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계조 회장전 천호그룹 이계조 회장 인터뷰 ⓒ 뉴스타운^^^ | ||
2005년 을유년은 닭의 해다. 흔히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 닭의 상징성은 예전부터 외형과 성격, 습성 등을 토대로 다른 소재와 함께 그림으로 그려져 입신출세·부귀공명 등을 상징하게 됐다. 즉 모란과 함께 그려지면 부귀를, 국화와는 장수를, 석류와는 다산을, 맨드라미와 함께 있다면 높은 벼슬을 의미한다.
이런 닭의 해를 맞는 2005년 새해아침, 우리는 닭과의 인연을 생각한다면 바로 닭과 평생을 같이한 우리나라 닭 산업의 원조인 이계조 전 천호그룹 회장(72)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인생은 전부가 닭과 관련된 사업이다. 닭띠 해에 태어나 우리나라 닭 산업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아온 그였기에 닭 산업 선진화에 관한 한 산 증인임을 자부한다. 오히려 닭과 너무 오래 살았노라고 회고 한다.
그는 지금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닭고기 산업에 대해서만은 아직도 열정이 식지 않았다. 많은 후배들이 찾아와 어려움을 토로하면 거침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해주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닭고기 하면 노계를 잡아 국을 끓여 먹던 시절부터 그는 닭고기의 대중화를 위해 최 일선에 서 있었다.
“지나간 일을 생각해보면 닭과 함께한 30년이 짧은 세월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 된다”는 그는 지금도 우리나라 닭 산업의 발전과 개혁을 위해 누군가는 앞서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개척정신은 전통적인 닭고기 요리방법에 얽매여 있던 시절 닭고기의 다양한 가공 방법을 개발하여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는 계기 마련의 원동력이 됐다.
즉 다양한 개성과 입맛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태로 닭을 가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체인사업을 펼쳐 국내 최초로 닭고기 산업화라는 역사를 펼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닭 산업의 브랜드화 원조인 ‘마니커’였다. 마니커는 닭 산업 최초 TV 광고를 시작하면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고 우리나라 닭고기 산업을 일순간에 업그레이드 시키는 대 변혁을 몰고 왔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뜻 깊은 일이 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닭 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계열화 사업에 당시 전재산을 투자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자부하며, 그 파급효과는 우리나라 닭 산업을 선진화 하는데 밑거름이 되었고 시기를 단축하는데 기여하였다고 믿는다”고 토로한다.
그는 앞에 닥친 일을 피해가지 않았다. 평소 자신의 신념인 "언젠가 할 일이면 오늘하고,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면 내가 하고, 이왕 할 일이면 더 잘하자" 라는 정신으로 닭 산업 발전과 업계에 도움이 되고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이해관계를 불문하고 앞장섰다.
지금도 많은 양축가들은 그를 향해 우리나라 닭 산업의 개혁을 위한 육종사업, SPF사업, 질병연구실, 닭 운송수단 선진화, 닭 계열화 사업 등과 관련해서는 산 증인임을 주저하지 않는다.
1950년 중반 양계에 발을 들여 놓은 후 30년을 오로지 한길로 만 걸었던 그에게서 지금도 닭은 질긴 인연으로 남아 있다.
사무실 진열장과 집안 곳곳에 빼곡히 들어찬 세계 각국의 닭 인형들은 그가 지난 세월 전 세계를 돌며 우리나라 닭 산업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잘 입증해주고 있다.
^^^▲ ▲ 사무실 진열장 곳곳에 빼곡히 들어찬 세계 각국의 닭 인형들 ⓒ 뉴스타운^^^ | ||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앞서가는 자에게 시련은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나라 닭 산업의 선진화와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정부도, 업계도, 금융권도 단편적 시각으로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사건건 안티를 걸었고 오히려 불법을 종용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끝까지 진실로 맞섰지만 역시 정부를 상대로 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결국 평생을 바쳐온 ‘마니커’는 기관, 단체, 업계 등 어떤 곳으로부터도 협조를 받지 못한 채 고군분투하다 금융실명제를 기점으로 대기업으로 경영권을 넘겨야만 했다.
우리나라 닭 산업의 선진화 문턱에서 닭 산업을 안정적 산업으로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세월은 그에게 많은 아픔을 안겨 주었다. 닭 산업을 선진화로 발전시키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그것은 그만큼 닭 산업 발전에 쏟은 그의 정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한가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그와 함께 고생하며 우리나라 닭 산업 선진화와 발전에 함께 참여한 많은 천호그룹 임직원들과 동료들이 아직도 이 분야에서 열심히 앞장서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세월은 훌쩍 넘어 그의 나이 70을 넘겼다. 아직도 닭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는 ‘닭 사랑 할아버지 이계조’를 우리는 두고 두고 기억할 것이다.
그는 “닭은 우리에게 아침을 밝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지만, 우리나라 축산업과 닭 사업의 사막에 단비를 뿌려준 역사적인 동물로 기억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또 “ 닭 울음소리가 10번을 넘으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새해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곳곳에 활기찬 닭 울음소리가 울려 퍼져 복 받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 한다”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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