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로댐 클린턴 (Hillary Rodham Clinton), 그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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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로댐 클린턴 (Hillary Rodham Clinton), 그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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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차기대선에 나설 민주당의 유력주자 힐러리

 
미국의 여성정치인이며, 현직 국무부 장관. 1993년-남2001년 제42대 대통령을 지낸 빌 클린턴의 부인으로, 남편의 대통령 재직중 활발한 활동을 해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으며, 남편의 대통령 임기 말인 2000년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어 2001년부터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2009년까지 재직했다.

민주당의 유력한 2008년 대통령 선거후보였으나, 6월 3일 버락 오바마에게 경선에서 간발의 차로 석패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직후 국무부장관으로 지명되었으며, 2009년 1월21일에 공식취임했다.

힐러리는 1947년 10월26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아버지 휴 엘즈워스 로댐과 어머니 도로시 하월 로댐 사이에서 태어났다.

힐러리는 파크리지의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메인사우스 고등학교를 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했다.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보수주의자 대통령 후보인 배리 골드워터를 지지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힐러리는 1965년 매사추세츠 주의 명문사립 여자대학인 웰슬리 대학교에 입학하여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공화당의 하원의원 밑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대통령 선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업무 보조하고는 공화당을 떠났다.

이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유진 매카시 후보를 심적으로 지지한 그녀는 1968년 가을, 학생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1969년 졸업하면서 대표연설을 한 그녀는 그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예일 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학회지 편집자로 횔동했고 아동학연구소에서도 활동했다.

1971년 예일대학교 법학과 학생 빌 클린턴을 만났다. 1975년 10월11일 그들은 끝내 결혼했다.

1976년 힐러리는 이때부터 로즈 법률회사에서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1977년 어린이 보호 재단인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아칸소 대리인협회"의 공동창업자가 되었으며 지미 카터 대통령에 의해 법적지원재단의 이사로 임명되어 1981년까지 일했다.

그녀는 최초의 여성회장이었으며 초기 9천만 달러였던 재단예산은 그녀의 임기 동안 3억 달러로 늘어났다.

1978년 빌 클린턴이 아칸소 주의 주지사로 선출되자 그녀를 농촌지역건강지원위원회의 회장으로 임명했다.

이때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던 아칸소의 가난한 지역들의 의료시설 확충을 위해 노력하여 연방예산을 따내는 실적을 올렸다.

힐러리는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기전까지는 그녀의 수입이 남편보다 많았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는 아칸소 교육표준위원회의 회장을 맡아 활약했고 1987년부터 1991년까지는 미국 변호사 협회의 여성회원 회장을 지냈으며 그동안 네셔날 법학지에서 뽑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변호사 100인중 한명으로 두 번 선출되었었다.

빌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대통령에 당선돼 1993년 1월 집권을 시작하자 그녀는 미합중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세계 최초의 석사학위 이상을 가진 퍼스트레이디이기도 했다.

1997년에는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함께 어린이 건강보험 프로그램 법안을 만들어 추진했다.

이 법안은 각 주로 하여금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연방차원의 지원을 하려는 계획으로 전립선암과 어린이 천식치료를 위한 기금조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97년에는 사법부의 여성폭행방지사무소를 만드는 데 기여를 한 힐러리 자신은 자서전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활동으로 1997년의 입양과 안전한 가정을 위한 법률을 만든 일이었다.

1998년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클린턴 대통령과의 혼외정사 사건으로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에 이르는 사건이 있었다.

힐러리는 이 추문에 대해 우익의 음모라고 일축하면서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믿는다고 밝혔다.

그녀는 2003년의 저서전에서 결혼을 유지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서 "빌처럼 나를 웃게 만들고 이해하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그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흥미로우며 정력적이고 활발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했다.

보통의 아내와 달리 남편의 성추행 사건 앞에 힐러리는 지나치게 의연했다.

1998년 남편이 백악관의 젊은 인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로 세상을 시끄럽게 달구었는데도 그녀는 무서울 만큼 꼿꼿했다.

남편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도 힐러리는 남편을 옹호했다. 남편에 관한 소문이 음모라고 일축하며 남편이야말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강한 믿음을 쏟아냈다.

이후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남편을 힐난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클린턴을 지탱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으며 대중은 힐러리의 이러한 포용력 앞에 높은 지지율을 선물로 선사했다.

1999년 9월 상원의원 출마를 발표했다.

그녀는 전립선암으로 인해 출마를 포기한 루디 줄리아니 대신 공화당의 릭 라지오와 대결하면서부터 차기대권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을 낳았다.

2000년 11월7일에 열린 선거에서 55퍼센트의 지지로 상원의원으로 당선 됐다.

상원의원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힐러리는 예산위원회, 국방위원회, 환경과 공적사업위원회, 건강/교육/노동/연금 위원회와 노년층을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01년 9월11일 테러참사 이후에는 복구를 위한 기금조성에 노력하였으며 214억 달러의 기금모집을 하는 데 일조했다.

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한 그녀는 뉴욕 상원의원으로 재임하는 동안 지지율은 72퍼센트에서 74퍼센트, 대선 출마를 발표할 때는 64퍼센트였다.

2007년 1월20일 그녀는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는 것을 발표했다.

미합중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나, 2008년 6월 4일에 버락 오바마가 과반의 대의원을 확보함에 따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하고 말았다.

오바마 당선인은 국민통합과 뛰어난 국정수행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지난날의 경선 경쟁후보였던 그를 새 정부의 국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오는 2016년 미국 차기대선에 나설 민주당의 유력주자로 꼽히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차기 후보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런 힐러리 클린턴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영화 '로드햄(Rodham)'이 제작되는 가운데 여러 스타들의 이름이 거론 되고 있다.

영화 '로드햄'은 1970년대 변호사로 활약했던 힐러리의 젊은 시절을 그리는 것으로 연출을 맡은 제임스 폰스톨트 감독은 "힐러리의 지성과 강한 정신력을 표현할 수 있는 여배우를 찾고 있다"고 밝히면서 스칼렛 요한슨, 리즈 위더스푼, 제시카 차스테인 등을 강력 후보 물망에 올려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을 연기할 할리우드 스타는 과연 누구일까?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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