절대권력자 김일성 부마(駙馬)라는 로또 맞은 행운아로서 권세와 영화를 마음껏 누린 자로서 김정일이 죽기 전 유훈(遺訓)에 따라 김정은을 3대 세습권좌에 올려 놔준 고명대신(顧命大臣)으로서 단종(端宗)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首陽大君) 이라기보다는 나이 어린 조카 주(周) 성왕(成王)을 받들어 7년 섭정(攝政)으로 권좌를 튼튼하게 만들어 준 주공(周公)의 역할에 가까웠을 인물이었을 지도 모른다.

반면에 최룡해(崔龍海. 63세)은 김일성의 항일유격대 동지 최현(인민무력부장. 1982 사망)의 아들로서 당과 군과 함께 북괴 사회의 3대 축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사로청)’에서 잔뼈가 굵고 김정일이 88서울올림픽 맞불작전의 일환으로 1989년에 개최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준비위원장과 축구협회 태권협회 등 체육계는 물론 인민군에까지 조직망이 촘촘히 구성 된 청년동맹을 통해 군부에도 마당발이라 할 정도의 인맥과 영향력을 행사해 온 자이다.

그러던 그가 황해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를 거쳐 민간으로서는 파격적으로 인민군대장(2010.10) 칭호를 받은 지 불과 1년 반 만에 조선인민군 차수(2012.4)로 승진 인민군총정치국장에 임명, 인민군 최고위 실권자로서 조선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 중앙위원회 군사위원회부위원장으로 권력핵심으로 급성장, 김정은에 이은 2인자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최룡해가 맡은 총정치국장은 북괴군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과 사상 선전 사업을 담당하고 군 간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함으로서 군사작전을 담당하는 총참모부장이나 행정 및 보급 등을 담당하는 인민무력부장보다 월등한 지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군 최고직위로서 총참모부와 인민무력부에서 말단 중대 급에 이르기까지 전후방 각급제대 및 간부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지도감독 감시 관리함으로서 군부쿠데타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총정치국장 최룡해 만이 유일하게 김정은에 반기를 들거나 군부쿠데타를 결행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김정은과 최룡해의 건곤일척의 생사투(生死鬪)도 멀지 않았을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다소 껄끄럽더라도 권력에 대한 집착보다는 김정은의 안전과 ‘공화국’의 발전에 더 힘을 쓸 권력의 보완재(補完財)격인 장성택을 몰아내고 김일성 가문에 필적 할 항일빨치산 가문 최현의 아들로 권력에 대한 대체재(代替財)가 될 최룡해를 껴안았다는 것은 집안에 호랑이를 기르는 양호우환(養虎憂患)격이며 시한폭탄을 껴안고 자는 격이다.

북괴에서 당규약이나 헌법보다 상위규범으로 작동하고 있는 ‘유일사상10대원칙’을 김정은 3대 세습의 정당성을 법제화하기 위해 개정하면서 김일성-김정일주의와 함께 <백두혈통>을 강조함으로서 총정치국장 겸 노동당 중앙위 상무위원으로 발탁 기용된 최용해가 오사카 기쁨조혈통 김정은에 비하여 백두혈통과 근접했다고 볼 수도 있는 근거가 마련 됐다. 이는 최룡해가 잠재적 경쟁자에서 현실적 도전자 또는 잠재적 적대자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에 비해 최현의 아들 최룡해는 항일혁명혈통이나 연령 면에서 윗세대의 인물인 동시에 출당철직(黜黨撤職)으로 탄광에까지 끌려갔던 밑바닥 체험과 13차 국제청소년축제라는 국제행사를 치를 수완과 청년동맹(사로청)과 도당책임비서라는 경험 등 검증된 인물로서 권력의 속성에 대한 이해나 정세판단, 처세술에도 탁월한 자이기 때문에 김정은의 눈 밖에 나 토사구팽을 당할 최악의 경우에 처하면 앉아서 죽기보다는 서서 싸우다가 죽을 인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김정은이 최룡해의 칼을 빌어 장성택을 쳐낸 것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평범한 진리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의 교훈조차 외면한 천둥버러지 김정은이 얼떨결에 벌인 어설픈 차도살인(借刀殺人) 술수였으며, 스스로 명 재촉을 하는 양호우환(養虎憂患)의 우(愚)를 저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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