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실수가 전화위복이 된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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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실수가 전화위복이 된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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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가격이 오르고 있는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 지인이 어제 "나도 이젠 경유차로 바꿔야겠어."라고 했습니다. 경유가 휘발유보다는 가격이 저렴하기에 지인은 그처럼 차량 자체를 바꾸겠노라는 생각을 품었지 싶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자 불현듯 제 생각의 수레바퀴는 십 여년 전으로 회귀하는 것이었습니다.

십 여년 전에 저는 주유소의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매출증진을 위해 24시간 영업체제를 구축하고 이틀 건너 야근을 할 정도로 강행군을 했습니다. 주유소는 일하는 종업원의 거개가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로 표기) 대학생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갓 입사한 알바 학생이 그만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건 바로 휘발유 차량에 휘발유가 아닌 경유를 부은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휘발유 차량의 운전자는 알바 학생이 "기름을 가득 채웠습니다~"고 하자 아무런 생각 없이 차량을 운행하여 고속도로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단은 곧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엔진이 부숴지는 듯한 소리가 마치 벼락치는 것만 같아서 화들짝 놀란 운전자는 급히 갓길에 차를 세웠답니다. 하지만 왜 멀쩡했던 차가 갑자기 그처럼 난리법석을 부리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던 운전자는 동행한 사람이 "아무래도 주유소가 범인인 성 싶다!"는 추측에 금세 고개를 끄덕이고는 견인차를 불러 우리 주유소로 다시 돌아왔던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그 차의 주입구에서 기름을 빼 보니 역시나 휘발유가 아닌 경유가 범인이었습니다. 중죄(?)를 저지른 알바 학생은 고개를 떨구곤 연신 자신의 실수를 빌었고 저 역시도 책임자로서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마침 인근의 카센터 사장이 막역한 사이였기에 서둘러 달려가 그 상황을 설명했지요.

카센터 사장은 씨익 웃더니만 "주유소에선 종종 그런 일도 생깁지요"라더니 이런저런 기계를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카센터 사장은 그 차량을 자신의 카센터로 이동시키더니 우선 경유를 모두 빼곤 엔진도 꺼내서 휘발유로 일일이 닦았습니다. 휘발유 차에 경유가 들어가면 경유 특유의 끈끈한 점착력으로 인해 휘발유 차의 엔진까지도 모두 망가진다고 했습니다.

몇 시간의 작업 끝에야 비로소 그 차량에서 경유를 모두 빼내고 휘발유로 엔진을 세척한 뒤에 휘발유를 공짜로 가득 채워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차량의 운전자는 "당신들의 부주의로 인해 출장을 가지 못 한 값과 혹여 사고라도 나서 죽었으면 어떨 뻔 했냐? 그러니 정신적 위자료도 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다시금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는 십 여만원을 주는 걸로 겨우 합의를 보았지요. 그 운전자가 우리 주유소를 떠나고 난 뒤 비로소 정신을 차린 저는 그날 해프닝의 주역인 알바 학생을 소장실로 불러 들였습니다. "너, 일루 와서 앉아 봐!" 그러자 알바 학생은 벌벌 떨면서 의자에 앉지도 못 하고 고개를 꺾은 채 닭똥 같은 눈물까지 흘리며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가 잘 못 했슈~ 그러니 용서 하시구유... 오늘 손해 보신 건 제 알바 시급에서 공제하세유... 그리고 다시는 그런 실수 안 할 테니 제발 자르진(해고하지는 ) 마셔유!"

지독한 충청도 사투리에 섞인 그 학생의 비감 어린 하소연은 잠시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이 놈을 요절을 내마!'고 작심했던 제 맘을 일순 봄 햇살에 눈이 녹듯 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보다도 키가 훨씬 크고 덩치마저 곰 같은 녀석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자 평소 마음이 모질지 못 한 저도 덩달아 눈물이 나올 뻔 했습니다.

