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타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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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타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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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남북한 모든 사람들이 엑스타시를 향해 진보해 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 김일성 동상뒤 백두산
ⓒ ohno2nom^^^

생각에 주도를 당할수록 주체는 분열되고, 주체가 분열될수록 불행하다. '생리적 욕구, 자존심, 불안, 미움' 등에 관련된 생각은 의식을 주도하는 힘이 황소처럼 강하다. 생각의 고삐를 단단히 잡아야 스치는 생각이 휘둘리지 않는다. 생각을 '주시'하는 것은 고삐를 잡는 힘을 키운다. 생각의 고삐를 잡을 때 분열된 주체는 통합되며, 주체가 충분히 통합될 때, 신적(神的)인 자아가 부상(浮上)한다. 신적인 자아가 부상할 때, 최고의 엑스타시가 있다. 엑스타시를 찾는 것, 그것은 인간의 천부적인 본능이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였다. 대학시절에 독재정권 타도에 열정을 기울였다던 그는, 이제 결혼도 하고 취직도 하여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왜? 위대한 지도자가 사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남한 정부의 선전은 모두 왜곡이며 거짓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지도자인 것일까? 그는, 김일성 수령이 외세를 배격하고 국가를 자주적으로 통치해왔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했다. 나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정부의 북한에 대한 모든 해석을 부정하고, 북한이 직접 찍어서 홍보하는 홍보물만으로 판단할 때에도, 나는 결코 북한 체제를 긍정할 수 없었다. 유치원 시절부터,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문구를 외우고 외치게 하는 모습을 볼 때, 내게는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그것은, 어린 영혼들의 주체를 지나치게 말살하는 행위가 아니냐?

^^^▲ 김일성 동상 앞의 추도인파^^^
북한에서, 김일성은 거의 신격화된 주체가 되어 있을지 모르나, 나머지 주민들은, 김일성을 숭배하다시피 해야 하는 객체로 전락되어 있지 않은가?

높이가 수십 미터나 되는 김일성 동상 앞에서 울부짖으며 통곡하는 주민들을 볼 때, 저들의 주체는 김일성에게 지나치게 종속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주민들이 엑스타시를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사실, 타인을 지배하며 신격화된 주체는 가짜다. 김일성은 자신을 숭배하는 수많은 주민들에게 역설적으로 종속된 객체일 뿐이다. 타인의 주체를 억압하고 말살하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주체가 굴절되는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서 오직 생존을 위해 중국으로 탈출하고 있다. 두만강을 건너다 강물에 휩쓸리면 익사하는 것이며, 중국 공안원에 잡혀 북한으로 인계되면 혹독한 처벌을 받는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런 정권이, 핵 개발 문제로 국제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주민들의 엑스타시의 본능을 그처럼 처절하게 짓밟는 독재정권을 어떻게 긍정할 수 있는가?

지난, 8.15 방북단원의 일부 인사들이, 김일성 동상에서 감격하며 참배하고,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루자고 하고, 북한에서 해맑은 웃음을 보고 돌아왔다고 할 때,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남한의 독재는 싫다면서 북한의 독재는 왜 동경하나?

북한의 지도부가 진정으로 주민들의 주체를 존중한다면, 일차적으로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그런 시도를 진지하게 한다면,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도적 지원을 전혀 아끼지 않을 것이며, 좀 더 많은 주민을 굶주림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남한과 북한 모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엑스타시를 향해 진보해 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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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터시 2003-01-03 12:42:49
사람은 생리적 활동에서 엑스터시를 느끼며 존재를 확인할 수도 있고, 고도의 지적활동을 통해서 또는 종교적 신앙생활을 통해서 엑스터시와 존재를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 가치의 서열을 두면 즉 저급의 엑스터시와 고급의 엑스터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거 봉건주의다. 반면 봉건적 가치질서 사이에 엑스터시의 양과 질이 어떻게 다른지 측정될 수 없으므로 그러한 가치질서는 그저 허구일뿐이다 라는게 현대 물질주의다. 사람은 권태를 어쩌지 못하고 아이들이 장난감을 바꾸듯이 보다 나은 색다른 엑스터시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다 나은 엑스터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엑스터시의 선택은 다분히 주관적일거란 의미다.

북한을 가보지 못한 사람이 김일성 부자에 대한 개인숭배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가보지 않았어도 그 체제가 민족의 주체성에 대한 엑스터시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여 유지되고있다는 것만큼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남한 사회의 엑스터시는 개인의 자유로운 소비에 의해 유지된다. 이산가족 상봉에서 보듯이 남측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반면 북측 사람들은 그까지것 아무것도 아니고 주체사상이 우선이라는걸 말하고 싶어한다. 문제는 어느 엑스터시에 길들여진 사람이 다른 엑스터시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통일이 되기위해서는 통일이 가져다줄 엑스터시에 대해 남북한 모두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통일이 엑스터시보다 고통을 가져올거라는 비관적 기대는 그만큼 통일을 지연시킬 것이다. 계층간 세대간 엑스터시에 대한 기대감의 차이는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류무수 2003-01-03 15:24:43
1번 글을 쓰신, 엑스터시님께...

