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이 판치는 판-검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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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이 판치는 판-검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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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판-검사들의 진면목과 판단능력을 집중 사회에 고발할 것

독서와 사색이 중요한 이유

균형감 있는 인격 및 사고력은 독서와 사색으로부터 길러진다. 인생에서 독서와 사색이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계절은 대학시절일 것이다. 꿈이 가장 많은 계절, 내면의 멋을 기르고 싶고, 유식해지고 싶고, 유능해지고 싶은 계절 그리고 미래에 자기가 되고 싶어 하는 인간상에 대한 청사진을 열심히 그리기에 벅찬 계절, 하고 싶은 일은 많고, 시간과 여건은 따라주지 않고 그래서 때로는 외롭고 고독하고 허탈해지기도 하고... 이런 시간들로 가득 채워진 계절이 바로 20대가 아닐까 한다.

내가 20세였던 사관학교 1학년 교실, 육사 9년 선배가 세계사 시간에 조용히 들려 준 말씀이 내 인생을 조형하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여러분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나이에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가슴에는 깨끗한 백지가 하나씩 들어 있습니다. 그 백지 위에 여러분들이 무엇을 그리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인생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 인생은 출세를 하느냐 돈을 버느냐에 대한 인생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가슴을 얼마나 풍부하고 향기롭게 가꾸느냐, 그리고 인격을 얼마나 균형 있게 기르느냐에 대한 인생입니다.”

“학과 점수란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90점 맞는 학생이 91점을 맞으려면 하루에 세 시간을 더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80점을 맞는 학생이 90점을 맞으려면 하루에 한 시간만 더 공부하면 됩니다. 그 1점이 무엇이기에, 인격 형성에 투입해야 할 그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려 합니까.”

“여러분들의 생도 생활은 육사라는 조그만 테두리 안에 제한돼 있습니다. 많은 사회 현상에 접할 기회도 없고, 훌륭한 사람을 대할 수도 없고, 밤을 새워 독서할 시간도 없습니다. 그런 제한된 생활에서 1등과 2등을 하겠다고 경쟁해 보십시오. 4년 후 여러분들의 인간성은 볼품없이 망가질 것입니다. 책을 읽으십시오. 효과가 증명된 고전소설부터 읽으십시오. 영웅전과 위인전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많은 상식을 기르십시오. 여러분들은 살아있는 백과사전(living dictionary)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오던 물방울이 아주 조그만 물체에 부딪쳐 하나는 압록강으로 가고 다른 하나는 두만강으로 가듯이 어머니 품을 떠난 나의 인생도 사관학교 9년 선배의 이 멘트 하나에 동기생들의 일반적인 생활의 틀과 사고방식에서 동떨어져 나갔다.

나의 육사생도 시절은 독서와 사색의 계절이었다. 다른 생도들은 외출을 위해 토요일을 기다렸지만 나는 책 읽는 즐거움을 위해 토요일을 기다렸다. 토요일에는 일과가 끝나기 무섭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좋은 책 몇 권을 고르는데 두 세 시간이 걸렸다. 여러 권의 책을 빌려다 책상 위에 놓고 있으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독서는 즐거움을 넘어 희열을 주었다.

동기생들은 하루라도 빨리 졸업을 해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졸업이 싫었다. 독서시간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할당된 자습시간에도 한 시간 이상은 소설과 위인전과 교양서적을 읽는데 사용했다. 한번 책을 잡으면 기말 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놓지 못했다. 영어와 수학, 물리, 전기와 같은 수학계열 과목들에서는 ‘예제’만 이해하고 시험을 보아도 상위권에 들었지만 외우는 과목들은 낙제점을 간신히 면했다.

책을 읽는 시간이 1시간이면 그 내용을 정리하고 ‘저자가 매 10페이지에서 내게 가르쳐 주려고 했던 교훈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이 2시간은 걸렸다. 당시의 독서인구는 다독파와 정독파로 갈렸다. 물론 나는 정독파였다. 정독파 중에서도 특이한 정독파였다. 이것이 인생이 걷는 숙명적인 마라톤 경쟁을 결산하는 황혼의 넓은 바다에서 수줍은 한 송이 꽃이나마 피우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빈 구석의 수가 적을수록 더 균형 있는 인간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사귀면서 산다. 첫 만남에 반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공감하는 나머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마음을 다 꺼내 준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실망한다. 이 세상에 빈 구석이 없는 사람은 없다. 빈 구석이 별로 없고 극한 상황에서도 평상심과 균형감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장 이상적인 인물일 것이다.

