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의원 ⓒ 박근혜 의원 웹사이트

앞서 부제에서 박근혜 의원의 한나라당 대표 출마를 놓고 역사적 대(大)결단이라고 평했다. 부제를 읽은 독자들 가운데에는 다소 지나친, 허풍섞인 표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박근혜 의원의 대표 출마 결단은 정말 '역사적 대(大) 결단'이다.

우선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 당선될 경우, 박근혜 의원은 한국 정당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당수 자리에 오르는 것이라고 한다. 가부장, 남성우월주의 문화가 아직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이 거대 야당의 대표 자리에 오른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 갖고도 상당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또한 사실상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한나라당의 상황에서 대표직을 맡기 위해 대표 경선 출마에 나선다는 것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전략이 있거나 혹은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총선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거의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다시 말해 박근혜 의원의 이번 대표직 출마 결단은 사실상 한나라당을 '혁명'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또한 거대한 역사적 가치를 갖는다고 할 만하다.

박근혜 의원에게 다가오는 시련

많은 이들이 이번 대표 경선에서 박근혜 의원의 당선을 점치고 있다. 그 이유는 박근혜 의원의 인지도가 다른 경쟁후보들에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며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박근혜 의원의 그것이 상당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선택하고 싶은 후보일 것이란 예측이다.

이런 예측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예측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예측이 그대로 적중해서 '예선'을 통과하더라도 '본선'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본선은 바로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표와 치러야 하는 제 1당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총선 게임을 말하는 것이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표와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야말로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 자리에 올라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박근혜 의원은 상대적으로 '무난한' 상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의원이 '무난한' 상대일 수 있는 이유는, 물론 박근혜 의원이 어떤 혁명적 카드를 갖고 대표직을 수행할 지는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 예측할 때 열린우리당 입장에서 박근혜 의원이 내밀 것으로 추측되는 카드가 그대로 보인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 입장에서 볼 때 박근혜 의원이 내밀 카드란 것은 박 대통령의 후광을 배경으로 하는 '강력한 보수노선, 안정희구 심리자극'일 것이다. 박근혜 의원이 꺼내 들 이 카드는 열린우리당 입장에서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카드임이 지금 정국 상황을 볼 때 거의 분명해 보인다.

물론 총선에서는 기성세대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박근혜 의원의 보수 안정 카드가 그들에게는 먹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과거와 다르게 지금의 총선은 기성세대 유권자들 이상으로 30대부터 40대 사이의 젊은 유권자 비율이 매우 높다.

또한 기성세대 유권자 집단 역시 기존의 정치와 한나라당의 구조적 문제점에 불만을 느끼고 무당파로 돌아선 이들이 매우 많다. 과거 총선에서는 집권 여당과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고 확실한 네거티브 전략을 동원하면 승리를 굳힐 수 있었으나 지역 대결구도가 차츰 힘을 잃고 탄핵 정국 속에서 혼란에 빠져있는 이 시대에는 네거티브 대신 참신한 포지티브 전략을 유권자들이 원하고 있다고 분석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을 볼 때 오히려 열린우리당 측에서는 박근혜 의원이 내놓을 것으로 추측되는 카드는 손쉽게 제압이 가능하며 어쩌면 그 카드 자체가 변화한 민심을 읽지 못하는 한나라당의 수준으로 유권자들에게 치부되어 열린우리당의 확고한 승리를 만들어 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박근혜 의원이 정말 별다른 카드가 없고 그냥 안정희구심리와 보수성향의 정리를 통한 기존 '표 단속' 수준에서 이번 총선을 치르고자 한다면 박근혜 의원에게 정말 거대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그 이유는 앞서 밝혔던 대로 변화하는 정국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것은 총선 참패로 이어질 것이며 총선 참패는 대표 교체 여론으로 이어질 것이고 장차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는 박근혜 의원은 비참한 낙마를 피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대표 경선의 '경쟁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한나라당의 총선 패배가 거의 확실해 보이며 이런 때 자칫 대표직을 잘못 맡았다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혼자 다 뒤집어 써야 하는 부담을 안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중진들이 대표 출마를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의원이 승리하는 길

그러나 박근혜 의원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대표 출마를 결단할 수 밖 에 없었다. 그 원인은 역시 대권에 있었다고 본다.

