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터뷰]옻벌레의 자화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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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인터뷰]옻벌레의 자화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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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둥지를 자주 옮기면 깃털이 빠진다

^^^▲ 옻벌레의 자화상, 이외수. 그의 꿈틀거림을 기대해본다.
ⓒ illusted by 김어진^^^
흔히 이외수의 문학을 말할 때 단어의 생명성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자신 스스로도 단어 혹은 말이 갖는 생명성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는 영화 역시 대사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대사가 재미없으면 영화 역시 10분만 보면 그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니겠냐"고 되묻는다. 그만큼 텍스트를 다루는 예술에서 언어는 중요한 감각이다.

그는 언어의 생명화 작업을 통해 ‘밥’이라는 단어에도 사유를 붙여서 애정을 부여한다. 흔히 우리가 쓰는 습관적 표현에 의해 ‘밥’이라는 단어를 쓰면 그것은 기호가 되어 그것 자체의 의미만 전달된다. 그러나 사물을 사유하고 애정을 부여하면 그것은 감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 사용은 작가 정신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는 '작가정'신을 강조한다. 소설적 문체가 아닌 묘사적 문체를 쓰면서, "내가 그 사물이 되었을 때의 언어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묘사적 문체에 대해 "나무가 되어보지 않고 나무에 관한 글을 쓰려면 그것은 살아있는 글이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어 말한다.

이렇듯 모든 사물이 되어보면서 글을 쓰기 때문에, 당연히 그의 문학에선 한 문장, 한 문장에 생명력이 느껴지고 그만의 힘이 느껴지는 것.

또한 그는 생명력 있는 글의 비법은 인위적인 것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위적인 것은 시간이 가면 퇴색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자연적인 것은 세월이 지나가도 그것은 시간을 유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외수의 글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봐도 그 시간성을 느낄 수 없을 만큼의 감각을 지니는 것이다. 시간을 뛰어넘어 독자들의 감각을 무력화시키는 마법. 그것이 이외수의 글이 독자들에게 아름답게 느껴지게 하는 비밀의 주문이다.

이렇게 주문을 거는 행위 자체는 소설가로써, 그리고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써 큰 고통이다. 때문에 그는 독자들은 아무런 방해 없이 읽어내려가는 묘사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작가에겐 고통스러운 희열이라고 말한다. 결코 쉽게 쓰여지지 않는 묘사의 힘과 문체가 바로 작가 이외수가 독자들을 통해 얻는 고통의 환희이다.

생명력과 자연의 힘의 조화. 그것이 그의 문체이며 문학이다.

실제로 대학도 자퇴하고 소설속에서도 제도권에 의한 교육 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을 쓰며 제도권 밖의 삶을 꿈꾸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제도권의 교육뿐만 아니라 (특히 『꿈꾸는 식물』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락함 조차 부정해 버리는 것만 같다. 치밀한 계산에 의해 부정하는 제도권적인 현실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제도권, 기득권. 내가 좀 재수없어 하지. 현실은 어느 시대건 예술의 적이야. 예술은 물질 중심적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은 적이 될 수밖에 없어. 우리는 그동안 제도권에 너무 많이 속았어. 가정을 버려야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회사 식의 요구는 결국은 개같은 인간이 되어야만 밥을 먹어준다는 소리 아니야? 가정은 사회의 최소 단위이고 가장 사랑의 기본 단위인데. 그런데, 그걸 버리고도 행복해 질 수 있느냐는 말이지. 하지만, 그걸 예술가가 두둔할 수는 없어”

이어 그는 토끼와 거북이의 동화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토끼와 거북이 중에서 누가 이길 것 같냐고 물으면 ‘거북이’라고 잘 훈련된 동물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는 "현실적으로 토끼가 잠을 안 잤다면 이길 것이라 말하며, 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육지에서만 시키느냐"고 묻는다. "거북이는 해륙동물이기 때문에 바다에서도 가능하지 않겠는가"를 물으며 "만약 바다에서 했다면 토끼는 자지 않고 거북이가 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제도권 교육에 대한 문제점은 잘 길들여진 한 편의 동화가 아니겠는가.

새는 둥지를 자주 옮기면 깃털이 빠진다

어느 덧 그의 문학 인생은 30년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춘천 역시 그가 산지 30년이 되어간다. 그에게 있어서 춘천은 문학이었다. 그는 춘천에 대해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이런 도시가 없다고 했다. 30분만 걸으면 호수가 나오고 자연이 곳곳에 둘러져있는 곳은 이 곳밖에 없다며 춘천에서 오랜 시간 머문 이유를 설명한다. “새는 둥지를 자주 옮기면 깃털이 빠진다”라고 하며 그는 창 밖의 춘천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이외수. 분명 그가 독자들에게 베푸는 사랑은 희생에 가까운 행복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그를 놓아줄 수 없나 보다. 『괴물』이 끝나자마자 또 다시 여러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니 말이다. 그러나 또 다른 독자의 심정으로써 그가 작품을 쓰면 이렇게 대화할 수 없음이 두렵다. 그가 야윈 몸으로, 정겨운 미소를 건네는 것을 한동안 볼 수 없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볼 수 없는 것만큼 끔찍하다. 그러나 그에게 끔찍한 것은 작품을 쓰는 동안의 희생이 아니라, 작품이 나와도 변함없이 그를 맞이하는 ‘더러운 세상’이리라.

춘천에서 다시 청량리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어느 새 해가 져서 춘천역은 노을이 드리웠다. 청량리에서 춘천으로 올 때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청량리로 돌아가는 열차 안은 아무도 없었다. 청량리로 가는 동안 밤하늘이 드리웠고 나는 이외수를 만나기 전 그렸던 자화상을 지워버렸다.

스스로를 ‘원고지 기생충’이라고 말하는 겸손함과 ‘삶을 파고 들어가 그 속에 알을 낳아야 하는 옻벌레 같은 글쓰기’를 강조하는 대담함.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하나로 그려질 수 없는 다양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외수 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처럼 쓰지 말고 옻벌레처럼 글을 써라"라고 했던 그의 오래된 당부를 떠올렸다. 옻벌레의 자화상. 그것은 치열한 희생끝에 만들어진 이외수의 글과 삶에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춘천의 어느 골방에서 만난 그 옻벌레는 아직도 치열하고 잔인하게 현실을 그려나가고 있다. 아니, 잔인하다는 말은 삶의 치열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문득 올려다 본 밤하늘에 옻벌레들이 꿈틀꿈틀 기어갔다. 기차는 청량리를 향해 달리고 벌레들은 춘천을 향해 기어간다. 나는 그의 방에서 기어다닐 옻벌레들을 떠올리며, 그를 위해 준비했던 노트에 옻벌레를 그려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가슴안에 사랑이 가득할 때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아름답지 않은 걸 사랑해본 적이 있습니까? 아름다움에는 안팎이 있고 또한 아름다움은 크기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의 크기가 커져 자신을 들여다 볼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해집니다.

아름다움에는 순간적인 외적 아름다움과 지속적인 내적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결국 예술은 사랑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아름다움을 함께 공유하고자 글을 씁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자신의 혼값을 올리는 존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 이 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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