‘원만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사람이 있다. 절친한 친구도 없고, 원수도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판단과 행동에 균형감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사람도 옆에서 오랜 동안 관찰해 보면 어느 한 구석이 모자라거나 모 나거나 괴팍한 구석이 있다. 젊은 시절에서부터 꾸준히 독서와 사색을 해온 사람은 그런 구석이 적고, 독서와 사색이 없는 사람 일수록 의외의 궤변적 언행들이 돌출된다. 독서와 사색이 얕기 때문이다.

판단력이란?

절간에서 세상을 등지고 인내어린 선을 하면서 사색을 하는 스님들, 과연 그분들이 현실 세파에 직면해 살아야 할 때, 그분들의 강론 내용대로 말하고 행동할까? 가장 뿌리 깊은 사색의 나무는 절간에서 크는 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국가를 경영하는 데서나 기업을 경영하는 데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 경영자의 의사결정이다. 이른바 판단력이다. 최고경영자라 해서 수학적 분석과 과학 기술이 개입된 모든 문제를 혼자만의 힘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동원한 분석 참모진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 분야의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는 능력은 지도자 스스로가 제 분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전문 소양과 수양을 통해 소통능력을 쌓았을 때의 이야기다.

융합능력과 판단력

미안하고 쑥스럽지만 필자의 경우를 말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필자는 72세의 생을 살면서 쉬어 본 적이 거의 없이 늘 학습하고 사색하면서 살아왔지만 겨우 두 가지 전문 코스밖에 밟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두 개의 전문과정은 판단능력을 기르기 위한 코스였다,

하나는 석사 때 판단력 수업을 한 경영학(회계, 감사, 리더십, 심리학학, 대수학, 경제, 확률, 통계, 네트워크 이론, 생산관리, 인력관리, 재무관리, 투자분석 등)이었고, 다른 하나는 박사 때 수업한 시스템 수학(응용수학)이다. 이 두 개의 과정은 시스템의 세계적인 원조, 시스템의 세계적인 고장인 미해군대학원에서 동양인을 싫어하는 수많은 교수들의 온갖 딴지를 이겨내고 밟은 것이었다. 그래서 기업에 가서 현장만 바라봐도 무엇이 문제인지 금방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기업에 관한 한, 나는 준-뉴턴의 관찰력을 가진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이렇게, 판단력을 학문적 차원에서 기른 필자에게도 과제 하나를 맡으면 석사출신 연구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필자는 연구 과제를 수행할 때 부하 연구원들의 지혜를 목표 지향적으로 동원했다. 그리하면 부하 연구원들의 지혜와 그들이 수집한 사실자료들이 나를 돕고 키웠다. 나는 감히 말한다. 이런 과정들이 바로 기업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판단능력을 기르는 길이다. 나는 타인의 능력과 지혜를 동원하여 문제를 푸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최상위 급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내가 왜 이런 자랑(?)을 길게 하는가?

판-검사사들의 판단능력

필자처럼 판단력을 전문적으로 기른 사람도 또 다른 지혜를 동원하야 비로소 정상적이고 원만하고 균형 잡힌 사리판단을 할 수 있는데 하물며 나이 어린 판-검사들이 겨우 법전 하나 외워가지고 고등고시에 패스하여 그것 하나 가지고 사람의 생사여탈을 결정하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위험해서다.

필자는 지난 18년 동안 300회 정도 판사 앞에 서면서 수백 명의 검사도 대해 보았고, 수백 명의 판사들도 대해 보았다. 기업에 가면 불과 며칠만의 관찰로도 기업이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잘 못 돌아가는지에 대해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필자가 보기에 필자 앞에 우뚝 서있는 판-검사들이 어떻게 보였겠는가?

마치 손자 벌되는 아이들로부터 설익은 훈계를 듣는 것 같은 서글픈 심사를 경험한지 무려 18년이나 된다. 가장 존경받아야 할 나이에 수모를 겪는 처참한 지경이 아닐 수 없다. 일부의 판-검사들은 공개적으로 이런 나를 전과 많은 상습범으로 매도하지만, 극히 일부의 2심 판사들은 나에게 계속 싸워주기를 귀에 대고 주문한다. 어떤 판사는 내가 고소한 사건에 대해 자기가 판결한 판결문을 보내주고 싶다고 전화까지 했다. 나는 그런 판사에 마음으로부터의 경의를 표해왔다. 그런 판사들의 이름은 메모해서 절대로 기억한다.

