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서울을 지키는 요새 '탕춘대성과 홍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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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서울을 지키는 요새 '탕춘대성과 홍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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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읽는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문화유산은 과거의 옛 역사를 살았던 인류가 남긴 생활 흔적들이다. 살았던 집터에서 부터 음악, 춤, 그림, 그리고 그들이 사용했던 각종 생활 도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문화유산이라는 큰 범주에 들어가 있다.

이러한 문화유산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적 훼손 내지 후손들의 무관심및 개발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훼손되어 가고 있다. 특히 반만년의 긴 역사를 자랑한다는 우리 나라도 개발과 무관심으로 인해 많은 문화유산들이 신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워한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필자는 필자가 그동안 다녔던 유적, 유물들을 중심으로 우리 문화 유산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역사로 읽는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이지만 역사뿐만 아니라 다녀온 필자의 느낌이나 생각등도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필자의 견해에 공감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조금 더 생각이 있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통해 잊혀져 가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이다.

^^^▲ 홍지문과 탕춘대성
ⓒ 서울시청 홈^^^

수도 서울을 지키는 요새 - 탕춘대성과 홍지문

서울 종로구 하고도 평창동. 세검정 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성벽과 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성벽과 문에 대한 정확한 내력을 모른 채 성벽과 문을 관심있게 지켜 본 사람이라면 얼핏 이 문을 일러 서울로 들어서는 입구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문은 서울의 입구가 아니다. 서울로 들어가려면 이 곳에서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울의 입구도 아닌데 성문과 벽으로 되어 있는 것은 그만큼 옛 사람들이 서울의 방어에 그만큼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서울의 입구도 아닌데 방어의 목적으로 쓰인 이 문과 성벽은 무엇인가? 바로 탕춘대성과 홍지문이다.

조선이 나라를 세우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겨오면서 궁궐과 도성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여러 시설들을 건립하면서 서울은 비로소 한 나라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16세기 말엽에서 17세기 중반에 있었던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서울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채 적군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어 갔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을 통해 국가의 방어에 큰 교훈을 얻었던 당시의 위정자들은 국가 중심지의 방어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깨닫고 수도 서울에 대한 방어책에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이 탕춘대성과 홍지문도 건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탕춘대성과 홍지문이 지어진 곳은 북한산과 북악산이 만나는 골짜기로 한때 연산군이 이곳에 거둥하여 유흥을 즐길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지니고있었다. 그래서 그 부근 계곡에 탕춘대라는 이름의 누정을 건립하기 까지 하였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그 아름다운 경관은 발자취마저 찾을 길이 없다.

이러한 탕춘대에 성이 지어진 것은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은 이후인 16세기 후반 무렵, 숙종때의 일이었다. 전란을 겪으면서 국가 수도의 방어에 큰 교훈을 깨달았던 나라에서는 수도 주변에 두 산성(북한산성 및 남한산성)을 축으로 하여 기본 방어시설을 수립하는 한편, 이 탕춘대가 수도 서울로 진입하기 쉬운 주요 요지임을 알고 이곳에 성벽과 문을 짓고 각각 탕춘대성, 홍지문 이라 이름하였던 것이다.

특히 북한산성과 연결이 용이하도록 성벽을 지어 산성과 연결시키도록 하는 한편, 이곳에 총융청을 비롯한 군진을 두어 유사시에 즉시 대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축조된 홍지문과 탕춘대성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무관심으로 인해 많이 파괴되었고, 급기야는 홍지문은 문루와 문벽 대부분이 무너저 그 형체조차 알 수가 없던 것을 1977년에 다시 복구를 하였는데, 홍지문의 친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라 한다. 본래 친필은 숙종이 직접써서 내렸다고 하는데, 원래의 홍지문 현판은 온데 간데 없고 전직 대통령의 친필 글씨만이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을 따름이다.

복구된 것이라 그런지 지금의 탕춘대성과 홍지문은 그리 오래된 맛을 느끼지 못한다. 석축끼리도 맞지가 않아서 도저히 오래된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어설프고 어색한 느낌마저 없지 않다.

모두 밀어붙이기 식의 복구가 가져온 결과다. 1968년에 복원된 광화문부터 70년대에 복구된 문이나 유적지들을 보면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어쨌든 탕춘대성과 홍지문을 보면서 수도 서울을 지키고자 여러가지로 애를 썼던 옛 사람들의 노력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명분하에 빼어나고 아름다웠던 경관이 사라지게 된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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