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황태후는 13살에 부모를 따라서 북위(北魏386-534- 선비족 탁발부가 세운 왕족)에 들어가 귀인(貴人․ 후궁의 한 등급)을 거쳐 그의 아들 원각(元恪)이 제위를 이어 세종(世宗) 선무제(宣武帝제위 500-515)가 되자 황태후에 책봉되었다.
또한 그의 사위이자 조카, 또 다른 조카의 묘지명 또한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북위 왕조에서 활약한 고구려 혹은 요동(遼東) 출신자나 그 후예 9명의 것도 아울러 공개되었다.
문소태후 묘지명은 출토장소와 시가가 정확하지 않고, 묘지명 탁본집인 ‘낙양출토역대묘 지집승’(洛陽出土歷代墓誌輯繩)에서 '魏文昭皇太后山陵誌銘幷序' (위 문소황태후산릉묘지명병서)라는 제목 아래 대략 20여 행에 20여 글자를 확인하였다고 민교수는 밝혔다.
그밖에 중국 산시(陝西)성 박물관(일명 시안비림)에 소장되어 있는 '원앙칠지재장석'(鴛鴦七誌齋藏石)이라는 묘지명 탁본집에서 고구려 출신 혹은 그 후예로 간주되는 한인(韓人) 9명의 묘지명도 찾아냈다고 전했다.
또한 이러한 묘지명의 발견에 민교수는 “묘지명은 중국과 고구려 사이의 교류나 이민의 실상을 전해주고 문헌기록에서의 탈락된 정보를 보충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꾸준한 조사가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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