영국과 미국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백여 년 전부터 판사들의 건방진 독재를 견제하기 위해 배심원제를 운용해오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사건에서 배심원제가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사법부는 배심원들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별로 성숙해 보이지 않는 어린 시민들이나 여성들 그리고 70세가 훨씬 넘고 자기 표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심원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공식 공판이 끝나면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자기 생각을 교묘하게 주입하여 평결결과를 판사의 뜻대로 유도한다.

나의 혐의를 판단한 고등법원 판사의 궤변

10월 18일, 나는 또 판사 앞에 섰다. 대선 때 동아일보에 낸 광고문이 문재인에게 악영향을 미쳤다는 판결을 내렸다. 1심 판결은 배심원 판결, 4:3으로 패했다. 판사는 “자기 생각을 다 버리고 평결에 따르겠다”고 선포했다. 그래서 형량은 100만으로 결정됐다.

2심이 고등법원에서 열렸다. 1심 재판장이 끝까지 거부한 피고인측 증인이 채택됐다. 증인은 광고대행업자, 그가 나와서 이런 증언을 했다.

“증인은 지박사님으로부터 ‘지난 총선 때도 선거법 위반으로 많은 고생을 했으니, 이번에는 걸리고 싶지 않다. 광고를 못해도 좋으니 반드시 사전에 광고 내용을 선관위에 보내 검증을 받아라, 검증됐을 경우에만 광고를 내라’는 부탁을 단단히 받았습니다. 조선일보 광고 문안과 동아일보 광고 문안이 달랐는데 저는 광고 문안을 각 신문 광고국에 보내면서, 박사님의 뜻을 확실히 전했습니다. 양개 신문사로부터 문제 없다는 말과 함께 광고 날짜를 통보받고 저는 박사님께 ‘이상 없다’고 말씀드리고 광고를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박사님을 뜻을 받들어 선관위에 문의해 ok를 받았지만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의 광고문이 OK이면 동아일보 광고는 더 문제 없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광고를 진행하였습니다 박사님께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되어 죄송합니다.”

이것이 지난 대선 때에 저질렀다는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유-무죄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증언이고 증거였다. 선거법 93조1항은 목적범 만을 처벌하는 법률이다. 위의 증언은 내가 목적범이 아니라는 것을 120% 증명한 증언이었다. 그런데! 고등법원 판사가 유죄를 선고했다.

왜 유죄냐? ‘선관위로부터의 ok 판정’을 피고인인 내가 직접 받아야만 했었는데 광고대행자에게 수수료를 주고 대행시켰다는 것이 잘못이고 그게 선거밥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항소이유서와 최후진술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헌법으로 신봉하는 국가입니다. 광고대행업은 허가된 서비스업이며 피고인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런 서비스를 살 권한이 있는 사람입니다. 피고인이 원하는 그 서비스업을 돈을 주고 산 것이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그 서비스 업자가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조선일보는 약속을 이행했고, 동아일보는 합리적인 이유로 선관위에 문의하지 않고 자체변호사들을 동원해 판단한 결과가 초래됐습니다. 하지만 그 광고대행업자는 피고인에게 ‘박사님의 지시사항이 다 이행됐습니다, 광고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각 나갑니다’라는 보고를 했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이 직접 선관위에 확인하지 않은 것 자체가 범죄라 주장하지만 이는 서비스를 팔고 살 수 있다는 헌법 정신에 위배합니다, 임무 수행 점수가 100점이 아니라 80점이라 해서 이를 범죄로 몰아치는 건 야만입니다.”

판사들의 판결문, 내가 판결할 것

이런 나의 호소와 주장에도 고등법원 판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와 눈썹까지 백설기처럼 하얗게 신 재판장에 걸었던 기대가 그만 산산조각이 났다.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유죄냐 무죄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법부 판사들의 판결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몸소 치른 재판 내용들을 책으로 엮으면 한편의 드라마가 탄생할 수도 있는 다이나믹한 이슈가 될 것이다. 내게 달려있는 수십 건의 전과기록에 대해 나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록들은, 한국식 재판을 비춰보는 거울이요, 사회를 계몽시키는 ‘생생한 소재들’가 될 것이다.

나는 지난 18년 동안 치른 수십 건의 기록을 통해 내가 겪고 느낀 일들을 정리하여 이 나라의 판-검사들의 진면목과 판단능력을 집중 사회에 고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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