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는 법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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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하는 법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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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 속에서 이제 중심을 잡는 법을 배웠다

^^^ⓒ 사진/포토네이버^^^
언젠가는 무엇과 헤어져야 한다. 영원한 만남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것은 오직 세상의 모든 것을 하염없는 눈길로 내려다보는 하늘뿐이다. 하늘 아래의 모든 것은 하루하루 낡아져 가고, 사라져 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잊혀진 존재가 되어간다. 우리 모두는 날마다 무엇인가를 잊어간다. 열정도 아름다웠던 꿈도, 잊지 말자던 맹서도. 그 모든 것을.

한때 영원함을 추구했었다. 친구들과 함께 ‘좋아하던 단어를 생각해 내기’같은 게임을 할 때면, 나는 언제나 ‘영원’이라는 단어를 말하곤 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내 생의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나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아쉬워했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들을 싣고 떠나가는 시간이란 것이 가장 두려웠었다. 한줌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 나는 그것이 그래서 싫었었다.

째각째각... 그렇게 1분이 지나가고 1시간이 지나간다. 하루 이틀...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간다. 한해가 바뀌면 난 나에게 남은 시간의 분량을 헤아려보곤 얕은 한숨을 내 쉬곤 했었다. 갈 길은 멀고 걸음은 더디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유난히 계절에 관한 글들을 많이 쓰게 된 것 같다. 새로이 맞아들이는 계절을 즐기고 사랑하려고 하지만, 그 속뜻은 떠나가는 계절을 충분히 아끼지 못함을 아쉬워함이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손가락을 꼽아가듯이 시간은 지나간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사이에 혹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청춘과 열정을 담았던 그 아름다운 시간들은 과거라는 것으로 변하여 간다. 그리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간다. 그래서 나는 곧잘 멈추어 선다. 그래서 그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을 곰곰이 되새겨 본다. 귓가에 울리는 새소리, 하늘의 모습,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또 하루를 흘려보내는 잡다한 얄팍한 만남들에 대해.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어차피 언젠가 내 곁을 떠나갈 것들이 사라지기에 한 걸음 앞서 먼저 떠나가는 것이 조금은 덜 가슴 아픈 것이기에. 오늘도 광야. 나는 또 하루를 연다. 또 새로운 무엇이 나를 만나기 위해 바쁜 걸음으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이 되어 얼마간 머물다 사라져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그 새로운 손을 맞아들여 나의 벗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내 곁을 스쳐간 모든 아름다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슬픔에 관하여. 그리고 약간의 기쁨에 관해서. 내 사고가 진행되어온 그 모든 순간들에 관해. 그리고 내가 읽었던 그 모든 책장들에 대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어께를 맞대고 함께 세상과 삶을 사랑했던 모든 순간들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여행했던 인생의 모든 여정과, 내가 마주쳤던 모든 모퉁이에 서려있던 아픔의 기억들에 대해서.

“내일도 강물은 변함없이 흐르겠지만, 결코 같은 강물엔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

한때 나에게도 청춘이 있었다. 그리고 푸른 꿈과 창창한 앞날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충분히 열심히 채워 넣지 못했었기에 다시 찾아오는 봄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그리 편안하지가 않다. 게으른 자만이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또 다시 원하지 않았던 봄은 찾아오고, 또 다시 삶은 계속되지만 청춘은 결코 되풀이 될 수가 없다. 단지 그 청춘에 가슴에 담았던 꿈들을 아직 놓지 않고 그 미련을 새김질하며 또 하루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흉하게 튀어나온 내 배도, 거칠어져 버린 내 피부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둔감해져 버린 내 감성도,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지나가 버린 세월도 나는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떠나가고, 내가 그 모든 것들을 떠나왔지만 나는 아직도 이렇게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자리에 우뚝 서서 두 눈을 부릅뜨고 지금도 내 곁을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바라본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바람을 만지듯이, 내 곁을 스쳐가는 그 모든 것들을 느끼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아직도 내 영혼은 종달새처럼 하늘로 치솟고 있고, 내 느린 몸은 달팽이처럼 어딘가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진짜 연극은 나이가 들어야 할 수 있어.” 언젠가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배가 나오고 몸의 무게가 늘어야 비로소 무대위에서 중심이 잡히거든.” 선배는 또 말했다. “무대위에서 배우가 흔들거리는 것은 보기에 좋지가 않아. 주인공이든 대사도 없이 무대에 둘러 서 있는 조연들이든 든든한 무게가 있어야 해”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선배가 말하던 중년이 되었다. 이제 내 마음은 아직도 산들바람에 아파하지만, 내 몸은 좀처럼 스치는 바람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 많은 이별들의 끝에 서서, 나는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수많은 만남들과 수많은 아픔들이 베풀어준 선물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천천히 내 걸음을 걷고 있다. 또 다른 많은 것들과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많은 것들과 이별하기 위해서.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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