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의 조원봉과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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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의 조원봉과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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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둘 만이 알고 있는 진실

^^^▲ 조원봉 씨^^^
조원봉과 유시민은 같은 점이 많다.

엄밀히 따지면 조씨(1958년생으로 77학번)가 유씨보다 한살이 많고 서울대학교 1년 선배다. 고향도 비슷하여 조씨는 경북 영덕이고 유씨는 경북 경주다.

둘 다 학생운동을 하였고 1984년 서울대 일부 학생간부들의 민간인 불법 감금, 폭행, 고문, 자백강요사건의 가해자로 처벌 받았다.

둘 다 정치적인 야망이 있어 1984년 사건 이후 조씨는 민주화운동을 하였고 유씨는 글을 썼다. 조씨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실패하여 지금 백수이지만 유씨는 2003년 4월 보궐선거에서 승리하였고 2004년 4.15총선에서도 승리하여 2선의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1984년 사건이후 20여년이 지나 둘만이 아는 진실을 가리는 위치에 함께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둘만이 안다.

조원봉은 누구인가?

학생운동으로는 조씨가 유씨보다 선배로 조씨는 1978년 유신반대 시위관련 제명되어 1979년부터 1981까지 육군 31사단에서 복무하다가 전역, 1982년 서울대 국사학과 복학하여 1985년 졸업했다.

조씨는1984년9월 서울대 학원프락치 사건으로 수배, 1985년12월 구속되어 1987년 7월에 형 집행정지가 되었다.

현상 수배된 뒤 1년반 동안 도피생활을 하던 중 공장에 취직을 하기 위해 친지의 주민등록증을 빌려 본인의 사진을 붙여 사용한 것이 적발돼 공문서위조죄가 적용됐다.

또 경찰이 주민등록증의 출처를 묻는데 대해 “친지의 안전을 위해 훔친 것”이라고 답변해 절도죄가 적용됐으며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중 권인숙 성 고문 사건이 발생하자, 사법부에 대한 항의의 뜻을 전하기 위해 고무신을 벗어 판사에게 던진 것이 법정모욕죄가 되었다.

그 후 1987년12월 구로구청 부정선거규탄 농성(구로항쟁) 사회자로 2000년 16대 총선에서 경북영덕에서 무소속 출마자로, 또한 2002년 10월 개혁국민정당에 가입하여 김원웅 대표 반대 투쟁하던 당시 ‘게시판 유령’으로 불리다가 2003년 2월 탈당, 2003년8월 새천년민주당 구로을 지구당 입당하여 2004년 4.15총선에서 구로을에서 공천을 원하였으나 공천을 받지 못하여 출마하지 못하였다.

조원봉의 성향은 열성 민주당이다.

조선일보 2003년11월4일자 '총선을 향해 뛰는 사람들' 서울 구로을 조원봉 편을 보면 조원봉씨에 대한 성향이 잘 나와 있다.

지난 대선 전 조원봉의 활동 무대는 ‘친(親) 노무현’ 성향의 인터넷매체 ‘서프라이즈'였다. 대선이 끝나고 민주당이 ‘친노파 대 반노파’로 갈리면서 그의 활동무대는 ‘동프라이즈’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난 9월 민주당 내 친노파가 신당을 만들면서 그는 ‘남프라이즈’에 활발히 글을 올리고 있다.

동프라이즈는 서프라이즈의 친노 성향에 반발한 민주당 지지자들과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즐겨 찾는 사이트. 이보다 늦게 탄생한 남프라이즈는 민노당 지지자들을 제외한 순수 민주당 지지자들의 토론공간이다.

조씨의 성향이 ‘서->동->남’으로 바뀐 건 그리 ‘서프라이즈’(surprise)한 일이 아니다. 그는 늘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민주화의 정통을 잇는 당을 지지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즉 조씨는 열성 민주당 당원이고 영원히 민주당 당원이기를 원하는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민주당내에서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을 많이 하였음에도 유씨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 지난 22일 고양지원에서 만난 1984년 사건 당시의 가해자(오른쪽인 조원봉씨)와 피해자
ⓒ 송인웅 기자^^^

유시민은 어떠했나?

1978년에 서울대에 입학하여 1980년 3월에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대의원회의장을 맡으면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군에 강제적으로 입대, 1983년 5월 전역 후 복학생협의회 대표로 있다가 1984년 학원 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되어 징역1년을 살았다. 그 후 한 일은 글을 쓰는 일 등을 하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을 하였다.

