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60년, 한계에 이른 한국
민주주의 60년, 한계에 이른 한국
  • 최익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04.11.3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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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라는 겉옷을 형식으로 걸친 대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도입한 덕에 갑자기 시민이 되었을 뿐 민주주의를 직접 만든 자질과는 무관했다. 때문에 수많은 부작용과 병폐를 반복하다가 최근에는 "참여 민주"라는 표현으로 한계를 극복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처럼 서로 협력해서 직접 만든 작품, 누군가 만들어놓은 것을 중간에 수입(도입)한 작품, 수입 과정을 단지 구경(참여)만 한 사람의 격차는 실로 엄청나다.

어쨌든 이제 한국의 민주주의는 60년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 민주주의의 모습은 선진 복지 사회가 눈앞에 전개되기보다 내리막이 훤히 내다보이는 위기 상황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작품 제작에 참여한 진지한 과정과 생생한 기억이 결여된 채 법과 제도만 붙들고, 민주주의의 겉만 붙들고 빙빙 돌다 피곤에 지쳐서 한계에 빠졌다.

솔직히 우리는 조상 대대로 빈곤과 무지 속에 서로를 차별하는 등 고통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이후 민주주의를 도입한 덕으로 봉건 질서가 붕괴되면서 양적 질적으로 급격한 발전과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외견상의 모습과는 달리 병폐나 부작용 또한 급격히 많아졌다.

민주주의 시행 후에도 "독재, 특권, 관료, 권위, 유착, 부패"로 대변될 정도로 엉망이었다. 때문에 청탁, 뇌물, 압력, 향응, 불법 비리, 투쟁, 시위, 반대, 대립, 비난, 분열, 무사안일, 줄서기, 복지부동, 집단이기심으로 얼룩졌다. 이는 겉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한 채 실제로는 비민주, 반민주, 불평등, 반인권, 반인륜, 반사회적인 사건과 의식을 방치한 채 이에 의한 인물, 문화, 관행과 어울리며 그럭저럭 살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남의 도움으로 빈곤과 무지에서 벗어났으면 부당한 차별들을 없애고 격차를 줄이면서 과거를 반성하며 감사와 봉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암울했던 과거에서의 열등의식을 극복하지 못한 채 호의호식과 입신양명에 줄을 섰다. 심지어 부귀영화와 치국평천하를 위한 기득권 확보와 눈치보기와 각종 전략전술에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매몰되었다.

이제라도 "우리는 정말 민주주의 국가인가?", "우리는 진정한 민주시민인가?", "우리 국민성은 민주주의에 합당한가?"라는 의문을 다시 짚어볼 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우리는 수많은 인물들이 출현했고 지식과 막대한 재원을 투입했다. 뿐만 아니라 각 정권마다 수많은 정책들을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심지어 어린이들조차 엉망으로 여길 정도로 한심한 사회로 전락되었다. 때문에 이제라도 잠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의 본바탕 수준을 재확인하면서 하나씩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선진국에서 우리 나라에 대한 평가, 충고, 비판은 물론이고 조소 섞인 비난조차 낱낱이 점검해야 한다. 한 예로 각국에서 한국에 대사관과 영사관의 직원을 파견할 때 "한국에서 상주하는 동안 한국역사, 한국사회, 한국의 국민성을 절대 비판, 충고, 조언하거나 부정적으로 거론하지 말 것"을 특별히 교육시킨다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가 남의 말에 좀처럼 귀기울이지 않으며, 스스로 반성하기보다 오히려 적대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라도 우리 나라에 대한 선진국의 비판과 비난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간 우리가 익히 들었던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비판과 비난)를 재확인함으로써 우리 민주주의가 거듭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① 클린턴 대통령은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동양에서는 민주주의가 보편적 가치가 될 수 없다는 전통적인 관념(유럽과 북미에서 동양의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을 뒤엎는 사건"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동양인의 의식수준은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다는 표현이다.

② 최근 부시는 재선에 당선되자 "자유의 확산(일반 국가들을 상대로)이 시간 낭비라는 견해도 있기 때문에"라며 미국 내의 견해(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실현이 어렵다.)를 언급하며 설득했다.

이 역시 "민주주의에서 자유"라는 월등한 개념이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얼마나 실현이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무지, 빈곤, 차별에서 생겨난 각종 폐습과 악습, 비합리적인 의식구조, 답답한 전통과 관행, 비민주적인 국민성과 낡은 고정관념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의식수준으로는 민주주의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선진국의 시각을 대변해준 것이다.

③ 워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을 "들쥐 같은 국민성"으로 표현했다.

④ 일본은 "조선인은 감시하고 확인하고 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대한민국을 "졸부의 나라"(졸지에 부자 된 나라, 졸부들이 판치는 나라) 라고 비난했다.

⑥ 미국 학자들 특히 한국 출신 학자들은 "한국에는 정치철학, 교육철학 등 각 분야의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없다."고 지적해왔다.

이(⑥)는 한국 학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역할 부족과 무책임을 지적한 것이다. 어쩌면 비민주적, 반민주적인 학자들의 자질을 꼬집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또한 이들에게 교육을 받고 배출되는 일반 국민들의 감정적, 즉흥적, 경쟁적, 출세 지향적, 이기적, 대립적, 배타적, 비협조적, 비양심적, 비민주적인 국민성을 비판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도입해서 성과를 본 나라들은 일부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민주주의를 중간에 도입해서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마치 이런 주장을 입증해주듯 최근 모 국제 기구(언론)에서는 "체제 저항과 투쟁을 통해 정치 지도자(대통령)에 오른 인물들 중에서 성공한 경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뿐이다."라고 발표했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암울한 역사에서 오래 짓눌려서 심하게 위축되어버린 국민성을 살려내지 못한 채 단지 개인적으로 출세한 대통령에 불과했다. 때문에 국민의 양적ㆍ질적 삶과 나라 운명도 악화되었다.

어쨌든 우리는 민주주의 60년 경력에도 선진국에게 일방적으로 평가받을 뿐 우리가 그들을 평가하고 표현할 능력, 자질, 기법은 없다. 때문에 우리 국민은 선진국을 훤히 보면서도 진심으로 존중하지도 반성하지도 감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부나 정치권에서 무능과 실정을 눈가림하기 위해 선진국에 책임을 전가하면 국민들이 나서서 이용을 당해주었다.

때문에 평소에는 진지한 연구나 노력도 없이 막연하게 지내다가 사건이 터지면 현상이나 결과만 붙들고 비난하면서 목청을 돋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해관계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등 우리끼리 분열하고 공격하면서 비민주적인 본바탕을 적나라하게 표출해왔다.

외국을 상대로는 우리 모두가 똑같은 한국인이다. 또한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한국인이다. 때문에 과정이 어떻든, 잘못이 있든 없든 결국에는 국민 모두의 책임이며 대가도 고스란히 받는다. 지금까지 정치권, 행정부, 사법부 등 전반이 국민에게 신뢰는커녕 오히려 특권과 권위로 일관하며 기어코 버티다가 결국 도태 당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아직도 시민 의식이 똑바로 정리되지 않았으며 과연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조차 모른다.

이제 국민이 새로운 문화를 직접 만들도록 나서야 한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고 논의할 기회를 갖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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