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밭을 가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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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밭을 가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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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달과 문화의 전성으로 이 세상이 몰라보게 편해지고 좋아지는 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동물인 인간들은 점점 사악해지는 등 갈수록 포악해지면서 인성이 기계화 되고 있다.

근래 들어 우리는 언제나 기로(岐路)에 서 있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으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또 말세가 가까워졌다는 말도 귀가 따갑도록 듣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런 말들은 종교계나 정부 관리들의 입을 통해 흔히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그리고 “말세” 나 “기로”등의 여건은 언제나 우리에게 “위기”로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정작 이 같은 위기의식에 대해서는 지도층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가 말대로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특히 요즘 같은 경우는 자율신경이 마비된 사회처럼 뭔지 모르게 불안하기만 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정치는 물론 경제, 외교, 안보 등에서도 그런 현상을 보이며 나라를 걱정하는 지인들의 가슴을 애태우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어찌되든, 국민들의 생활이 어찌되든 정치권은 여전히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등 총선이 끝 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념과 색깔론” 과 “적대” 관계에서 상호협의에 장을 마련치 못하고 있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마치 이조시대 때 당파싸움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이 시대가 왜 이처럼 살벌해지고 자율신경이 마비될 정도까지 도달하게 되었을까? 필자가 꼼꼼히 생각해 볼 때 우선은 교육이 잘못된 것이 주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겠지만 결국 “자기애(愛)”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나친 “자기애” 에 빠져 자기만을 너무 위하고 앞세우다 보니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그러다보니 자기가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서는 목적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남을 헤치는 것 까지도 서슴치 않는 포악함을 보인다. 무엇보다 변화가 요구 되었던 정치권이 과거의 부폐한 역사를 답습하는 등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또 자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지나친 욕심을 부리며 상대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를 하지 않으려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역사의 뒤안길을 보면 불을 보듯 뻔한 최후의 결과를 알면서도 오직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남의 귀중한 생명까지도 무참히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불교에서 이숙식(異熟識)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는 ‘아뢰야’라 하며 자기가 거쳐 온 모든 종자가 생사윤회에 유전하면서 인(因)은 과(果)로 변해 나타난다는 뜻이다. 또 사람이 항상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인’이 변해 ‘과’가 틀리게 나올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류이숙(異類而孰)라는 글도 있다.

즉 사람이 짐승으로, 짐승이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일종의 ‘윤회설’ 이기도 하다.

결론은 그같이 변할 수도 있으니 만물의 영장이라고 의시 대며 약한 동물들을 너무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힘이 있다고 약한 자를 너무 못살게 굴지 말고 또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지는 말자는 것이다. 더구나 지도층에서 중도(中道)와 상생(相生)의 정치를 말하는 상황임에도 불구, 정당들이 서로 물고 뜯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비춰지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다.

이념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 할 뿐이다. 이를 목표로 착각하고 성취를 위해 다투는 것은 옳지 않다

‘중도’는 ‘나 와 너’ ‘있다 와 없다’ 등의 극단적 입장을 버려야 한다는 불교적 용어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존재하는 물체가 절대 없듯이 너 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연기(緣起)를 깨달아 우리 모두가 위대한 존재임을 확인 할 때 ‘늙고 죽는 것 마져 축복이 된다’ 고 스님들은 말하고 있다.

“내가 당한 만큼 남에게 되갚으려 하지 말라”는 한 고승의 말씀처럼 ‘악’을 ‘악’으로 갚지는 말아야 한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남의 허물을 감싸주고 너그럽게 포용하며 용서를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용서는 사람을 순식간에 정화시키고 사랑과 이해의 문을 열어주게 되는 것이다. 너그럽게 포용하는 용서는 인간사회의 가장 으뜸가는 미덕이라고 말한다.

남의 허물을 낱낱이 들추어내며 질타를 한다면 오히려 서로의 감정만 나빠지고 누구라 할 것 없이 가슴에 상처만 남게 되는 것이다. 남의 결점이 눈에 보일 때 내 스스로는 허물이 없고 떳떳한 지를 먼저 생각해보고 충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국의 문헌을 보면 ‘용서와 관용’은 위기에 처한 나라도 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잉과 응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이 저지른 업에 대해서는 언젠가 그 과보(果報)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고기가 삼킨 낚시 바늘을 토해내지 못하는 것은 바늘 끝에 ‘미늘’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사소한 것으로부터 승패가 갈리며 얽매이게 되는 것이리라.

지금은 정치나 경제, 안보 등에 위급을 다투는 현안이 수부룩 하게 쌓여있는 상황이다. 과거의 잘못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지금은 국민의 생사가 달려있는 취업 등 현안부터 다루는 국회가 되었으면 한다. 어쩜 정치인은 공인이다.

따라서 사사로운 감정에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는 건 비극이자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둑 두는 것을 옆에서 사심 없이 바라보는 마음으로 시야를 넓혀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연일 비가 내린 탓으로 화단에 잡초가 무성하게 생기는 등 지저분해 보였다.

문득 우리의 마음도 그런 꽃밭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밝고 개인 날 좋은 씨를 뿌려 잘 가꾸면 좋은 열매가 열린다. 그러나 그런 화단일지라도 늘 관심을 갖고 가꾸지 않으면 잡초가 뒤엉켜 엉망이 된 꽃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식견을 갖고 있어도 자신을 잘 다듬고 가꾸지 않으면 잡초처럼 엉키고 설킨 모습으로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특히 모든 문제 제기에 앞서 ‘나’ 때문이 아니고 ‘나의 존재’ 가 있었기에 발생한다는 것을 한번쯤은 생각해 봄직도 하다. 늘 김 메는 밭에는 잡초가 뿌리를 내릴 틈이 없다. 우리도 마음에 밭을 가는 농부가 되자.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 부정적인 마음, 긍정적인 마음, 하고 싶은 것도 참을 수 있는 마음, 베풀고 나눔의 즐거움을 아는 마음, 하고 싶지 않아도 웃으며 할 수 있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내 마음에 꽃밭을 가꾸듯 잘 가꾸어 나간다면 그야말로 우리의 정치는 상생의 정치가 되어 민생회복과 더불어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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