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자총통에서 탄환 확인, 학술적 가치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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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자총통에서 탄환 확인, 학술적 가치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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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선진리성서, 8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는 비석과 소승자총통 확인

^^^▲ 발굴조사 대상 지역
ⓒ 문화재청^^^

경남문화재연구원(원장 박동백)은 사천 선진리성 발굴조사에서 신라서체적 특징을 지닌 비석과 탄환이 들어 있는 소승자총통을 확인했다고 지난 30일 밝혔다

비석은 계단식경작을 위해 쌓은 석축에서 출토되었는데 고의적인 파손흔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비석은 4조각 이상이었던 것으로 조사단은 추정하고 있다. 이는 후삼국시대 진주․고성 일대가 후삼국의 접전지였던 것을 감안해보면 이와 관련되어 파손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 비석 탁본
ⓒ 문화재청^^^

비문의 제작 시기는 비문의 내용 중 「총관」(관직명으로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문무왕 원년에 사용하기 시작하여 661년 원성왕 원년785년 도독으로 개칭하기 전까지 사용하던 명칭)이라는 관직명이 기록된 점과, 신술(원성왕의 장인, 원성왕 재위기관 785-798)을 삼국사기에 나타난 인명으로 파악해보면 신술이 활동하던 연대를 추정해볼 때 경덕왕대와 선덕왕대의 8세기 중반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 비석의 연대는 8세기 중반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작 동기에 대해서는 경덕왕 16년(757) 지금의 진주를 강주로 개명하면서 당시 진골이던 김신술이 강주총관으로 부임하게 되자 왕이 출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했다는 가능성과 왕의 지방 순례를 기념하거나 왕이 직접 불사에 참가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으나 비석이 완형이 아니고, 최대 1/4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 편들을 찾아 면밀한 조사를 토대로 비석의 정확한 성격 규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비석 이외, 길이 53cm 무게 1900g 인 소승자총통이 출토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승자총동의 규격과 일치하고 있으나 16-17세기에 제작된 승자총통은 청동제이고 마디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확인된 유물은 철제로 마디가 없는 것으로 보아 국외제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또한 x-ray 촬영 결과 총신 안에서 2개의 탄환이 확인되었는데 탄환이 함께 출토된 것은 국내에서 보고된 예가 없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소승자 총통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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