그래서 제 밑의 주임에게 주유소의 관리를 맡기곤 그 알바 학생을 데리고 인근의 식당으로 갔습니다. 삼겹살에 소주를 나눠 마시며 그 알바 학생과 많은 대화를 비로소 나눴지요.

그 알바 학생의 고향은 충남 홍성군의 어떤 면이라고 했는데 대전에 소재한 대학에 다니느라 학비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며칠 전 우리 주유소에 들어온 학생이었습니다. 알바 학생은
"고향에는 늙으신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 겨우 먹고사는데 제 밑으론 동생들이 넷이나 또 있어서 여간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며 현재는 대학교 인근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당시 신축한 우리 주유소는 2층에 음식을 만드는 주방과 말끔한 숙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학생에게 "그럼 너는 다만 한 푼이라도 아껴야 되는 상황일 테니 내일 당장 짐을 꾸려가지고 와라. 2층 숙소를 내 줄 테니 사용하도록 해. 하지만 항상 청결하게 사용해야 해. 사장님이 아주 까탈스러운 분이시거든..."이라며 선심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요절은 커녕 야단도 치지 못 하고 외려 그 알바 학생에게 편의만을 제공한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습니다. 저도 지독하게도 없이 사는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난 원죄로 인해 그동안 고생을 참으로 막심하게 했거든요. 그래서 밥도 많이 굶어봤고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기도 많이 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튿날부터 그 알바 학생은 2층 숙소를 사용하게 되었고 저는 그 학생이 돈을 더 벌 수 있게 근무시간도 대폭 연장해 주었습니다. 그 알바 학생은 이제 밥도 공짜로 먹을 수 있고 잠도 무료로 잘 수 있었으므로 여간 좋은 게 아니라며 반색을 했습니다.

당시엔 알바 학생들의 시간당 시급(時給)이 1,700원이었기에 시간을 늘려줄 수록 그 학생의 수입은 당연히 늘 수 밖에 없었지요. 그 알바 학생이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쯤 되어 급여를 지급하자 그 금액은 적지 않은 기십만원이나 되었습니다. 입이 귀에 가서 걸린 그 학생은 급여를 받자 마자 저를 끌다시피 하여 인근의 식당으로 가서 술을 사 주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 주유소를 그로부터 몇 달 후에 그만 두었습니다. 당시엔 나대지(裸垈地)에 대하여 정부가 세금을 과중하게 부과하는 때였기에 너도 나도 주유소를 신축하는 붐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으로 말미암아 몸은 고된 반면 매출은 날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지요. 그러했기에 저는 당초 그 주유소에 입사할 때 사장님과 약속한 "대전에서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주유소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제 약속을 지키지 못 함에 면구스러워 그처럼 사직을 한 것입니다. 제가 그 주유소를 그만 두겠다고 하자 사장님은 "나도 다른 사업에 정신이 없으니 그렇다면 주유소는 남에게 임대를 줘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 주유소를 그만 두고 나오는 날, 저의 배려에 의해 몇 달간이나 2층 숙소를 사용했던 그 알바 학생도 짐을 꾸려 나가야만 했습니다. 학생은 다시금 눈물이 글썽글썽해서는 제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제가 어디 가서 뭘 하며 살든 홍 소장님의 후의는 결코 잊지 않겠다..." 그 후로 그 알바 학생을 다시 보지는 못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여류처럼 흘러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제 아들이 작년에 입대를 했으니 그 알바 학생도 지금은 아마도 진작에 대학을 졸업했을 것이고 직장도 잡아 결혼까지도 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평소 진실한 사람과 자신의 실수와 과오를 가감 없이 반성하는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자신이 잘못 하고 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득바득 우기는 사람들이 세상엔 참 많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자면 정말이지 정나미가 십리 밖으로 달아납니다.

십 여년 전, 휘발유차에 경유를 들이붓고는 안절부절했던 그 알바 학생은 법 없이도 살 '아주 건실한 청년'이었습니다. 불현듯 그 학생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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