좋은 의견 잘 읽었습니다.

....통일이 되기위해서는 통일이 가져다줄 엑스터시에 대해 남북한 모두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통일이 엑스터시보다 고통을 가져올거라는 비관적 기대는 그만큼 통일을 지연시킬 것이다. 계층간 세대간 엑스터시에 대한 기대감의 차이는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위의 부분은 동의합니다.

그런데,

.....가치의 서열을 두면 즉 저급의 엑스터시와 고급의 엑스터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거 봉건주의다. 반면 봉건적 가치질서 사이에 엑스터시의 양과 질이 어떻게 다른지 측정될 수 없으므로 그러한 가치질서는 그저 허구일뿐이다 라는게 현대 물질주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군요.
그렇다면, "현대물질주의"가 옳다는 것이, 님의 주관인지요.

....객관적으로 보다 나은 엑스터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엑스터시의 선택은 다분히 주관적일거란 의미다....

엑스터시의 선택은 각 사람의 가치관과 생활여건의 주관에 따라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다 나은 엑스타시가 과연 존재하지 않을까요?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마약을 먹는 것에도 엑스터시가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출해주는 행위에도 엑스터시가 있을 것입니다. 그 두가지 경우에서, 각 개인이 느끼는 엑스터시의 정도는 동일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연 여기서 객관적으로 더 좋은 엑스터시가 없는 것일까요? 그거나 이거나 마찬가지인 걸까요?

정확한 계량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주관주의를 절대화하고 상대주의적 경향으로 흐른다면, 자칫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엑스터시 2003-01-04 07:27:48
제 글을 읽고 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맨끝에 언급하셨듯이 결국 허무주의로 귀결합니다. 기자님이 제시하신 키워드가 엑스터시이기에 쾌락과 연관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갔던겁니다. 쾌락도 고통도 측정불가한 주관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측정이 가능하다면 요즘 논의되는 안락사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을겁니다. 즉 어떤 수치 이상의 고통에 대해 의사에게 약물 투여 권한을 부여하는 법을 만들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고 고통 안에 쾌락, 쾌락 안에 고통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모순과 역설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겁니다. 물론 인간의 문명은 모든 것을 객관화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오류를 저지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남북의 체제 비교에서도 사람들은 어떤 객관적 지표를 들이대며 비교하려 합니다. 그러나 완벽한 지표가 있을 수 없으며 불완전한 지표에 의해 우월성을 판단하고 더 나아가 우월한 체제가 열등한 체제를 흡수하면 쾌락의 수준이 상승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착각일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멀리하고 쾌락을 얻기위해 그야말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쾌락에 대한 욕구는 그칠 줄 모릅니다. 그러나 객관성에 근거해 이 번 쾌락이 지난 번 쾌락보다 나을거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배반당하고 맙니다. 10평 아파트에서 20평 아파트로 이사하면 행복할거라는 나와 친구들의 믿음은 20평 아파트로 이사가는 순간 아무 것도 아닌게 되어버립니다. 그만큼 행복은 객관화할만큼 지표가 단순하지 않다는거겠지요.

내가 너보다 비교하건대 우월하며 그래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 바로 오류를 확대재생산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오류를 줄이려면 비교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말아야 할겁니다. 남이 북보다 우월하다 또는 통일이 분단보다 우월하다는 비교가 오류를 초래합니다. 그렇다고 두 손끝 맺고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통일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현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민족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따져보자는겁니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profit margin의 이라기보다 원형이정의 이로서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그 뭔가의 평형감각을 찾자는 말입니다. 남북한은 물론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모두가 수긍할만한 균형을 이루어보자는거지요.

지금까지 조금은 철학적이고 너무 총론적으로 공자왈 하는 식이었던거같습니다. 뜬구름 잡는 얘기에서 벗어나 좀 구체적으로 언론과 관련하여 제 견해를 말하자면, 한국언론도 이제는 미소냉전구도에서 탈피해야 된다고 봅니다. 중국이 저렇게 변하는데 아직도 조중동은 부시가 부는 피리소리에 춤을 추며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고있습니다. 그리고 핵무기, 경제봉쇄와 같은 대량참사를 예견하는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소원하는게 뭔지? 혹시 해방직후의 소용돌이를 재연하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아직도 얼마나 통일 엑스터시에 대한 컨센서스를 기다려야 하는지 아니면 우리 민족이 본래 분열에 대한 엑스터시를 더 선호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엑스터시에 우열은 없습니다. 모두가 무, nothing으로 귀결되니까요. 객관적으로 우열을 따지게 되면 결국 따지지 않느니보다 더 큰 오류를 범하고 말겁니다. 좀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기자님의 건필을 기대합니다.

쓰벌 2003-01-04 17:00:05
누가 내글 지웟엉.

의견 올리지 말라하던지..못된넘들..

글 지울려면 왜 지웟다구 말을해주던지..쓰벌.

또 이글 지워라..쓰벌넘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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