박근혜 의원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여전히 짙게 남아있는 한나라당의 대권 레이스에서 불리한 입장에 설 수 밖 에 없었다. 박근혜 의원이 이런 상황을 일거에 타개하고 다른 대권주자들과 동일한 입장에서 경쟁하려면 이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확실한 성과를 올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 의원은 과거 43년 전 그녀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입장과 비슷한 상황에 서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박 전 대통령은 '혁명'을 결단하고 불과 4천여 명도 안 되는 병력을 갖고 서울을 기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혁명'이 실패하면 '역적'이 될 상황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결국 박 전 대통령은 과감한 결단으로 당시 장면 정부의 허를 찌르며 권력을 잡았다.

지금 박근혜 의원은 '혁명군'을 거느리고 서울에 가까이 와 있다. 이제 박근혜 의원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혁명군'이 한강다리를 건너 권력의 핵심을 움켜쥐면 한나라당에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박근혜 의원이 승리하는 길은 한나라당을 '혁명'하는 것이다. 박근혜 의원의 혁명은 그녀의 부친의 혁명처럼 총칼의 권위로 하는 것이 아닌 여론의 힘과 논리의 힘으로 행해져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박근혜 의원의 '혁명'은 박 전 대통령의 '혁명'보다 더욱 어려운 길이라고 하겠다.

박근혜 의원의 '혁명 공약'은 무엇일까?

아직 '혁명군'이 서울을 '완전 점령'하지 못해 그런 것일는지 몰라도 아직 필자는 박근혜 의원의 '혁명 공약'을 들어보지 못했다. 글을 정리하면서 혁명 공약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몇 가지만 귀뜸 하자면 시대 흐름에 맞는 현실관에 입각한 자유주의 시장경제 정당의 정체성을 갖고 한나라당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첫째이며 둘째는 유권자와 한나라당 구성원 모두에게 한나라당을 지지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공약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과거 박 전 대통령의 책임으로 볼 수도 있는 목적을 위해 수단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의 발상에서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발상 때문에 지금의 한나라당이 위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며 오늘날 이 나라가 부패와 시스템 개혁의 부진, 갈등과 증오의 연속적 생산이라는 악순환에 빠져 국민들의 삶이 힘들고 괴로운 것이 아닌가.

박근혜 의원의 가장 강력한 적은 어쩌면 한나라당 내의 강력한 대권주자들이 아니다. 남성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한나라당 내의 완고한 남성들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녀를 '유신정권의 본당'이요, '극우 수구 기득권세력의 심장'이라고 공격할 지도 모를 열린우리당이나 일부 세력들이 그녀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될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생각하는 박근혜 의원의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박근혜 의원 자기 자신이 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업적만큼 과오도 적지 않다. 그 업적의 단맛을 지금 이 나라 국민들이 향유하고 있지만 그 과오에서 파생된 부작용이 오늘날 이 나라를 병들게 만든 상당한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제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으면 박근혜 의원은 그 부작용과 쉬지 않고 싸워나가야 할 입장에 놓였다. 박근혜 의원 스스로 그 부작용을 근절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굳은 마음을 먹으면 고통과 시련이 있어도 그 근절이 가능하겠지만, 고통과 시련이 이어지는 시기에 자기 스스로와 타협을 하거나 드러나는 과거의 치부가 두려워 '혁명의 길'을 회피한다면 결국 파멸의 운명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지금 필자의 귀에는 '혁명군'의 발소리, 탱크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고 있다. 박근혜 의원의 '혁명'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들은 그녀의 국민을 위한, 애국 애족의 '혁명'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