유씨가 대중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2000년부터 MBC의 100분토론 진행 부터다. 그 후 2002년 개혁당을 창당하고 대표집행위원이 되었고 2003년 4월에 고양시 덕양갑 보궐선거에서 16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2004년 4월에 다시 2선 의원이 되었다.

어찌 보면 조씨에 비해 학생운동, 민주화운동 등을 내세울 게 없는 유씨가 그야말로 정치적 운에 따라 정치적인 출세를 한 것이다. 단지 조씨에 비해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한다는 이유와 시대의 조류를 잘 캐치하고 순간적인 선택을 기가 막히게 잘하고 운세가 거기에 맞아든다는 것 때문이다.

조원봉과 유시민의 관계

입학년도는 물론 운동권 선배로서 조씨의 입장은 겁나게 출세를 한 유씨가 부러울 수도 또 개혁당 당시 유씨는 대표집행위원이고 조씨는 평당원이라는 처지가 불편하였을 수 있어, 둘 사이는 같은 사건으로 징역을 산 동지임에도 서먹서먹한 관계였다고 한다.

이런 두 사람이 지난 22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401호 법정에서 만났다. 유씨는 피고인으로 조씨는 검찰 측 증인으로 만난 것이다.

바로 데일리 서프라이즈의 기사에서 밝힌 내용 때문이었다. (데일리 서프라이즈의)'유시민 명예회복된 것으로 착각'이란 소제목의 기사에서 "유일하게 유 의원이 인정한 부분은 일부 다른 관련자들이 민주화유공자로 명예회복을 한 것으로 알았던 사실"이다.

개혁당 문제로 유 의원과 소원해진 조원봉 씨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명예회복신청을 한 적이 있었으며 이후 이런 취지의 글을 남프라이즈에 남겼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58년생 조원봉씨가 명예 회복자 명단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조씨로부터도 명예회복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던 것으로 증언했다.

하지만 유 의원은 검찰 조사가 진행된 후인 올해 7월 14일, 조 씨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이 되긴 했지만 ‘서울대 프락치사건’은 의결이유에서 제외됐으며 다른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아직 명예회복 결정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 씨는 이후 검찰과의 진술에서 “자신의 명예회복 결정은 2004년 5, 6월경으로, 그제서야 회복사실을 알았으므로 사실을 말한 바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조 씨는 2003년 9월 23일자로 명예회복이 됐으며 같은 해 11월 14일 남프라이즈에 “그 사건은 민주화운동명예회복법에 의해 일부 관련자들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안다”는 글을 남기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조원봉과 유시민이 알고 있는 진실

2004년 5월4일 개설된 조원봉 대통령 만들기란 카페(cafe.naver,com./democratic)가 네이버에 있다. 아마도 관리자인 ‘이솝’이란 아이디는 조원봉 자신일 것으로 판단된다.

즉 생각이던 바람이던 조원봉 스스로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커다란 꿈을 품은 조씨는 지난 22일의 증인심문에서처럼 조씨 자신이 명예회복을 하고자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여 달라는 신청을 하여 다른 사건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서울대 사건만은 (민주화 운동으로)인정받지 않았다는 사실과 명예회복 되었다는 내용에 대하여 유시민에게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남프라이즈 사이트에 (1984년 서울대 사건)일부관계자가 명예회복 되었다고 글을 적은 것은 당시 논쟁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글을 썼고 논쟁 중 유시민을 반대하는 말이 많아 정당하게 과거사를 왜곡하지 말라는 취지로 쓴 여러 가지 글을 쓴 것 중에 하나일 뿐으로 자신이 명예회복 되었다고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조씨의 입장에서 아무런 득이 없는 사건에 검찰의 조사와 법원에 증인 출석해야 하는 일들이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겠지만 국정의 중심에 있는 일국의 입법기관인 국회의원 유시민이 2004년 4.15총선 당시 단지 착각에 의한 것이 아닌 고의적 또는 의도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결코 조씨가 우려하는 바처럼, 잊고 싶고 잊혀져야 할 1984년 사건을 되돌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음에도 그 사건을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이용하고 있는, 그래서 20년전 판결되어 이미 죄 값을 치른 사건마저 '유시민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등 국민들을 현혹하는 유시민 측에게 경종을 줌은 물론 최소한 국민으로서 사법부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해야 함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진실은 언제인가 밝혀진다'는 게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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