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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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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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후회스럽지 않기를

오늘도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않아 키보드를 이리저리 두드리고 있다. 요즘은 일을 줄여서이지 내 삶에서 오랜만에 한가롭다. 쉬엄쉬엄 해야 할 일들을 하는 시간에 비는 시간이 제법 있다. 그래서 키보드를 이리저리 두르려 본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얇은 봄빛이 흘러 들어온다. 내가 친 글자 수는 조금씩 늘어나고 내가 한 일들도 조금씩 늘어간다. 그리고 봄빛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간다. 따스한 봄날의 하루는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하늘에서 내리는 날에도 봄빛은 어두운 구름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내리고 있다. 아무도 봄빛을 느끼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봄날은 어김없이 우리들의 어께 위를 스치며 지나가고 있다. 노란 개나리꽃이 소리 없이 지듯이 그렇게 봄날은 사라져간다. 어느 듯 환하게 타오르던 꽃망울들은 사라져버리고 파랗게 자라 오른 잎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나뭇가지에 부끄럽게 고개를 내밀던 싱그러운 잎새는 어느 듯 푸르른 나뭇잎으로 우거져서 튼튼해져간다. 처음 세상에 돋아나던 날의 그 여린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간다.

학창시절 수업을 빼먹고 잔디밭에 누워서 멍청히 바라보던 푸른빛 하늘 아래에서도 시계탑의 초침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땅에서 하늘로 향하여 아른거리며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의 나른한 춤사위 속에서 봄날은 조금씩 증발하여 가고 있었다. 막걸리 집에서 흘러나오는 젓가락 장단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바로 그 간격에 맞추어, 봄날은 질서정연하게 우리의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한발 한발 쉬지 않고 멀어져만 갔다.

그렇게 많은 봄들이 내 곁을 스쳐지나갔다. 허튼 장단과 설익은 노래에 실려서, 꼬부라진 혀끝에서 우러나오는 눈물나게 징한 일상의 사연들이야 어떻든 또 하루는 어김없이 지나간다. 그 모든 사연들을 가득히 싸않고 무거운 걸음으로 봄날은 사라져간다. 눈물어린 호소에도 싸늘한 등만 보이고 단 한 걸음도 멈추어 서지 않는다. 옷 끝을 잡고 매달려 보아도 쌀쌀한 뿌리침만 남기고 봄날은 어김없이 사라져 간다. 달력에서 하루가 지워지고 또 하루가 사라져간다.

낭만과 추억을 관통하여서 눈부신 햇살과 환한 젊음을 가득 않고서 봄날은 사라져 갔다. 애틋함과 아쉬움과 그 모든 보람과 혹은 아쉬움을 빼곡히 싣고서 봄날은 우리의 곁을 스친다. 그리고는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나간다. 청초한 이슬이 아침 바람에 사라지듯이 그렇게 멀어져간다. 시원한 바람이 언 듯 머리 결을 스칠 때, 봄날은 그렇게 찰나의 인연만을 남기고 스러져간다.

이제 또 한번의 봄이 내 곁에 다가온다. 해마다 봄이 되풀이 될수록 내 인생의 봄은 더욱 멀어져간다. 아직 나는 봄이 반갑고 봄을 맞이하기에 너무 늙지 않았다. 어쩌면 더욱 많은 나이를 먹은 후에는 더욱 봄이 반갑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돌아앉은 돌부처처럼 봄이 두려워 그 햇살을 비켜 다니게 될지도 모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내 곁에 찾아온 따뜻한 햇살을 유심히 바라다본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쳐다보고는 내 길을 걸어간다. 언제가 훗날 다시 봄날이 찾아올 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이 햇살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나그네의 피곤한 발걸음을 옮겨본다. 이 따뜻하고 포근한 햇살과 싱그러운 봄날이 두려워지지 않은 삶을 살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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